[예술과 사회]사회의 원동력으로서의 예술 (이적의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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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서론

2. 이적에 대한 소개
2.1. 이적의 작품 활동
2.2. 이름 ‘이적’의 중의성

3. 사회에 대해 말을 건네는 이‘적(笛)’-곡의 형식적 측면
3.1. ‘그 어릿광대의 세 아들들에 대하여’-저항적 말하기
3.2. ‘불면증’-실험적 소리 지르기
3.3. ‘어느 날’-세련된 노래하기

4. 사회에 대해 말을 건네는 이‘적(敵)’-곡의 내용적 측면
4.1. ‘왼손잡이’-대중이 재창조하는 가사
4.2. ‘UFO’-이상향에 대한 로망
4.3. ‘장난감 전쟁’-공허한 사회 비판
4.4. ‘서쪽 숲’-허무한 내적 독백

5. 대중이 평가하는 이적
5.1. (대체로) 성공한 이‘적(笛)’
5.2. (현재로선) 미흡한 이‘적(敵)’

6. 결론

본문내용

아가는’ 꿈같은 세상으로 가고 싶다고 말한다. 구조적 문제를 내면으로 돌리게 하고 현실을 도피하게 한다면 결코 바람직한 사회상과 희망을 제시할 수 없다. 갈수록 이적은 이 외의 곡들에서도 끊임없이 자신과 싸워서 이상향으로 가리라고 갈망하는데, 이것은 결국 대중에게 사회 구조의 문제보다 개인 내면에 치중하고 도피하려는 성향으로 파고든다는 문제점이 있다.
5. 대중이 평가하는 이적
5.1. (대체로) 성공한 이‘적(笛)’
형식적 측면에서 이적은 기존 대중 음악계에서 드문 새로운 시도들을 감행했고, 음악인으로서 꽤 높은 위치에 설 수 있게 되었다. 그가 가장 최근에 낸 두 번째 솔로 앨범에서 패닉 2집 때의 개성과 키치적 감성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세련된 음악을 추구하는 아티스트임은 부정할 수 없다. 물론 진정으로 성공한 이‘적(笛)’이 되기 위해서는 단순히 피리를 불고 즐기는 딜레탕트가 아니라, 각양각색의 음악적 시도를 통해 기존 음악계의 권위에 끊임없이 도전해야 할 것이다. 어쩌면 그는 현재 음악계에서 이미 권력층이 되어 자기 자신을 깨야 하는 위치에 있는지도 모르지만, 그 권위가 깰 수 없을 만큼 단단하거나 이적의 실력이 미흡하지는 않다고 본다. 결국 필요한 것은 ‘어느 날’에서 나타나는 노래를 잘 완성해 내는 ‘적절한’ 노련함이 아니라, 사회에 대해 기발한 방식으로 말을 건네는 ‘적절하지 않은’ 건방짐이기 때문이다.
5.2. (현재로선) 미흡한 이‘적(敵)’
‘왼손잡이’에서 보았듯이, 과거 이적의 가사는 많은 은유를 이용했기 때문에, 듣는 사람들에 따라 얼마든지 새로운 의미로 해석할 수 있었다. 이적의 노래를 그저 멜로디에 따라 즐기는 사람은 그 방식대로 이적의 노래를 즐겨 들었고, ‘좌파’라는 기의를 떠올리는 사람들은 그 기의를 알아채고 있는 사람의 한 명이라는 소속감과 권력층을 보기 좋게 속이는 데에서 오는 자족감을 느꼈다.
그러나 최근의 곡들은 ‘왼손잡이’와 같이 내용을 2차, 3차로 해석할 여지가 없다. 잔잔하고 쓸쓸한 분위기로 흐르거나, 직설적으로 거칠게 반전을 외칠 뿐이다. 물론 형식적 측면에서도 그랬듯이 이적의 두 번째 솔로 앨범은 (정치성과 대중성의) ‘중용’을 지켰고, 엄청난 음반 판매량을 기록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음반을 산 사람들은 더 이상 사회를 바꾸어 보려는 의식을 느끼지 않는다. 옳은 소리 하는 거친 민중가요의 내용은 부담스럽지만, 사랑 타령을 듣기는 자존심 상하는 사람들이 이적 음반을 사게 된 것이다.
지금의 현실에는 비판적이지만 이것을 뜯어고치기에는 자신이 나약하다고 생각해서 묵묵히 순응하는 사람들. 이 사람들은 이적의 멋지게 포장된 사회 비판적 가사들, 다른 대중가수들과 차별성 있으면서 초라하지 않게 대중음악계 나름의 입지를 굳히고 있는 이적의 위치를 좋아한다. 한 때 사회를 바꿀 수 있다고 믿었던 사람들은 ‘왼손잡이’를 ‘좌파’로 해석하는 것이 체제를 송두리째 개혁하는 치열한 운동이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다. 그렇지만 ‘좌파’ 같은 체제 비판적 개념을 다른 대중들도 이끌어내기를 바라면서, 혹은 언뜻 보기에 평범한 가사에서 ‘좌파’라는 기의를 생각해 낼 정도로 의식은 무장되어 있지만 지금은 그저 그렇게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자신을 자조하면서 이적의 가사들을 음미하고 대리만족 하는 것이다.
또한 이적의 두 번째 솔로 앨범에 나타나는 내면적 성찰은 어떤 사람에게는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어떤 사람에게는 자신의 주어진 틀을 벗어나지 못하는 한계에 대한 고민으로, 어떤 사람에게는 지식인으로서 사회를 단 번에 고치지 못하고 지금처럼 어쭙잖게 살아간다는 자책감으로 다가온다. 다수의 사람들은 현 사회가 결코 행복만 안겨주지 않는 사회임을 지각하지만, 이 사회를 고쳐보겠다는 야망보다는 어떻게든 나 자신만이라도 이 사회에서 빠져나가고 싶다는 희망을 품기 마련이다. 그리고 이적 역시 이런 범상한 소시민으로서의 수줍은 희망을 ‘서쪽 숲’으로 가고 싶다는 노랫말로 대신한다. 사회의 모순은 알지만 어찌할 줄 몰라 내적으로 고민하던 사람들은 사랑 노래 가사는 유치하게 치부해도, 한 때 꽤 사회 비판적이었던 이 가수의 내적 독백이 담긴 가사는 진중하게 받아들이게 된다. 자신도 그와 같은 치열한 고민을 하고 있지만 차마 음악으로 승화시켜 대중들 앞에 떳떳이 밝히지는 못하기에 이러한 가사들로 또 다시 대리만족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말 그대로 대리만족에서 그치고 만다. 이런 방식으로 대중과 대화하는 이적의 노래는 더 이상 사회를 개혁하는 창조적 힘을 발휘할 수 없다. 사회의 악동이 되기보다는 사회 유지에 순응하는 사람들의 소소한 위안거리가 될 뿐이다. 이것은 곧 이‘적(敵)’으로서 사회에 대한 의미 있는 발화를 멈추는 격이다.
6. 결론
이제까지 이적이 자신의 음악을 통해 사회에 어떠한 방식으로 말해왔고, 이것을 대중들이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살펴보았다. 그리고 대중들이 받아들이는 방식에 따라 사회에 어떠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알아보았다.
이처럼 한 예술가는 내용적 측면과 형식적 측면에서 사회에 대해 대화를 꾀하며, 그 방법이 기발하고 참신할수록 사회를 바꾸는 원동력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이적이 최근에 보인 음악 경향은 이러한 원동력으로서 부족하고, 오히려 체제 유지적 즐길 거리로 전락할 수 있다. 이것은 결국 다른 분야에서는 미덕이 되는 ‘적절함’이 예술에는 치명적일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하며, 예술이 끊임없는 자기 발전을 감행해야만 예술로서의 당위를 실현할 수 있다는 점을 깨닫게 한다. 현재 이적은 가을에 발표할 패닉 4집을 준비 중인데, 이 음반은 이‘적(笛)’과 이‘적(敵)’의 측면 모두에서 사회에 가치 있는 말을 건네야 할 것이다.
예술이 사회와 동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배경에서 창작된다는 점에서, 단순한 대리 만족이나 미적 쾌감만을 안겨주는 예술은 사회에 의미가 없다. 한 편의 논리적 논문이나 뛰어난 이론보다도 예술은 더 많은 사람을 감동시키고 의식을 움직일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그러기에 예술은 사회에 희망을 말하고 대중을 더 나은 사회로 이끌 의무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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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5.07.04
  • 저작시기20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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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306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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