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축제 월드컵과 대한민국에 관한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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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들리지 않았던 목소리

2. 스포츠/축제는 비정치적인가?

3. 월드컵 읽기의 자의성

4.‘자랑스러운 우리 한국인’일까?

5. 왜 그리 ‘하나됨’을 좋아할까?

6. 단결과 화합의 반정치성

본문내용

혐오하는 반정치주의로 이어지고 결국 그것은 권위주의 정치 복원에 기여하기 때문이다.
) 『한겨레』 만평 <미주알>(2002년 6월 17일자)은 "경기면 경기/응원이면 응원"하며 '국민'을 칭찬한 다음 "지도자만 잘해보시오/준비된 국민!"하며 정치지도자에 대해 화살을 돌린다. 하지만 이 역시 축구와 응원의 메커니즘과 정치 논리를 동일시하려는 데서 나오는 오류며 단순한 반정치적 사고의 반영이다.
온국민 하나론, 화합과 단결의 강조는 개발독재 시부터 귀에 익은 구호들이다. 그것은 특히 불과 몇 년전 아이엠에프 구제금융을 받을 정도의 경제 위기 시에 언론을 도배했던 문구들이다. 과거의 것은 패배에서 오는 긴장감에서 오늘의 것은 성취감에서 오는 것이지만 양자에게 공통된 것은 '국민'임을 강조하고 다양한 계급/개인/집단들에게 동질성을 요구하는 '국민운동'적 궤도가 아닐까? 그 코드를 언론이 자극할 때마다 사회 전체가 광기가 휩싸였던 것은 오늘만의 일은 아니다. 치욕적인 '금 모으기'나 심각한 '수재의연금' 범국민운동이 아니라 즐거운 '국민축제'라고 한다 해도 이러한 코드를 언론과 지식인들이 객관적으로 읽어내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한다. 자유기고가 정문순의 날카로운 비판을 여기서 다시 읽어보자. "무엇보다 이 나라 국민들에게 화합이나 단결이 부족하다면 그것은 몇 개의 운동 경기를 서로 어깨 겯고 관전하는 것으로는 근본적으로 치유될 수 없는 사회구조적인 문제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 ... 월드컵 경기에 붙여진 국민적 화합으로서의 축제라는 이름은 허구적이거나 변죽을 울리는 언사에 지나지 않는다. 한국 대표팀 경기가 있을 때 거리로 몰려나오는, 수십만에서 수백만에 이르는 저 인파들의 환호는 도저히 합리적으로 해결하기가 난망해 보이는 사회 갈등과 피곤하기 이를 데 없는 일상을 축구 경기에 홀림으로써 잠시 잊고 싶은 욕구의 발현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 정문순, "월드컵 과열 보도하는 언론," 왜냐면, 『한겨레』 2002년 6월.
'성숙한 응원문화'나 질서에 대한 일방적인 찬양에도 이런 문제 의식은 철저하게 결여되었다. 난동을 부리는 훌리건이 없었고 질서 있고 예의바른 응원이 지배적이었던 것이 과연 긍정적이기만 했을까? 한 전문가의 말대로 유럽 훌리건의 폭력적 난동성은 노동자 계급의 정체성 확인과 관련되어 있다.
) 이장영, "한국축구와 훌리건," 『전통과 현대』 2002년 여름호, 78면.
그렇다면 한국의 '온국민이 하나된 기쁨'과 '성숙한 응원문화'는 혹시 오랜 권위주의와 분단으로 인해 기승을 부려온 반계급적 의식, 즉 계급적 정체성을 드러내는 운동에 적대적이고 억압적인 정치문화의 산물이 아닐까? 그것은 동시에 "가난과 집념이 만든 '악바리 수비' 김남일"
) 『조선일보』 2002년 6월 9일자. 23면.
"16강 꽃피운 악바리 인생들"
) 문갑식, 같은 제목 칼럼, 『조선일보』 2002년 6월 16일자.
등의 기사제목에서 드러나듯이 어떤 성공이 개인의 노력과 의지에 의해 충분히 가능한 것이라는 신화를 생산함으로써 하층 및 중간 계급의 계급의식과 사회 구조에 대한 비판적 접근을 약화시키려는 무의식적 이데올로기와 선이 닿아있다.
7. 남은 이야기
박노자는 "자본과 정권이 제공한 '현실 도피의 시간과 공간'인 열기는 이를 소비하는 사람들의 마음에 새로운 각성의 계기를 별로 남기지 않"는다고 얘기한다.
) 박노자, 앞의 글, 141면.
서해교전 후 한국사회가 보인 알레르기적 냉전주의 반응과 대결주의적 자세, 6.13 지방선거 결과, 포스트 월드컵에서 '현실'로 되돌아온 한국사회의 모습은 6월의 해석이 일종의 판타지에 불과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다행스런 결과는 오로지 국내 축구리그의 활성화 가능성이 약간 높아졌다는 것뿐이지 한국사회가 갑자기 성숙해졌거나 공공의식이 높아졌다는 증거는 거의 찾을 수 없다. 넘치는 것은 '승화'와 '전환'의 담론이며 그것은 월드컵 열기를 국가와 자본의 사회 통제를 위한 힘으로 전환하려는 권력 의지다. "이 국민적 에너지를 창조적 에너지로 바꾸어 국민통합과 국가경쟁력 제고의 큰 계기"로
) 조정원, "국민대통합선언 기회다," 『중앙일보』 2002년 6월 27일자.
"월드컵 경기에서 확인된 민족적 국민적 저력을 배타적이 아닌 국가발전과 국민통합의 원동력으로"
) 김영작, "한국적 기개 이어가자," 『중앙일보』 2002년 6월 27일자.
만들려는 전유 욕망은 여전히 강하다. '국가 이미지제고' '코리아 브랜드' '월드컵 파급효과' 은 이제 포스트 월드컵의 상투적 구호가 되었다. "이제는 무한한 힘과 자신감이 사는 나라, 대한민국. 그 경제를 새롭게- 세계화의 길을 새롭게-"
) 『한겨레』 2002년 7월 16일자. 16면 SK텔레콤 전면광고 중에서 인용.
등의 구호도 반사이익을 노린 자본의 과장법이라는 것쯤도 알 수 있다. 시민적 자발성을 다시 한번 국가/자본의 자장 안으로 흡수하려는 이러한 시도에 대해 저항할 수 있는 논리와 힘이 월드컵을 통해 한국 시민사회에 쌓였는지 아니면 오히려 줄어들었는지는 불분명하다.
2002년 한일 월드컵이 남긴 한국사회의 다양한 분야에 남긴 숙제는 많다. 그 중에서 지식인사회에 남긴 것은 그것이 일시적 광기의 폭발이며 축제에 불과했더라도 한국사회가 안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를 '황홀경'속에서 여과 없이 노출시켰다는 사실이다. 광기의 순간에 진실이 드러나는 법이다. 따라서 뚜렷하게 현상으로 드러난 문제들을 객관적으로 분석 이해하고 그것을 실천적 공간에서 해결하려는 사회적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은 명백하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드러난 문제를 문제로 인식하지 못한 한국 언론과 지식인 사회의 비판적 독립적 지성 마비 현상이다. 다시 말해 지식인 사회가 근대적 국민국가 및 집단주의적 일원주의로 함몰돼버린 문제다. 그 근원과 배경이 무엇인지를 치밀하게 검토해 가는 작업이 중요한 것은 말할 것도 없지만 과연 그게 당분간 가능할지 잘 모르겠다. 마비 현상에도 불구하고 소수의 독립적 지성이 점점 늘어가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오히려 그들이 점점 변방으로 몰리고 있는지 나로서는 판단하기 애매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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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5.07.14
  • 저작시기2005.07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3072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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