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자력갱생론과 과학기술정책에 관한 고찰
본 자료는 3페이지 의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여 주세요.
닫기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해당 자료는 3페이지 까지만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3페이지 이후부터 다운로드 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목차

Ⅰ. 머리말

Ⅱ. 주체사상의 자력갱생론

Ⅲ. 자력갱생론과 과학기술정책

Ⅳ. 북한경제 파탄과 자력갱생론의 변질
1. 북한경제의 파탄
2. 자력갱생론의 변질

Ⅴ. 맺음말

본문내용

다.
그렇지만 혁명적 경제전략은 파탄지경에 이른 북한경제의 재건대책이 되지 못했다. 북한경제는 1990년 이후 마이너스 성장이 지속되고 있으며 혁명적 경제전략이 실시된 1994년 이후에도 이 같은 추세에는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 즉 혁명적 경제전략은 아무런 성과도 거두지 못하고 사태를 악화시키는 방향으로 작용해 온 것이다. 북한은 심각성을 깨닫고 1996년부터 '고난의 행군', '사회주의 강행군'을 슬로건으로 내놓고 인민들에게 무한대의 인내를 강요했다. 이런 과정에서 북한은 자력갱생을 특별히 강조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고난의 행군정신이란 제힘으로 혁명을 끝까지 해 나가는 자력갱생의 간고분투의 혁명정신' , ' 오늘 우리가 진행하는 사회주의 강행군의 중요한 특징은 자체의 힘으로 사회주의건설에서 전환을 일으키기 위한 자력갱생의 행군이라는데 있다' 등으로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1998년 1월 29일부터 30일 까지 평양에서는 건국이래 처음으로 전국자력갱생모범일군대회가 열려 23명의 참가자에게 노력영웅칭호와 함께 금메달과 국기훈장 제1급이 수여되는 이례적인 행사가 열렸다. 그 후 자력갱생모범일군대회는 지역별로 개최되기도 했다.
그러면 왜 북한은 새삼스럽게 자력갱생을 부쩍 강조하고 나선 것일까. 무엇보다 먼저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이 사회주의권의 붕괴에 따른 우호무역의 소멸은 북한경제에 치명적인 타격을 줌과 동시에 북한경제가 자립형이 아니라 대외의존형이었음을 폭로시켰다는 것이다. 따라서 북한은 진정한 자력갱생인가, 자본주의권과의 경제교류확대인가 하는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되었다. 북한은 여기에서 자본주의권과의 경제교류에서 돌파구를 찾기 위해 3대 제일주의를 주창하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자력갱생을 강조하고 나선 것은 자본주의권과의 경제교류 확대정책이 구사회주의권과의 우호무역을 대체하는 것이 못되고 기대한 만큼의 성과를 거두지 못한 것을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 결국 당면한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자력갱생밖에 없다는 판단을 한 것이다.
우선 경제면에서는 '절약은 곧 생산이다'는 절약 투쟁, 내부예비의 적극적 동원, 기술혁신 등에 의해 모든 부문에서의 증산투쟁이 요구되었다. 예컨대 전력문제는 각지의 실정에 맞는 중소형 발전소의 건설, 식량문제는 이모작, 염소사육, 건물지하에서의 버섯재배 등을 해결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증산캠페인에 물질적 자극은 보이지 않고 정치-사상적 자극이 전면에 나서고 있다. 또한 원료-자재의 공급과 관련, 김정일 스스로가 '일군들은 우에서 대주면 더 좋고 대주지 않아도 자체의 힘으로 해 나간다는 락원의 10명 당원들이 지녔던 자력갱생, 간고분투의 혁명정신을 본받아 경제사업에서 제기되는 문제를 어깨를 들이밀고 자체로 풀어나가야 하겠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상부로부터 공급을 받지 않고 자력으로 문제를 해결한 공장이나 기업이 늘어난 것을 '고난의 행군'의 성과로 평가하고 있다.
자립적 민족경제는 "생산의 인적 및 물적 요소들을 자체로 보장할 뿐 아니라 민족국가 내부에서 생산소비적 연계가 완결되어 독자적으로 재생산을 실현하여 나가는 경제체계이다" 고 정의되어 있다. 그런데 국가차원에서 실현되었어야 할 자력갱생원칙이 계획경제가 파탄이 난 결과 각 단위 차원에서의 실현을 목표로 하는 것으로 변질되고 말았다. 이는 산업연관이 붕괴된 상황하에서, 즉 계획수립이 불가능한 상황하에서 자립노선을 추구한 결과 나타난 현상이라 할 수 있다.
"모든 것을 위에 기대하지 않고 자체로 해결해 나가자"라는 최근의 자력갱생 캠페인은 북한당국이 계획경제의 파탄과 공급시스템의 마비를 간접적으로 인정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른 1970년대 이후 악화일로를 걸어 온 북한경제의 장기 하락 경향이 드디어 파탄의 최종단계에 들어갔다는 것을 보여주는 징후임에 틀림없다.
Ⅴ. 맺음말
북한은 1950년대 후반이래 자립노선에 기반한 북한과학을 추구하면서 주체과학이라는 독특한 학문을 출범시켰다. 과학의 종속성을 탈피하고 그 자립화를 꾀했던 것이 결과적으로 그것을 훨씬 넘어서 자기만의 특유한 과학을 추구하게 된 것이다. 이는 북한이 자신의 역사적 경험과 사회현실, 인민의 요구에 맞게 과학을 재구축하려 한 결과였다. 이런 배경에서 이승기박사의 비날론연구가 각광을 받게 되었고 봉한학설이 부각되기도 했다.
1970년대 들어서면 주체사상과 더불어 주체과학이 부다 뚜렷한 형태로 자리를 잡아나가게 되었다. 주체과학의 주요 특징은 무엇보다 그 목표가 국가와 인민의 필요와 요구에 직접적이고 전면적으로 이바지할 수 있게 맞추어져 있다. 심지어 김일성의 교시를 그것과 동일시한 나머지 연구저서나 논문에 그 내용을 가장 먼저, 그리고 중요하게 언급하고 있다. 또한 과학은 국가에 따라 기능과 역할을 달리한다고 보았기에 다른 나라에서 들여오려고 하기보다는 스스로의 힘으로 그것을 이루려고 했다. 어찌 보면 외국에서의 큰 혁신보다는 자체 내에서의 작은 변모가 훨씬 더 중요하게 여겨졌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과학은 자국에 풍부히 존재하는 부족자원과 재료를 주요 기반으로 삼아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 또 다른 중요한 전제조건의 하나가 되고 있다. 이 때문에 북한에서는 석유가 아닌 석탄을 연료, 원료 등으로 이용하는 석탄화학산업이 가장 대표적인 산업분야로 성장하기도 했다.
결국 자립적 민족경제노선과 이를 위한 자력갱생 방식의 사회주의 공업화전략은 북한의 산업기반을 세계의 흐름에서 크게 이탈시켜 기형적인 경제시스템을 결과하고 말았다.
<참고문헌>
*이종석, '새로 쓴 현대북한의 이해'(서울 : 역사비평사, 2000)
*김성철 외 공저, '북한이해의 길잡이'(서울 : 박영사, 1999)
*박형중, '북한적 현상의 연구'(서울 : 연구사, 1994)
*신지호, '북한의 개혁-개방'(서울 : 한울아카데미,2000)
*이춘근/김계수, '북한의 국가연구개발체제와 과학기술인력 양성체제' (서울 : 과학기술정책연구원,2001
*통일부 정보분석국, '북한개요'(서울 : 통일부,2000)
*김근배, '과학과 이데올로기의 사이에서 : 북한 '봉한학설'의 부침' <한국과학사학회지>제21권 제2호 (서울,한국과학사학회, 1999)
  • 가격700
  • 페이지수10페이지
  • 등록일2005.08.18
  • 저작시기2005.08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310040
본 자료는 최근 2주간 다운받은 회원이 없습니다.
청소해
다운로드 장바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