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현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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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제 1 장 식민통치의 실상

제 2 장 민족해방운동의 전개

제 3장 식민지 수탈경제의 실태

제 4장 식민지 문화정책과 저항운동

본문내용

자본과 결탁하여 합자공업을 일으켰고, 대부분의 중소자본은 회사화를 미루고 일단 개인경영으로 자본축적. 생산형태면에서는 염직업제지업요업 등에 한정
1920년대
주조업등 시장규모가 큰 사업의 경우 새로운 경영자들이 등장하여 공업자본이 성장, 고무신공장, 메리야스공장등
만주 등으로 진출
1930년대
중요산업통제법(1936)실시 -종래의 경중공업 병지정책을 군수중심산업정책으로 전화, 일본의 대규모 재벌자본 유치
중소공업에 대한 촉진 및 규제정책을 마련-메리야스사업 타격
1940년대
중화학군수고업은 일본 재벌공장이 담당, 소비재 1차 가공품은 다수 종소공장이 담당. 결국 조선의 중소자본은 일본의 전쟁수행을 위한 협력을 강요당하면서 전시경제로 예속
일본의 독점자본(1920년대)
1차 세계대전이후 일본의 독점자본은 급성장했고, 이에 따라 총독부는 회사령 철폐
1920년대 공업의 특징 : 일본 재벌자본의 침입 본격화(미쯔이 재벌..) 일본자본의 적극적인 침입으로 조선인 공업회사와 일본인 공업회사 사이의 격차가 심해짐, 조선의 경공업,특히 식료품 가공업이 압도적이었다. 소규모 작업장들의 큰 비중을 차지.
조선공업화정책과 군수공업(1930년대)
일제의 대류침략이 본격화하고 조선이 그 병참기지화함에 따라 공업구조 전체가 군수공업체제로 바뀜
특징 : 중공업부문이 일정하게 발전, 침략전쟁 중에 일부 발달한 중공업도 일본 독점자본에 의해 고도로 집중되어 조선인의 경제 생활과는 유리되었다. 경공업 또한 일본의 식민지 초과이윤 취득을 위해 유리한 부문만 발달, 공업과 농업의 불균형과 공업시설의 지역적 편재성이 심했음.
제 4절 자원약탈과 교통통신 및 무역 지배
자원약탈
광업, 어업, 임업 등 자원의 약탈이 이루워졌다. 이와 같은 총독부 및 일본인에 의한 각종 작원의 독점적 지배는 조선의 민족적 재부를 약탈한 것이었다. 그 결과 조선에서 민족자본의 성장이 저지되었고, 일제는 식민지 지배체제를 확립하는 재원을 확보하였다.
식민지 무역
식민지 무역의 특징 : 일본의 대외무역에서 조선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지면서 일본의 그것을 독점한점, 조선의 일본에 대한 원료공급지와 상품시장으로서의 기능이 계속 강화.
제 4장 식민지 문화정책과 저항운동
(서설)
민족문화활동의 공통점
1. 식민지배 아래서의 민족의 현실적 고통과 직면하고 있었다.
2. 저항주의적 성격
3.박은식신채호한용운 등의 경우 그들의 연구활동 및 창작활동은 바로 민족해방운동의 일황이었다.
제 1절 식민지 문화정책
교육정책
조선교육령(1911.8)-보통교육과실업교육전문교육으로 한정.
학제(일본 소학교 : 6년/ 조선: 4년 내지 5년제의 보통학교)
교육내용에서도 보통학교의 경우 조선어와 한문은 1중에 5~6시간, 일 본어는 10시간이었다.
열악한 교육환경
교육정책
1910년대- 사립학교 탄압(사립학교규칙(1911.10)), 관공립학교 육성
1920년대- 조선교육령 개정(1922.2) : 보통학교 수업연한 6년으로 실업교육 완화, 사범학교 설치, 이상재의 조선민립대학기성회(1922.11)가 결정되어 대학설치운동 일어남-실패-→경성제국대학설치(1924)
1930년대- 황국신민화 교육강화(1938년도에 조선교육령 개정)
종교정책
사찰령(1911.6)-사찰의 병합이전 등 총독부의 허가제, 사찰 소속의 토지삼림 등의 처분도 허가제.
일제의 친일화 정책에 대항해 조선불교유신회(1921)을 조직하여 정교분리운동사찰자치운동 등을 일으킴
기독교는 학교설립병원개설등을 통해 활발한 신교 활동을 폈으나 선교사 중심이고, 합방을 환영한는 이도 있었다.
31운동은 천도교와 기독교 대표가 핵심이 되어 발단하였다. 신사참배 거부, 어용 기독교와의 병합거부 등의 활동
∴31운동이후 일본측의 적극적인 탄압정책과 포섭정책으로 대부분의 종교단체는 순수한 종교운동으로 방향을 전환.
민족사의 왜곡
조선사편찬- 일선동조론, 한반도의 정체성후진성론 등을 바탕으로 역사서술, ‘임나일본부설’등이 대표적- 일제의 합방 합리화 방법
제 2절 항일 문화운동의 전개
반식민사학론의 발전
‘합방’후 민족주의 사학발달 : 박은식 한국통사한국독립운동지혈사 등을 저술, 신채호 조선사연구초조선상고사 등 저술. 이들의 연구는 정인보, 안재홍으로 이어져 식민사학론에 대항하는 사론을 세워나갔다.
사회경제사학 : 백남운 조선사회경제사, 이청원조선사회사독본 등. 역사발전의 원동력을 민중에게서 구했다.
조선어학의 발달
국문표기법 연구 : 지석영, 주시경
‘합방’ 후 일본어를 ‘국어’라고 하고 우리말을 조선어라 칭하고, 일본어 교육 강화하여 국어연구가 위축. 그러다가 중일 전쟁 이후 에는 조선어를 폐지하고 일본어만 쓰도록 강요.
조선어연구회(1921→1931년 조선어학회) : ‘한글 맞춤법 통일안’ 제정 발표하는 등 광범위한 국어강습회 운동을 벌여 모국어 연구 및 보급운동을 전개
항일문학의 맥락
애국시가들이 널리 노래되었다.
31운동후 창조 백조 등의 동인지 발간- 민족적 현실과 일정한 거리를 둔 자연주의낭만주의 문학을 지향.
현진건 빈처(1921) 등은 현실에 어느정도 관심을 지닌 작품
신경향문학파 대두 - 민족이 처한 현실적 고통과 민중생활에 관심을 갖자! 사회주의 사조에 영향과 농민노동자의 의식성장에 자극을 받아서 새로운 문학운동은 저항문학으로 발전
카프(1925)의 결성으로 본격화.
이상화의시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등
국민문학파-계급이전의 민족을 내세움 그러나 이는 비역사적추상적 민족에 불과한 것으로 복고주의적 방향으로의 진행을 가져옴.
1930년대 이후 문학활동은 탄압을 받아 카프는 해제되었고, 민족적이고 저항적 작가는 지하로 숨어들어갔다. 반대로 친일문학은 발달. 중일전쟁을 조선의 적극적 협력을 요구하면서 ‘사회교화’‘황군위문’등을 위한 친일단체를 만들었다 최남선이광수의 조선문예회 등
∴식민지시대의 문학은 현실을 외면하고 순수문학을 지향하거나 식민통치의 도구로 전락하는 경우가 많았다. 민족문제에 관심을 가져도 저항성이 결여된다면 복고주의에 빠지게 된다. 따라서 식민지시대의 민족문학이란 식민지 지배를 깨뜨리는데 이바지 하는 문학이 될 수 밖에 없고, 따라서 그것은 저항문학이 될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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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5.08.26
  • 저작시기20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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