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락사의 윤리적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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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序

Ⅱ. 안락사의 개념 및 분류
1. 안락사의 개념
2. 안락사의 정확한 정의 만들기의 문제
3. 안락사의 분류
(1) 생명체의 의사에 따라
(2) 행위자의 행위에 따라
(3) 생존의 윤리성에 따라

Ⅲ. 안락사에 관한 각국의 입법과 사례
1. 안락사에 관한 각국의 입법례
(1) 미국
(2) 영국
(3) 호주
(4) 프랑스
(5) 독일
(6) 일본
(7) 네덜란드
(8) 우리나라
2. 안락사가 문제된 주요 사건
(1) 퀸란 사건
(2) 케보키언 사건
(3) 미 사상 첫 '합법 안락사'
(4) 아들 간청에 독극물 투입하려다 구속

Ⅳ. 종교별 안락사의 입장
(1) 불교
(2) 카톨릭
(3) 장애우

Ⅴ. 안락사에 대한 찬반입장
1. 안락사의 반대 입장
2. 안락사의 반대 입장 비판
3. 안락사의 찬성입장
4. 소극적 안락사에 대한 생각

Ⅵ. 結

본문내용

환자에 대해 의학적으로 무익하거나 무용한 진료를 요구할 경우 의사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다.’는 내용도 논란이 예상되는 부분이다.
소극적 안락사를 허용하게 될 경우도 극히 제한된 범위로 한정하고 악용 가능성을 배제하는 장치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의협의 윤리 지침 안은 “회복이 불가능한 환자에 대해 환자 또는 가족들의 자율적인 결정에 따라 문서로 치료중지를 요청할 경우 의사는 이를 받아들일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를 그대로 인정할 경우 '회복 불가능' 판정과 '가족들의 결정'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할 틈새가 엿보인다. 치료비 부담을 덜기 위해 또는 환자의 장기를 부정한 방법으로 이용할 목적 아래 억울하게 생명을 빼앗는 사례가 발생할 수도 있는 것이다.
경제적 비용절감을 이유로 환자의 생명을 빼앗는 것은 소극적이든 적극적이든 안락사는 살인 행위이며 의료 윤리 원칙에 어긋난다고 본다. 또한 회생 가능성이 없는 환자라 하더라도 환자에 대해 생명유지 치료를 중단하는 것은 사망의 시기를 앞당기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본다.
소극적 안락사의 경우에도 무제한적으로 허용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타당치 않다. 그러나 도저히 소생가능성이 없는 사실상 식물상태의 환자에 대하여 막대한 비용이 더는 인위적 생명유지장치를 사용하여 인위적으로 생명을 연장하는 것이 옳은가 하는 것도 진지하게 생각해보아야 한다.
따라서 다음과 같은 엄격한 요건과 사정하에서는 인위적인 생명연장장치를 제거하는 행위를 비난하기는 어렵다고 본다.
① 회복이 불가능한 말기 환자로 죽음이 임박한 경우가 명백하여야 한다.
② 죽음을 무의미하게 연장시키는 생명연장장치를 원치 않는다는 의사를 환자가 서면으로 밝혀야 한다. 이 두 가지 조건이 충족되면 수액공급 등의 최소한의 일반적 치료만 하면서 자연의 경과를 밟도록 할 수 있을 것이다.
환자가 의식불명에 빠져 자신의 현재 의사를 밝힐 수 없는 경우에는 환자가 생전에 그같은 의사를 밝혔거나 환자 가족이 다른 불순한 동기없이 환자를 위해 내린 결정인 경우이어야 하고 환자 가족들의 견해가 일치해야 한다.
③ 생명연장 장치를 계속 사용하는 것이 환자 가족들이나 사회적으로 감당하기 힘든경제적 부담이 되는 경우이어야 한다.
Ⅵ. 結
세계 각국이 적극적 안락사에 대하여는 아직까지 엄격하게 제한하는 입장이지만, 소극적 안락사에 대하여는 엄격한 요건하에 법으로 허용하거나 또는 법으로는 금지되어 있어도 사실상 허용하고 있는 것이 일반적이다.
우리 사회에 만연돼 있는 인명경시 풍조가 하루 빨리 개선돼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안락사에 대한 논의가 자칫 인명경시 풍조를 부채질할 위험이 있다.
또한 사회.경제적 약자들 특히, 장애인과 노인들이 자신이 원치 않는 안락사를 당하지 않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 이런 장치가 없다면 안락사는 죽음을 선택할 권리가 아니라 죽어야만 하는 의무로 돌변하게 될지도 모른다.
안락사 옹호론과 불가론이 팽팽히 맞서고 있는 상황에서 호스피스‘(hospice)’ 제도가 하나의 대안으로 제시될 수 있다. 호스피스의 정신은 인간 삶의 질을 존중한다. 하지만 안락사와 달리 환자의 죽음을 결코 의도하지 않는다. 그래서 호스피스는 말기환자가 품위를 유지한 채 자연적인 죽음을 맞이할 때까지 단지 소극적인 치료만 제공한다.
불치의 병으로 인한 임종이 가까워 올수록 환자들은 육체적 고통이 심해지며, 다가오는 죽음의 그림자로 인하여 정신적으로도 불안해질 수밖에 없다. 또한 죽음 이후의 상태에 대한 종교적 소망이 없는 경우엔 죽음에 대해 매우 예민해지기도 한다. 임종을 맞아야 하는 환자들에게는 일반 병원의 딱딱한 분위기와 생명 연장 장치 등의 최신식 장비들 보다 오히려 죽음의 공포를 잊게 해주고, 통증을 적절히 조절해 주며, 죽음 이후의 삶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는 특수한 환경이 필요하다. 이런 목적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바로 호스피스 치료이다.
호스피스는 모든 환자를 거의 본능적으로 살려내고자 하는 일반 병원과는 달리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죽음을 맞이할 것인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아직 우리나라의 현실이 호스피스에 대한 무관심과 열악한 환경인 상황이므로 보다 이에 대한 관심과 제도적인 뒷받침이 필요하다.
아무리 현대의학기술이 발달하였고 다양한 종류의 약이 대량 생산된다 하더라도 여전히 고칠 수 없는 불치병이 전세계적으로 수백 가지가 넘고 문명이 발전될수록 더욱 강력해진 바이러스들이 생겨난다는 것은 세상의 이치이다. 아마겟돈이 도래하기 까진 불멸의 생이란 존재할 수 없고,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죽음으로 가는 고통을 덜어줄 수밖에 없는 것이요, 이것이 바로 의사들의 의무이자 권리이다. 이러한 그들의 권리행사인 안락사에 대해 나는 여지없이 찬성할 수밖에 없고, 지금 이 글에서 함께 손을 들어주고자 한다.
종합병원의 중환자실에서 산소호흡기에 의지한 채 생의 끝을 부여잡고 있는 환자들. 병원에서조차 고개를 저어버린 말기의 환자들. 죽지 못해 산다는 그들의 고통에 찬 신음소리가 가족들은 물론 의사에게도 메아리처럼 울려 퍼진다. 사람들은 그들을 차가운 메스의 손이라며 은근히 비꼬지만 그들도 우리와 다를바 없이 가슴을 가진 인간들이다. 잭케보커언박사의 안락사 사건은 현재까지도 여전히 언론지상이나 윤리학, 종교계에서 논란이 되고 있다. 한평생 의사라는 이름으로 안락사 시킨 수십명의 마지막 순간들을 일일이 비디오 테잎에 담아 전세계를 뒤흔들었던 일이었다. 자신의 안락사 행위가 세상에 알려지면 결국은 큰 희생이 뒤따를 것이라는 것쯤은 잘 알고 있을텐데도 떳떳이 밝히고 나선 그의 ‘용기’는 우리가 어떻게 이해하여야 할 것인가?
나는 일말의 비판에 앞서 한인간으로서 자긍심을 느꼈다. 생의 끝에 힘겹게 매달린 환자의 곁에서 함께 고통을 나누는 그는 ‘인간’이다. 환자를 위한 마지막 주사바늘끝이 떨리던 그도 ‘인간’이었다. 안락사를 떳떳이 밝혀도 정직한 그가 바로 ‘인간’인 것이다. 이런 정과 신념을 지니고 있는 것이 내가 느끼는 인간으로서의 자긍심이다. 마약이라는 최악의 수단까지 동원하며 삶을 포기하는 환자들에게 안락사는 최후의, 그리고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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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5.09.06
  • 저작시기20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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