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주의에 심취해서 세계 도처에 식민지를 만들기에 혈안이 되어있을 당시로 돌아가면 이야기는 조금 달라 질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살다보면 뜻하지 않게 자신이 의도한 바와는 다른 결과를 가져올 수 가 있다. 물론 처음 시작이 선한 의도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당사자로서는 자신이 가져 올 결과에 대해서 역시 비슷한 기대를 하기 마련이다. 영화에서처럼 '종교'라는 이름 하에서 행해진 '사랑'이 뜻하지 않은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서구 열강의 많은 선교사들은 그들이 믿고 있는 종교가 다른 모든 종교 보다 우월한 입장에 있다고 생각했다. 그들이 믿는 믿음만이 유일한 진리이기 때문에 이들의 전한 종교를 접하고 받아들인 사람들은 지금까지 유지해온 전통적인 생활마저 버리기를 강요당했던 것이다. 더욱이 이러한 생활의 변화에는 선교사 자신들이 몸담고 있는 문화로의 자연스러운 변용(acculturation)을 유도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진정한 사랑의 정신은 누군가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줄 수 있는 것, 상대방의 현실에 대해서 그 어떤 판단도 배제하고 동일한 주체로 포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그런데 예수교의 신부들의 모습 속에서 필자는 자신들의 기준에 맞추어서 원주민들이 변화되기를 바라는 마음 즉, 자신들의 수준으로 그들을 동화시키려는 사랑을 볼 수 있었다. 무력을 동원해서 상대의 문화를 철저히 파괴하고 자신들의 문화를 이식시키려는 행위와 예수교 신부들 모습 사이에는 시간의 차이만 있을 뿐 동일한 결과를 가져올 뿐인 것이다. 즉, 다른 사람, 문화는 사라지고 '우리 것'만 남게 된다. 또한 이러한 파괴는 세대에 걸쳐 그 상흔을 남길 수도 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군인들에 의해서 무참히 학살되고 파괴된 인디언 부족의 마지막 생존자 들이 등장한다. 마치 태초의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의 자연스러움처럼 나체의 몸을 한 어린이들. 그들을 통해서 멸종의 위기에 처한 인디언 부족에게 새로운 시작이 있을 것이라는 희망의 메시지를 발견한다. 마치 아담과 하와를 통해서 온 인류가 번영한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인디언 부족의 한 소녀가 줄이 끊어진 바이올린을 들고 배에 올라타는 모습 속에서 이후에 이어질 그들의 문명이 여전히 서구 문명의 끊임없는 영향 아래에 놓일 것 같은 안타까움을 느낄 수 밖에 없다.
종교적 사랑으로 시작한 선한 행위가 이와 같이 무력보다 더한 폭력과 비극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에 때로는 그 모습 그대로 놔두는 것. 즉 상대방을 모든 생각과 행동의 중심에 두는 것. 그게 진정한 사랑은 아닐까하고 생각해 본다. 따라서 가브리엘의 말 속에 등장하는 사랑은 '자기중심적인 사랑'일 뿐이며 그 사랑 속에는 '우리'가 중심에 있고 나머지는 '타자화(他者化)'되기 때문에 하나됨(whole unity)이란 있을 수 없고 단지 지배-복종의 결과만을 가져오게 된다. 이런 점에서 무력과 사랑은 동전의 양면과 같이 함께 할 수도 있으며 그 결과 면에서 더 크고 장기적일 수 있다고 말하고 싶다
사람은 누구나 살다보면 뜻하지 않게 자신이 의도한 바와는 다른 결과를 가져올 수 가 있다. 물론 처음 시작이 선한 의도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당사자로서는 자신이 가져 올 결과에 대해서 역시 비슷한 기대를 하기 마련이다. 영화에서처럼 '종교'라는 이름 하에서 행해진 '사랑'이 뜻하지 않은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서구 열강의 많은 선교사들은 그들이 믿고 있는 종교가 다른 모든 종교 보다 우월한 입장에 있다고 생각했다. 그들이 믿는 믿음만이 유일한 진리이기 때문에 이들의 전한 종교를 접하고 받아들인 사람들은 지금까지 유지해온 전통적인 생활마저 버리기를 강요당했던 것이다. 더욱이 이러한 생활의 변화에는 선교사 자신들이 몸담고 있는 문화로의 자연스러운 변용(acculturation)을 유도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진정한 사랑의 정신은 누군가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줄 수 있는 것, 상대방의 현실에 대해서 그 어떤 판단도 배제하고 동일한 주체로 포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그런데 예수교의 신부들의 모습 속에서 필자는 자신들의 기준에 맞추어서 원주민들이 변화되기를 바라는 마음 즉, 자신들의 수준으로 그들을 동화시키려는 사랑을 볼 수 있었다. 무력을 동원해서 상대의 문화를 철저히 파괴하고 자신들의 문화를 이식시키려는 행위와 예수교 신부들 모습 사이에는 시간의 차이만 있을 뿐 동일한 결과를 가져올 뿐인 것이다. 즉, 다른 사람, 문화는 사라지고 '우리 것'만 남게 된다. 또한 이러한 파괴는 세대에 걸쳐 그 상흔을 남길 수도 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군인들에 의해서 무참히 학살되고 파괴된 인디언 부족의 마지막 생존자 들이 등장한다. 마치 태초의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의 자연스러움처럼 나체의 몸을 한 어린이들. 그들을 통해서 멸종의 위기에 처한 인디언 부족에게 새로운 시작이 있을 것이라는 희망의 메시지를 발견한다. 마치 아담과 하와를 통해서 온 인류가 번영한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인디언 부족의 한 소녀가 줄이 끊어진 바이올린을 들고 배에 올라타는 모습 속에서 이후에 이어질 그들의 문명이 여전히 서구 문명의 끊임없는 영향 아래에 놓일 것 같은 안타까움을 느낄 수 밖에 없다.
종교적 사랑으로 시작한 선한 행위가 이와 같이 무력보다 더한 폭력과 비극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에 때로는 그 모습 그대로 놔두는 것. 즉 상대방을 모든 생각과 행동의 중심에 두는 것. 그게 진정한 사랑은 아닐까하고 생각해 본다. 따라서 가브리엘의 말 속에 등장하는 사랑은 '자기중심적인 사랑'일 뿐이며 그 사랑 속에는 '우리'가 중심에 있고 나머지는 '타자화(他者化)'되기 때문에 하나됨(whole unity)이란 있을 수 없고 단지 지배-복종의 결과만을 가져오게 된다. 이런 점에서 무력과 사랑은 동전의 양면과 같이 함께 할 수도 있으며 그 결과 면에서 더 크고 장기적일 수 있다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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