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민정음의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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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훈민정음의 해설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 훈민정음의 창제

□ 훈 민 정 음

□ 훈민정음 창제 동기과 과정, 그 결과

□ 훈민정음의 해석

본문내용

天 之聖 制度施爲超越百王. 正音之作 無所祖述 而成於自然.
豈以其至理之無所不在 而非人爲之私也. 夫東方有國 不爲不久
而開物成務之大智 盖有待於今日也歟.
正統十一年九月上澣. 資憲大夫禮曹判書集賢殿大提學知春秋館事世子右賓客
臣鄭麟趾拜手稽首謹書.
〈鄭麟趾序 解釋〉
(세상에)천지자연의 (이치에 맞는)소리가 있다면 반드시 천지자연의(이치에 맞는) 글자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중국에서는) 옛 사람이 (그)소리에 따라서 (거기에 맞는) 글자를 만들어서, 그리하여 (그것으로써) 온갖 사물의 실상(實相)과 통하게 하였고, (그것으로써) 삼재의 도리를 책에 싣게 하니, 후세 사람이 능히 (이를) 바꾸지 못하였다. 그러나, 세계는 기후와 토질이 (서로) 나누어져 있으며, 말소리의 기운도 또한 (이에)따라서 서로 다르다. (그런데) 대개 중국 이외의 나라말은 그 말소리는 있으나, 그 글자는 없다. (그래서) 중국의 글자를 빌어서, 그리하여 그 사용을 같이하고 있으니, 이는 마치 둥근 구멍에 모난 자루를 낀 것과 같이 서로 어긋나는 일이어서 어찌 능히 통달해서 막힘이 없을 수 있겠는가?
요컨대 (글자란) 모두 각자가 살고 있는 곳에 따라서 정해질 것이지, 그것을 강요하여 같이하게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우리 동방은 예악(禮樂),문장 등 문물제도가 중국에 견줄만하나 다만 방언 이어가 (나라말만은) 중국과 같지 않다. (그래서) 글 배우는 이는 그 뜻의 깨치기 어려움을 근심하고 법을 다스리는 이는 그 곡절의 통하기 어려움을 괴롭게 여기고 있다. 옛날, 신라의 설총이 처음으로 이두글자를 만들었는데, 관청과 민간에서는 이제까지도 그것을 쓰고 있다. 그러나, 모두 한자를 빌어서 사용하므로, 어떤 것은 어색하고 어떤 것은 (우리말에)들어맞지 않는다. 비단 속되고 이치에 맞지 않을 뿐만 아니라, (우리)말을 적는데 이르러서는 그 만분의 일도 통달치 못하는 것이다.
계해년 겨울에 우리 전하께서 비로소 정음 28자를 창제하시고, 간략하게 예의(例義)를 들어 보이시고 이름을 훈민정음이라고 지으셨다. 이 글자는 상형해서 만들되 글자 모양은 중국의 고전(古篆)을 본떴고, 소리의 원리를 바탕으로 하였으므로 음은 칠조에 맞고, 삼재의 뜻과 이기(二氣,陰陽)의 묘가 다 포함되지 않은 것이 없다. (게다가)이 28글자를 가지고도 전환이 무궁하여 간단하고도 요긴하고 정(精)하고도 통하는 까닭에, 슬기로운 사람은 하루 아침을 마치기도 전에 (이를) 깨우치고, 어리석은 이라도 열흘이면 배울 수 있다. 이 글자로써 한문을 풀면 그 뜻을 알 수 있고, 이 글자로써 송사를 심리하더라도 그 실정(實情)을 알 수 있게 되었다. 한자음은 청탁을 능히 구별할 수 있고, 악가(樂歌)의 율려(律呂)가 고르게 되며, 쓰는 데 갖추어지지 않은 바가 없고,(어떤 경우에라도) 이르러 통달하지 않는 곳이 없다. 바람소리, 학의 울음소리, 닭 우는 소리, 개 짖는 소리일지라도 모두 이 글자를 가지고 적을 수가 있다.
드디어 (세종께서) 저희들에게 자세히 이 글자에 대한 해석을 해서 여러 사람들을 가르치라고 분부하시니, 이에 신(臣)은 집현전 응교 최 항, 부교리 신 박팽년, 신 신숙주, 수찬 신 성삼문, 돈녕부 주부 신 강희안, 행(行)집현전부수찬 신 이개, 신 이선로 등과 더불어 삼가 여러 해(解 )와 예(例)를 지어서 이 글자에 대한 경개를 서술하고,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스승이 없어도 스스로 깨우치도록 바랐사오나, 그 깊은 연원이나 , 자세하고 묘한 깊은 이치에 대해서는, 신들이 능히 펴 나타낼 수 있는 바가 아니다. 공손히 생각하옵건대 우리 전하께서는 하늘이 내신 성인으로서 지으신 법도와 베푸신 시정 업적이 백왕(온갖 임금)을 초월하여, 정음을 지으심도 어떤 선인(先人)의 설을 이어 받으심이 없이 자연으로 이룩하신 것이라. 참으로 그 지극한 이치가 들어 있지 아니한 데가 없으니, (이는) 어떤 개인의 사적(私的)인 조작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대저 동방에 나라가 있음이 오래 되지 않음이 아니나, 문물을 창조하시고 사업을 성취시켜 주실 큰 지혜는 대개 오늘을 기다리심이 계옵셨구나! 정통 11년 9월 상한, 자헌대부 예조판서 집현전 대제학 지춘추관사 세자 우빈객, 신 정인지는 두 손 모아 절하고 머리 조아려 삼가 씀.
<鄭麟趾序 解說>
정인지 서문은 훈민정음해례본의 맨 끝에 붇어 있기 때문에, 이 책의 맨 앞에 있는 세종대왕의 서문과 구별하기 위하여 「鄭麟趾後書」라고도 한다. 정인지 서문은 세종 28년 9월에 世宗御製序文,訓民正音本文과 함께 게재되어 있어서, 훈민정음해례본이 1940년경에 안동지방에서 발견되기 전부터 학자들 사이에 알려져 있었다. 특히 이 서문에는 訓民正音의 창제에 관하여 「象形而字倣古篆」이라고 표현한 대목이 있어서, 꾸준히 고전문자를 보방하여 창제하였다는 학설을 꾸준히 뒷받침하고 있다 이 서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① 고인(古人)이 만든 문자를 후세 사람들이 마음대로 바꿀 수 없다.
② 그러나 지리적 조건이 다르면 사람의 발음도 이에 따라 달라진다. 그런데도 중국 이외의 나라에서는 고유문자가 없다고 한자를 빌어다 쓰고 있으니 제대로 될 이치가 없다.
③ 우리나라의 문화수준이 중국과 견줄 만하나 중국과 언어가 달라 한자/한문을 사용하기 때문에 책을 공부하는 이는 그 뜻을 깨우치기 어려워하고 죄인을 다스리는 이는 한문으로 기록된 내용을 모른다.
④ 신라 때부터 써온 이두가 불편하고 실지 언어생활에서는 만분지일도 의사를 전달할 수 없다.
⑤ 그래서 세종 25년 겨울에 세종께서 정음28자를 만들고 훈민정음이라고 이름을 붙이시었다.
⑥ 상형해서 글자를 만들었는데 중국 고전 문자와 비슷하다.
⑦ 불과 28자지만 얼마라도 응용이 가능하다.
⑧ 배우기 쉬워서 하루 아침, 또는 열흘이면 익힐 수 있다.
⑨ 이 글자가 창제되어 한문책의 뜻도 쉽게 알 수 있게 되었고, 죄인의 뜻도 알 수 있게 되었다. 또 한자음도 분명해졌고, 음악도 음계가 고르게 되었으며, 바람소리, 닭울음소리도 다 적을 수 있게 되었다.
⑩ 이 책을 편찬한 사람은 최항등 8명이다.
⑪ 이 글자는 순전히 세종대왕의 독창적인 창안에 의해 창제된 것이다.

키워드

  • 가격3,000
  • 페이지수26페이지
  • 등록일2005.09.26
  • 저작시기2006.1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3133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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