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로 보는 친일파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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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인물로 보는 친일파 역사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서론-친일파의 정의, 형성배경, 특징, 현재동태 및 분류

▶본론-친일파의 활동 및 활동한 인물들

▶결론과 우리조의 생각

본문내용

향력을 지금이라도 단호히 처단, 척결하지 않으면 안된다.
♣우리조의 생각
왜? 다시 친일파를 거론하나?
왜 다시 친일파인가라는 질문을 할 수 있다. 이런 질문의 저변에는 지난 이야기니 덮어두고 조용히 사는 것이 좋지 않으냐하는 식의 몰 역사적인 사고가 깔려 있다. 그러면서 3.1절은 왜 찾고, 8.15광복절은 찾고, 독립운동 이야기는 뭣 하러 꺼내느냐. 한마디로 지나간 이야기인데. 이런 이야기하는 사람들에게는 지나간 과거는 아무런 의미도 없고, 오직 다가올 미래만 논할 가치가 있는 모양이다. 그러면 자신은 어디서 왔는가. 미래에서 왔는가? 해방 후 친일파 처단문제는 신 국가 건설과 함께! 우리 민족에게 주어진 양대 과제 중의 하나였다. 당시 친일파, 즉 반민족행위자 처단은 민중들의 보편적인 정서이자 시대적 당위였다. 당시의 친일파 처단에 대한 민중적 열기는 대단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말해 해방 직후 우리는 친일파 처단에 실패했다. 이는 미군정 3년이 지난 시점에서 이미 절호의 기회를 놓친 데다 이승만 정권의 방해공작으로 명분과 현실간에는 이미 커다란 괴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국민의 절대적인 지지 속에서 출범한 반민특위가 좌절되면서 건국 초기부터 우리 사회는 극도의 정신적 혼란상황을 겪게 되었다. 법의 존엄성은 물론 민족자존마저 땅에 떨어졌으며 친일파들에게는 면죄부가 주어졌다. 이후 이 문제는 오늘날까지도 우리 사회의 대표적인 논쟁의 대상으로 남아왔다.
현 시점에서도 친일파 문제를 재론하는 것은 몇 가지 점에서 당위성을 가지고 있다고 하겠다.
첫째, 친일파 문제는 사건으로 치면 미제(未濟)사건에 속한다. 사건발생 당시 관련법이나 조사 부족으로 처리가 안 됐거나, 시대적 상황 때문에 제대로 처리되지 못한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의 반민족행각을 계속적으로 조사하고 따지는 것은 민족사적 과제라 하겠다.
둘째, 통일에 대비해서다. 남한과 달리 북한은 해방 후 친일 반민족자들을 철저히 처단하여 민족정기를 확립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북한이 그 동안 역대 남한 정권을 두고 정통성이 없는 정권이라고 힐난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이라도 친일파들의 죄상을 낱낱이 조사하여 정확한 기록으로 남겨야 통일시대에 남북이 역사교훈의 자료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셋째, 사회정의를 바로 세우기 위해서다. 해방 후 친일파들은 이 나라의 사회정의를 짓밟았다. 이들은 전천후 권력 지향적 속성을 가진 무리들로 그 동안 우리 사회 상층부의 권력엘리트로 군림해 왔다. 그 동안 우리 사회는 과거경력은 접어두고 현재의 지위나 명성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그릇된 관행을 키워왔다. 이제라도 이 같은 사회풍조는 우리 사회에서 없애야 한다.
넷째, 새로운 한 세기를 희망 속에서 맞기 위해서다. 친일파 문제는 금세기에 발생한 것으로, 가능하다면 금세기 내에 가능한 선에서라도 마무리짓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나 정작 금세기 최대의 민족사적 논란거리이자 과제인 이 문제에 대해서는 마무리작업의 노력이 보이지 않고 있다. 정부는 물론, 학계조차도 이 문제에 대해 적극적인 자세를 보인 적이 없다. 이처럼 미제사건으로 남아 그 진실에 대한 논란은 계속될 것이 뻔하다.
끝으로, 민족사에 옷깃을 여미는 거울로 삼기 위해서다. 민족사를 더럽힌 사람은 그 자신은 물론 후세 대대로 씻을 수 없는 오명으로 기록된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우리가 만약 다시 외세의 지배를 받는다면 민족반역자가 나오지 않을 것인가란 질문에 불행히도 우리는 그렇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없다. 아니, 외세의 지배에서 벗어난 현재까지도 우리는 우리 주변에서 민족반역자를 숱하게 보고 있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지나간 일이라고 외면하는 동안 오히려 독립유공자가 누려야 할 몫을 빼앗고 있다. 청산되지 못한 역사는 단지 과거가 아니다. 살아 있을 때처럼 죽어서도 우리 역사를 왜곡시키고 있는 그들은 지금 바로 이곳에 있다.
친일파가 죽어서도 훈장 받는 오늘의 현실
앞에서도 거론했지만 8.15 이후에도 이들이 존재할 수 있었던 정치풍토에 대해 우리는 관심을 돌려야 할 것 같다. 그들이 8.15 이후 “내가 정말 잘못했다.”고 반성하고 스스로 비판을 했다면 이후에 새로운 국가를 만드는데 있어서 그들의 지식과 활동이 얼마나 긴요하게 쓰였겠는가? 어느 정도 자신의 과오에 대해 반성의 태도를 보인 김활란 과는 달리 모윤숙의 경우는 아주 달랐다. 일제 때 징병을 찬양하던 입으로 이제는 “조선학병의 억울한 진군” 운운하면서 “일제 말기에는 사실상 내가 무슨 글을 쓰든 간에 그들에게 충성하듯이 발표되었다. 그리고 그런 글들이 번역되어 나온 것까지는 견딜 수 있었지만 창씨는 목숨을 걸고 못할 것 같았다.” 하면서 창씨개명을 안한 것이 굉장한 항일투쟁인 것처럼 말한다. 그 당시는 창씨개명을 안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내세우기 위해서라도 친일파 중에 몇 사람들은 안 하기도 했다. 반성이 아닌 친일행위에 대해 단죄하는 것을 극단적으로 반대했다. 일제 때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누구를 비판하느냐는 식으로 이야기했다. 친일행위를 하지 않은 사람이 이런 이야기를 했다면 무척 관대하다는 말을 들을지 모르겠지만 모윤숙처럼 일본을 찬양하고 일제의 정책 수행에 적극 지원하는 글들을 많이 남기고 강연까지 했던 사람이 그런 말을 했다는 것은 참 뻔뻔스러운 경우라 할 수 있다. 그런 인물이 대한민국훈장을 받고 죽어서까지도 훈장을 받는 영예를 누렸던 것이 지금 우리의 현실이다. 이 현실을 제대로 해석하고 풀어야 할 과제가 앞으로 우리에게 남은 일이 아닌가 생각한다.
여하튼 다시 한번 우리가 생각해보았으면 하는 것은 그들의 친일 행위가 전혀 언급되지 않은 채 그들이 사회적 유명인사로 지금까지 남을 수 있는 오늘의 현실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그리고 어려운 시대상황에서 올바른 삶의 태도는 과연 어떤 것인지를 반추해 보아야 할 것이고, 우리의 반쪽의 역사로 인해 친일파가 지금까지도 추앙 받고 그들에 의한 역사가 우리 민족 전체의 역사인 것처럼 받아들여졌다는 점을 상기하고, 우리 민족의 자존심을 위해서 이것을 올바르게 검토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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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5.10.07
  • 저작시기2005.10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315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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