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들어가는 말
Ⅱ.본론
1.바른 행동의 법칙
2.변하지 않는 것
3.루이스VS프로이트
1)갈망
2)죄책감
3)영적인 교만
4.그 법칙의 배후에 있는 힘
Ⅲ.나오는 말
Ⅱ.본론
1.바른 행동의 법칙
2.변하지 않는 것
3.루이스VS프로이트
1)갈망
2)죄책감
3)영적인 교만
4.그 법칙의 배후에 있는 힘
Ⅲ.나오는 말
본문내용
했다. 그는 바로 이 문제-도덕적 태도가 본성의 일부인 것처럼 아주 깊이 뿌리 박혀 있다는 사실- 때문에 끊임없이 골머리를 앓았다. 프로이트는 퍼트남 박사에게 보낸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왜 나는 항상 훌륭하게 처신하고 다른 사람들을 용서할 준비가 되어 있고 어디서나 가능한 한 친절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 나 자신에게 묻는다면, 그리고 내가 계속 그렇게 행동할 경우 잔인하고 신뢰할 수 없는 사람들 때문에 손해 보고 상처받게 됨을 알면서도 그렇게 행동하기를 포기하지 않는 이유를 스스로에게 묻는다면, 사실상 나는 아무 답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나서 프로이트는 자기 속을 들여다보면 도덕률의 증거가 나타난다는 점을 인정했다.
Ⅲ.나오는 말
사후 반세기가 지났음에도 C. S. 루이스와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저술들이 계속해서 우리의 문화에 미치는 영향력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그들의 영향력을 설명할 수 있는 한 가지 근거는, 깨닫든 깨닫지 못하든 우리 모두는 프로이트가 옹호하는 유물론적 세계관 아니면 루이스가 옹호하는 영적 세계관 중의 하나를 어떤 형태로든 받아들이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그러나 좀 더 미묘한 이유들이 있다. 아마도 루이스와 프로이트는 우리 내면의 갈등을 대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마음 한 편에서는 권위를 거부하며 프로이트와 함께 “나는 항복하지 않겠다”라고 말하지만, 다른 한 편에서는 루이스처럼 우리 내면에 깊이 자리 잡은 절대자와의 만남을 향한 갈망을 깨닫는다.
가장 중요한 질문은 신의 존재에 관한 질문이라는 점에 루이스와 프로이트는 동의했다. 우주를 초월하는 지성적 존재가 있을까? 두 사람 모두 우리의 정체성, 목적, 운명을 이해하는 데 이 질문이 깊은 연관이 있음을 알았기 때문에 이 질문에 답하는 일에 인생의 상당 기간을 쏟아 부었다.
그러나 프로이트와 회심 전의 루이스는 그 증거에 맞서기를 피했다. 회피하기는 어렵지 않다. 주의를 다른 곳으로 돌리거나 그러는 자신을 합리화하면 된다. 우리는 그러한 무거운(그러나 불안을 일으키는) 주제는 나이가 더 들면 생각하자고 스스로에게 말한다. 당장에는 더 급한 일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루이스가 회심하기 전에 그랬듯이, 사실 우리는 알고 싶지 않은 것이다. 우리는 ‘고의적인 무지’와 ‘마음 속 깊이 자리 잡은 권위에 대한 증오’를 강화한다. ‘초월적인 간섭자’ 라는 관념이 불쾌하고 귀찮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삶에 대해, 프로이트와 회심 전의 루이스가 그랬던 것처럼 ‘이것은 내 일이며 나만의 일이다’라고 느낀다.
루이스와 프로이트는 둘 다 마음 속 깊이 자리 잡은 갈망도 경험했다. 두 사람 모두 이러한 감정을 독일어인 ‘젠주흐트’(Sehnsucht:갈망)을 사용하여 묘사했다. 66세 때 프로이트는 거듭 “이상하고 비밀스러운 갈망들”에 대해 말하면서, 이러한 것이 “아마도 아주 다른 종류의 삶에 대한” 갈망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루이스는 이러한 갈망의 경험들을 인생의 “중심 이야기”라고 묘사했다. 회심 후에 그는 그러한 갈망의 경험들이 외부의 초월적 존재에 대한 지시자로서, 즉 창조자를 가리키는 “이정표”로서 가치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마도 우리 또한 그러한 갈망을 경험할 테지만, 프로이트처럼 혼동 상태로 머무르거나 아니면 루이스처럼 이정표를 인정하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프로이트와 루이스의 저술들은 우리가 종종 그 이정표를 보는 데 겪는 어려움, 즉 하나님에 대한 이미지를 왜곡하는 경향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임상적으로 유용하다고 증명된 프로이트의 이론 중 하나는 전이 이론이다. 그는 어린 시절 우리 삶에 권위를 갖고 있던 인물에게서 느낀 감정을 현재의 권위 있는 인물에게 대입함으로써 현재의 인물을 왜곡하고 갈등하는 경향을 무의식적인 전이 과정으로 설명한다.
아버지에 대한 루이스와 프로이트의 강렬한 부정적인 감정은 하나님에 대한 그들의 부정적인 태도에 영향을 끼쳤다. 회심 후에 루이스는 자기 내면의 이러한 경향에 대해 조심스럽게 경계했다. “하나님에 대한 내 생각은 신성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매시간 깨어져야 하는 것이다. 그분이 스스로 깨 버리신다. 그분은 위대한 우상파괴자이시다. 이 깨뜨림이야말로 그분이 현존하신다는 한 가지 표징이라고 말할 수도 있지 않을까? 모든 실체는 우상 파괴적이다.” C. S. 루이스, 『헤아려 본 슬픔』, 강유나 역 (서울: 홍성사, 2004), pp.94-95
루이스와 프로이트는 둘 다 도덕률에 복종하려 했는데, 프로이트는 자기 행동을 다른 사람과 비교 평가하여 자신이 “대다수의 다른 사람들보다 더 낫다”고 결론지었다. 루이스는 자기 행동을 도덕률이 요구하는 바와 비교했고, “나 자신의 성격에 무시무시한 것들”이 있음을 발견하고 “질겁했다.” 이로 인해 그는 자신이 외부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고, 이 깨달음은 그가 무신론을 버리고 영적 세계관으로 이행하는 많은 단계 중의 하나가 되었다.
※참고문헌
루이스, C. S.『스크루테이프의편지』. 김선형 역. 서울:홍성사, 2000.
『천국과지옥의이혼』. 김선형 역. 서울:홍성사, 2003.
『예기치못한기쁨』. 강유나 역. 서울:홍성사, 2004.
『헤아려본슬픔』. 강유나 역. 서울:홍성사, 2004.
『고통의문제』. 이종태 역. 서울:홍성사, 2005.
『순전한기독교』. 이종태장경철 역. 서울:홍성사, 2005.
『시편사색』. 이종태 역. 서울:홍성사, 2005.
리드, Gerard.『C. S.루이스의일곱가지악과선』. 김병제 역. 서울:누가, 2004.
얀시,Philp.『놀라운하나님의은혜』. 윤종석 역. 서울:IVP, 2004.
프로이트, S.『문명속의불만』. 김석희 역. 재판. 서울:열린책들, 2003.
『새로운정신분석강의』. 임홍빈홍혜경 역. 재판. 서울:열린책들, 2003.
『예술,문학,정신분석』. 정장진 역. 재판. 서울:열린책들, 2003.
『정신분석학개요』. 박성수한승완 역. 재판. 서울:열린책들, 2003.
『정신분석학의근본개념』.윤희기박찬부역. 재판. 서울:열린책들, 2003.
『종교의기원』. 이윤기 역. 재판. 서울:열린책들, 2003.
Ⅲ.나오는 말
사후 반세기가 지났음에도 C. S. 루이스와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저술들이 계속해서 우리의 문화에 미치는 영향력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그들의 영향력을 설명할 수 있는 한 가지 근거는, 깨닫든 깨닫지 못하든 우리 모두는 프로이트가 옹호하는 유물론적 세계관 아니면 루이스가 옹호하는 영적 세계관 중의 하나를 어떤 형태로든 받아들이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그러나 좀 더 미묘한 이유들이 있다. 아마도 루이스와 프로이트는 우리 내면의 갈등을 대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마음 한 편에서는 권위를 거부하며 프로이트와 함께 “나는 항복하지 않겠다”라고 말하지만, 다른 한 편에서는 루이스처럼 우리 내면에 깊이 자리 잡은 절대자와의 만남을 향한 갈망을 깨닫는다.
가장 중요한 질문은 신의 존재에 관한 질문이라는 점에 루이스와 프로이트는 동의했다. 우주를 초월하는 지성적 존재가 있을까? 두 사람 모두 우리의 정체성, 목적, 운명을 이해하는 데 이 질문이 깊은 연관이 있음을 알았기 때문에 이 질문에 답하는 일에 인생의 상당 기간을 쏟아 부었다.
그러나 프로이트와 회심 전의 루이스는 그 증거에 맞서기를 피했다. 회피하기는 어렵지 않다. 주의를 다른 곳으로 돌리거나 그러는 자신을 합리화하면 된다. 우리는 그러한 무거운(그러나 불안을 일으키는) 주제는 나이가 더 들면 생각하자고 스스로에게 말한다. 당장에는 더 급한 일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루이스가 회심하기 전에 그랬듯이, 사실 우리는 알고 싶지 않은 것이다. 우리는 ‘고의적인 무지’와 ‘마음 속 깊이 자리 잡은 권위에 대한 증오’를 강화한다. ‘초월적인 간섭자’ 라는 관념이 불쾌하고 귀찮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삶에 대해, 프로이트와 회심 전의 루이스가 그랬던 것처럼 ‘이것은 내 일이며 나만의 일이다’라고 느낀다.
루이스와 프로이트는 둘 다 마음 속 깊이 자리 잡은 갈망도 경험했다. 두 사람 모두 이러한 감정을 독일어인 ‘젠주흐트’(Sehnsucht:갈망)을 사용하여 묘사했다. 66세 때 프로이트는 거듭 “이상하고 비밀스러운 갈망들”에 대해 말하면서, 이러한 것이 “아마도 아주 다른 종류의 삶에 대한” 갈망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루이스는 이러한 갈망의 경험들을 인생의 “중심 이야기”라고 묘사했다. 회심 후에 그는 그러한 갈망의 경험들이 외부의 초월적 존재에 대한 지시자로서, 즉 창조자를 가리키는 “이정표”로서 가치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마도 우리 또한 그러한 갈망을 경험할 테지만, 프로이트처럼 혼동 상태로 머무르거나 아니면 루이스처럼 이정표를 인정하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프로이트와 루이스의 저술들은 우리가 종종 그 이정표를 보는 데 겪는 어려움, 즉 하나님에 대한 이미지를 왜곡하는 경향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임상적으로 유용하다고 증명된 프로이트의 이론 중 하나는 전이 이론이다. 그는 어린 시절 우리 삶에 권위를 갖고 있던 인물에게서 느낀 감정을 현재의 권위 있는 인물에게 대입함으로써 현재의 인물을 왜곡하고 갈등하는 경향을 무의식적인 전이 과정으로 설명한다.
아버지에 대한 루이스와 프로이트의 강렬한 부정적인 감정은 하나님에 대한 그들의 부정적인 태도에 영향을 끼쳤다. 회심 후에 루이스는 자기 내면의 이러한 경향에 대해 조심스럽게 경계했다. “하나님에 대한 내 생각은 신성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매시간 깨어져야 하는 것이다. 그분이 스스로 깨 버리신다. 그분은 위대한 우상파괴자이시다. 이 깨뜨림이야말로 그분이 현존하신다는 한 가지 표징이라고 말할 수도 있지 않을까? 모든 실체는 우상 파괴적이다.” C. S. 루이스, 『헤아려 본 슬픔』, 강유나 역 (서울: 홍성사, 2004), pp.94-95
루이스와 프로이트는 둘 다 도덕률에 복종하려 했는데, 프로이트는 자기 행동을 다른 사람과 비교 평가하여 자신이 “대다수의 다른 사람들보다 더 낫다”고 결론지었다. 루이스는 자기 행동을 도덕률이 요구하는 바와 비교했고, “나 자신의 성격에 무시무시한 것들”이 있음을 발견하고 “질겁했다.” 이로 인해 그는 자신이 외부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고, 이 깨달음은 그가 무신론을 버리고 영적 세계관으로 이행하는 많은 단계 중의 하나가 되었다.
※참고문헌
루이스, C. S.『스크루테이프의편지』. 김선형 역. 서울:홍성사, 2000.
『천국과지옥의이혼』. 김선형 역. 서울:홍성사, 2003.
『예기치못한기쁨』. 강유나 역. 서울:홍성사, 2004.
『헤아려본슬픔』. 강유나 역. 서울:홍성사, 2004.
『고통의문제』. 이종태 역. 서울:홍성사, 2005.
『순전한기독교』. 이종태장경철 역. 서울:홍성사, 2005.
『시편사색』. 이종태 역. 서울:홍성사, 2005.
리드, Gerard.『C. S.루이스의일곱가지악과선』. 김병제 역. 서울:누가, 2004.
얀시,Philp.『놀라운하나님의은혜』. 윤종석 역. 서울:IVP, 2004.
프로이트, S.『문명속의불만』. 김석희 역. 재판. 서울:열린책들, 2003.
『새로운정신분석강의』. 임홍빈홍혜경 역. 재판. 서울:열린책들, 2003.
『예술,문학,정신분석』. 정장진 역. 재판. 서울:열린책들, 2003.
『정신분석학개요』. 박성수한승완 역. 재판. 서울:열린책들, 2003.
『정신분석학의근본개념』.윤희기박찬부역. 재판. 서울:열린책들, 2003.
『종교의기원』. 이윤기 역. 재판. 서울:열린책들,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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