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역사
본 자료는 2페이지 의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여 주세요.
닫기
  • 1
  • 2
  • 3
  • 4
  • 5
  • 6
  • 7
해당 자료는 2페이지 까지만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2페이지 이후부터 다운로드 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목차

(1) 그리스인의 이동
(2) 암흑시대와 폴리스의 성립

2 폴리스 시대
(1) 스파르타의 융성
(2) 식민(植民)과 참주(僭主)의 시대
(3) 최성기(最盛期)
(4) 쇠퇴기

본문내용

의 전몰자에 대한 추도연설)은 역사가 투키디데스의 《전사(戰史)》 속에 전해지고 있다. 아테네는 동맹시의 공조(貢祖)를 사용하여 페르시아군에 의하여 파괴된 시의 부흥을 도모하여, 성벽(城壁)의 강화, 파르테논과 그 밖의 신전의 건조(建造), 아크로폴리스의 미화(美化) 등을 하였다. 동맹시의 공조는 또한 아테네의 민주화를 철저하게 하는 경제적 기초가 되었다. 아테네는 문화적으로도 전(全)그리스의 중심이 되었으며, 여러 폴리스에서 아낙사고라스·프로타고라스 등의 학자와 폴리클레이토스·폴리그노토스 등의 예술가들이 모여들었다. 아이스킬로스·소포클레스·에우리피데스 등의 비극(悲劇), 아리스토파네스의 희극(喜劇) 상연, 소피스트와 소크라테스에 의한 교육 등이 이루어졌으며, 신전의 건축, 조각과 회화 등의 미술품에 의하여 도시는 미화되었다. 상공업에서도 아테네는 그리스의 중심이 되었는데, 도기(陶器)의 제조도 번성했으며, 지중해 서부로의 무역에도 진출하였다. 그런데 코린트와 이해(利害)가 대립하기에 이르렀고, 코린트가 가맹하고 있던 <폘로폰네소스동맹>의 맹주(盟主) 스파르타는 이전부터 아테네의 융성을 질시(嫉視)하고 있었으므로 마침내 BC 431년 아테네를 공략, 아테네와 스파르타가 각각의 동맹시를 이끌고 싸우는 <펠로폰네소스전쟁>이 시작되었다. 전쟁은 27년간 계속되었으나 아테네의 패전으로 끝났다.
(4) 쇠퇴기
펠로폰네소스전쟁 후, 고대 그리스는 쇠퇴기에 접어들었다. 아테네를 대신하여 스파르타가 그리스의 패권을 장악하였다. 그런데 그것이 도리어 스파르타 쇠망(衰亡)의 간접적인 원인이 되었다. 스파르타는 그리스의 여러 폴리스를 지배해야 했기 때문에 리쿠르고스의 쇄국책(鎖國策)을 강행할 수 없게 되었으며, 화폐경제(貨幣經濟)를 부정하는 자급자족경제가 불가능해졌다. 또한 스파르타는 여러 폴리스의 민주정을 폐지하고 과두정(寡頭政)을 강제했기 때문에 여러 폴리스 시민의 반발을 자초하였다. 테베·아테네·코린트·아르고스는 동맹하여 스파르타에 반항하였으나(코린트전쟁), 스파르타는 페르시아의 힘을 빌어서 전쟁을 종결시켰다. 그후 테베는 에파미논다스가 나와 민주화를 추진하고, 또한 새로운 사진전법(斜陣戰法)을 고안하여 강국이 되었으며, 스파르타를 격파하여(레우크트라 싸움, BC 371) 그리스의 패권을 잡았다. 그런데 에파미논다스의 죽음(BC 362)으로 그 패권도 오래 계속되지 못했으며, 그후는 전그리스를 지배할 수 있는 힘을 지닌 폴리스가 나타나지 않은 채 여러 폴리스의 대립·항쟁의 시대가 되었다. 페르시아는 금전과 함선을 이용하여 여러 폴리스를 서로 싸우게 만들어 다시 소아시아의 그리스 여러 도시의 지배권을 장악하였다. 그리스의 폴리스가 대립과 항쟁을 계속하고 있는 동안에 북방에서는 마케도니아가 대두하기 시작하고 있었다. BC 359년 즉위한 필립포스 2세는 중앙집권을 실현하고 테베로부터 배운 전술을 개량해 먼저 트라키아를, 이어서 중부 그리스를 정복하고 BC 338년에는 카이로네이아에서 아테네·테베의 연합군을 격파하여 마침내 전그리스의 패권을 잡았다.

추천자료

  • 가격1,200
  • 페이지수7페이지
  • 등록일2005.10.24
  • 저작시기2005.10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316821
본 자료는 최근 2주간 다운받은 회원이 없습니다.
청소해
다운로드 장바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