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와 그림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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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한자로 읽는 동양화

2. 문자도

3. 한자가 삽입된 동양화

4. 사군자

결론

본문내용

군자라고 부른다. 사군자라는 명칭이 생긴 시기는 확실치 않으나 명대(明代)에 이르러서이며 그 이전에는 개별적으로 기록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명칭이 붙게 된 것은 수많은 식물들 중에서도 매화는 설한풍 속에서 맑은 향기와 함께 봄을 제일 먼저 알리며 피고, 난초는 깊은 산골짜기에서 홀로 은은한 향기를 퍼뜨리고, 국화는 늦가을 찬서리를 맞으면서 깨끗한 꽃을 피우고, 대나무는 추운 겨울에도 푸른잎을 계속 유지하는 등, 그 생태적 특성이 모두 고결한 군자의 인품을 닮았기 때문이었다.
우리 나라에서 사군자화가 처음 그려진 시기는 고려 시대로 보고 있다. 고려 시대에 이어 조선 초기에도 사군자화가 계속 문인들 사이에 그려졌다. 중기의 사대부 화가인 이정, 오달제, 어몽룡 등은 조선 시대 묵죽, 묵매화의 양식적 전통을 수립하였다. 후기에 들어오면서 조선 시대 사군자화는 질적 양적인 면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업적을 남겼다. 김정희와 조희룡을 정점으로 한 말기의 사군자화는 약간 수그러진 듯하나 김규진, 조석진, 이하응 등의 그림에서 새로운 구도와 필치에 의한 시대적 감각의 표현이 나타났다.
매화
매화는 으뜸으로 '아치고절'(雅致高節, 우아한 풍치와 고상한 절개), 혹은 빙자옥질(氷姿玉質)이라 한다.
안민영의 시조 <매화사>
빙자옥질(氷姿玉質)이여 눈 속의 네로구나
가만이 향기(香氣) 노아 황혼월(黃昏月)을 기약(期約)하니,
아마도 아치고절(雅致高節)은 너 뿐인가 하노라.
이렇게 묵화의 소재나 글감의 소재로 사랑을 받던 사군자는 각기 자신을 상징하는 고사성어들을 가지고 있다.
매화는 위에서 소개했듯이 '아치고절'(雅致高節, 우아한 풍치와 고상한 절개), 혹은 빙자옥질(氷姿玉質)이요, 난초는 '외유내강'(外柔內剛, 겉은 부드럽고 안은 강한 성품)의 꽃이라고 하며, 국화는 '오상고절'(傲霜孤節, 서리에도 굴하지 않고 고고하게 피는 절개)요, 대나무는 '세한고절'(歲寒孤節, 추위 속에서도 오히려 고고한 절개를 지킴)이다.
이렇게 자연을 바라보면서 그들의 품성을 살펴 삶의 지표로 삼을 만한 소중한 것들을 끌어내었던 조상들의 삶은 자연과 일치된 삶이요, 자연적인 삶인 것이다.
매화의 꽃말은 고결, 충실, 인내, 맑은 마음 등 좋은 꽃말들을 풍성하게도 간직하고 있으며, 이 모든 것을 통틀어 '아름다운 덕'이라는 꽃말로 총칭하기도 한다.
눈 속에 핀 매화를 가리켜 '설중매'라하고, 강남일지춘(江南一枝春)이라고도 부르며, '일지춘'이 바로 봄의 전령인 매화를 가리키는 말이고. 우리가 흔히 매실나무라고 부르기도 하고, 청매를 가리켜 청객(淸客)이라고도 한다.
난초
깊은 산골짜기에서 홀로 은은한 향기를 퍼뜨림-->고결한 군자의 인품 닮음.
이러한 난초의 고결한 성품에 대한 예찬은 이병기의 연작시조 <난초>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빼어난 가는 잎새 굳은 듯 보드랍고
자줏빛 굵은 대공 하얀 꽃이 벌고
이슬은 구슬이 되어 마디마디 달렸다.
본디 그 마음은 깨끗함을 즐겨하여
정(淨)한 모래 틈에 뿌리를 서려 두고
미진(微塵)도 가까이 않고 우로(雨露) 받아 사느니라.
-이병기 <난초>중
김정희 <부작란도>
담묵의 몇 안되는 필선으로 그려진 난 한 포기. 난 주위의 여백에는 강건하고 활달한 추사의 글씨가 가득하다. 문자향(文字香), 서권기(書卷氣)가 넘치는 이 작품은 그림이면서 동시에 서예작품이다
"조선후기의 묵란화가로도 이름을 날림"
그림의 화제에는 "불이",즉 절대평등과 절대조화의 개념에 대한 강조와, 자신의 그림에 대한 자신감이 드러나고 있다.
국화
송순의 시조
풍상(風霜)이 섞어 친 날에 갓 피운 황국화(黃國花)를
금분(金盆)에 가득 담아 옥당(玉堂)에 보내오니
도리(桃李)야 꽃인 체 마라 님의 뜻을 알괘라
서리와 바람이 섞어친 날에 막 피워 온 노란 국화를
좋은 화분에 가득 담아 (내가 일하고 있는) 홍문관에 보내오니
복숭아꽃과 오얏꽃아 너희들은 꽃이라고 마라, 임의 뜻을 알겠구나.
송순이 홍문관에서 일을 하고 있을 때에 당시 임금인 명종께서 직접 국화를 키워 선물로 보내 오신 상황
이 때 국화는, 신하가 한 임금만을 섬기는 것을 미덕으로 삼듯, 고고한 절개를 지키는 삶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다른 시조에서 국화의 모습
이상보의 시조. 오상고절:
오상고절은, 국화가 가을철에 피는 속성을 보아, 고고하고 외로이 절개를 지키는 모습이라고 여긴 말. 국화가 왜 절개를 상징하게 되었는지 이 시조를 통해서 알 수 있음.
국화도 다른 사군자와 마찬가지로 북송대부터 문인화의 성격을 띠고 그려지기 시작.
그러나 묵국만을 전문으로 다룬 화가는 매우 드물었으며 청말기에 와서 회화성 강한 채국이 많이 그려짐
우리 나라에서도 묵국화는 그다지 성행하지 못했고 조선 말기 이후로 오히려 꽃그림으로서 보다 많이 다루어짐

대나무는 옛부터 문인사대부들의 가장 많은 애호를 받으면서 사군자의 으뜸으로 꼽혀 온 것이다. 그것은 대나무의 변함없는 청절한 자태와 그 정취를 지조있는 선비의 묵객들이 사랑했기 때문일 것이다. 늘 푸르고 곧고 강인한 줄기를 가진 이러한 대나무는 그래서 충신열사와 열녀의 절개에 비유되기도 하였다.
나모도
아닌 거시 플도 아닌 거시,
곳기는 뉘 시기며 속은 어이 뷔연는다.
뎌러코 사시예 프르니 그를 됴햐 하노라
-윤선도 오우가 중
결론-동양화에서 한자의 의미
그림-보는것vs 읽는 것
동양화는 전통적으로 그림을 '읽는 것'으로 인식해왔다
이것은 작품의 미적인 요소 보다는 내재된 작가의 의도, 내용 등의 정신 세계를 보다 중요한 것으로 파악한 것이다.
서양화가 인체의 미, 비례, 균형, 원근 등 대상을 분석적으로 보는 것 과는 다르다.
한자는 이러한 동양화의 '읽는' 습관으로부터 보다 그 '읽는' 것을 직접적으로 가능하게 하는 중요한 요소인 것이다
한자는 문자이지만 그 자체로도 예술적 가치를 지닌다
한자는 문자인 동시에 하나의 예술
서양에서는 문자를 하나의 도구로 인식했기 때문에 그림에 문자를 사용하려는 시도는 거의 없었다.
반면 한자는 그 자체가 하나의 예술적인 요소를 담고 있다고 인식했기 때문에 그림에 한자를 포함하는 것은 동양화에 있어서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 된 것이다.

키워드

한자,   그림,   문자도,   동양화
  • 가격2,000
  • 페이지수20페이지
  • 등록일2005.11.10
  • 저작시기2005.11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319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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