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론]사이고 다카모리(西鄕隆盛)---신 일본의 창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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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1868년 일본의 유신

2. 탄생, 교육, 계시

3. 유신혁명에서의 역할

4. 조선문제

5. 역모자 사이고

6. 생활과 인생관

본문내용

래 위에 그림으로 나타내 보이며 이야기했다고 합니다. 그때 사이고가 말한 예언이, 너무나도 사실적으로 맞았던 것에 놀라며, 이야기를 들은 사자는 후에, 회상하기를 사이고는 인간이 아니라 신이라고 친구들에게 말했을 정도입니다. 우리들은, 유신혁명이 한창일 때, 사이고의 침착한 모습을 봐 왔는데, 이것은 명백한 비전을 갖고 있던 것의 당연한 결과입니다. 유신혁명의 개시당초, 천황의 지위가 약 10세기 동안 불안정했기 때문에, 어떠한 지휘가 될 것인지, 일부에서는 적지 않은 불안이 있었습니다. 유명한 궁중가수인 후쿠바 비세이(福羽美靜)는 다음과 같이 사이고에게 물었습니다. 「유신혁명은 바람직합니다. 그러나 신정부가 수립되었을 때, 신성하신 천황의 지위는 어떻게 됩니까.」 그것에 대한 사이고의 대답은, 다음과 같이 명확했습니다. 「신 정부에 있어서, 천황에게는 당연히 그래야 할 지위로 모신다. 그것은 친한 국정에 해당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천황의 천직을 완수하는 것이다.」 이 인물은, 조금도 말을 돌려서 하는 면이 없었습니다. 「정의」의 길이 영원한 것은 아니지만, 간결하고, 정직해서, 태양의 빛처럼 아주 밝고 맑았습니다. 사이고는 한 권의 저서도 남기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다수의 시와, 약간의 문장을 남겼습니다. 사이고가 기도할 때마다 읊은 시문을 통해서, 그 속마음을 엿볼 수가 있고, 그것이 모든 행동과 일치하고 있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사이고의 시문에는, 모르면서 아는체 하는 면은 전혀 없었습니다. 사이고와 견주는 많은 일본의 학자와 달리, 그 사용하는 언어와 비유는, 가능한 한 간결한 것입니다. 예를 들면, 다음의 시와 같이 간결한 시는 그밖에 없습니다.
나에게 천 개의 머리카락이 있다.
먹보다도 검다.
나에게 한 조각의 마음이 있다.
눈보다도 하얗다.
머리카락은 자를 수가 있어도
마음은 자를 수가 없다.
혹은, 다음과 같이 사이고 다운 시도 있습니다.
길은 하나뿐「옳을까 그를까」
마음은 항상 강철
빈곤은 위인을 만든다.
업적은 난중에 생긴다.
눈을 맞은 후에 매화나무는 하얗게 바뀌고
서리를 맞은 후에 단풍나무는 다홍색
만약 하늘의 뜻을 안다면
누가 안일을 바랄까
다음의 산에서 읊은 단편은, 사이고 그 자체입니다.
땅은 높고, 산은 깊다.
밤은 조용히
사람소리는 들리지 않고
단지 하늘을 바라볼 뿐
「生財」라고 제목 붙인 사이고의 문장의 일부를 인용해 둡니다.
『左傳』에 이렇게 쓰여져 있다. 덕은 결과로써 재(財)를 얻는 근본이다. 덕이 많으면, 재물은 그것을 따라 생겨난다. 덕이 적으면 동일하게 재물도 줄어든다. 재물은 국토를 윤택하게 하고, 국민에게 평온함을 주는 것에 의해 생기는 것이기 때문이다. 소인(小人)은 자신을 이롭게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군자는 백성을 이롭게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전자는 이기심를 꾀하고 망한다. 후자는 공공의 정신에 서서 번영한다. 사는 방법에 따라, 성쇠, 빈부, 흥망, 생사가 있다. 명심해야만 될 것이 아닌가!
세상 사람들은 말한다. 『빼앗으면 부유하고, 주면 잃는다』라고. 어째서 잘못됐는가! 농업에 비유해 보자. 인색한 농부는 씨앗을 아깝게 뿌리고, 앉아서 가을의 수확을 기다린다. 얻게되는 것은 굶주림뿐이다. 좋은 농부는 좋은 씨앗을 뿌리고, 전력을 다해서 키운다. 곡물은 백 배의 열매를 가져다주고, 농부의 수확은 남아돈다. 단지 모으기를 도모하는 것은, 수확하는 일만 알뿐, 심고 키운 것을 알지 못한다. 현인(賢者)은 심고 키우는 일에 정신을 쏟기 때문에, 수확은 구하지 않아도 찾아온다.
* 덕에 힘쓰는 사람에게는, 재물은 구하지 않아도 생겨난다. 따라서, 세상 사람들이 손해라고 부르는 것은 손해가 아니고, 덕이라 부르는 것은 덕이 아니다. 옛날 성인은, 백성을 구제하고, 주는 것을 덕이라고 보고, 백성으로부터 빼앗는 것을 손해라고 보았다. 지금은, 전혀 반대이다. *
아! 성인의 길에 반(反)하여, 백성에게 재와 풍요로움을 구하는 일을「현(賢)」이라 말할 수 있을까
손득(損得)의 법에 반(反)하여 국토의 번영을 도모하는 일을「불현(不賢)」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현인은 베풀기 위해서 절약한다. 자신의 곤궁에 신경쓰지 않고, 다른 사람의 곤궁에 신경쓴다. 그렇게 해서 재물은, 샘에서 물이 솟아나오 듯이, 자신의 곁으로 흘러 들어온다. 은혜가 내려와, 사람들은 그 은혜를 입는다. 이것은 모두, 현인이, 덕과 재(載)의 올바른 관계를 알고, 결과가 아닌 원인을 구하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근대적인 공리주의자라면,「낡은 경제학이다」라고 말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것은 솔로몬의 경제학이고, 솔로몬보다 위대한「존재」의 경제학이었습니다. 우주가 지금까지 19세기에 걸쳐서 존재해 왔듯이, 결코 낡지 않은 것입니다. 「베풀고 나눠주어, 오히려 잘사는 사람이 있고, 당연한 것을 아까워해서, 오히려 가난에 이르는 사람이 있다.」 「먼저 신의 나라와 신의 뜻을 구하라. 그러면 모든 만물은 너희들에게 구해져올 것이다. 」 사이고의 문장은, 이 신의 말에 적합한 해석이 아니겠습니까. 만약 우리나라의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인물을 두 명 들라고 한다면, 저는 주저없이 도요토미(太閤)와 사이고의 이름을 들겠습니다. 두 사람 모두 대륙 방면에 야망을 갖고, 세계를 활동무대로 보고 있었습니다. 둘 다 같은 나라 사람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위대했지만, 두 사람의 위대함은 완전히 상반되어 있었습니다. 제 생각으로는 도요토미(太閤)의 위대함은 나폴레옹과 닮았습니다. 도요토미에게는, 몸집은 작았지만 유럽의 권력자였던 나폴레옹처럼 허풍떠는 측면이 어느 정도 있었던 것입니다. 도요토미의 위대함은, 천재적인, 타고난 정신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위대함을 바라지 않아도 위대했습니다. 그러나, 사이고는, 그렇지 않습니다. 사이고의 위대함은 크롬웰과 닮았고, 단지 청교도 정신이 없기 때문에 결백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없는데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됩니다. 사이고에게는, 순수한 의지력과 관계가 깊고, 도덕적인 위대함이 있습니다. 그것은 최고의 위대함입니다. 사이고는, 자국을 건전한 도덕적 기반 위에 구축하려고 했고, 그 시도는 일부 성공을 보였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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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5.11.11
  • 저작시기20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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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3200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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