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동북아공정에 대한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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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중국의 동북아공정에 대한 고찰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I. 서론
1.중국 외교부 홈페이지
2.동북공정이란
3.동북공정의 추진이 한국에 알려진 것은 언제부터 인가.

II.본론
1.중국의 고구려 인식 변화
1)근현대 중국의 고구려・ 발해 인식의 변화
2)중국의 최근 태도
2.중국 역사왜곡의 목적과 의도
1) 지역적・영토적 통합 목적이다
2) 통일한국의 가능성으로 인한 위기의식 때문이다
3) 남북한이 통일되면 간도 등 만주지역 내 우리민족의 옛 터전이 분쟁지역화될 가능성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4) 고구려사 왜곡이 중국의 세계전략에 닿아 있다는 분석이다
3.고구려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가
1) 우리는 고구려사 탈취에 왜 강하게 반응하고 반응해야 하는 것인가
2) 고구려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가
4.동북공정에 대한 중국 측의 주장
5. 중국 측 주장에 대한 우리의 입장과 반론

III. 결론
1. 동북공정의 목적
2. 동북공정 추진과정
3. 고구려사 왜곡에 대한 한국정부의 대응 (과거→현재)
4. 앞으로의 과제

본문내용

폐호가 된 평양에 황해도 배천 · 연안 · 황주 · 봉산 등지의 주민을 이주시켜 평양을 재건하고 ‘서경’이라 이름하여 양경체제를 만들었다. 왕건은 자손에게 남긴 ‘훈요십조’의 제5조에서 “서경은 아국(고려)의 지맥의 근본이다”라고 했는데, 당시의 풍수설을 빌려 표현했지만 본뜻은 “고려의 근본은 고구려(평양)”임을 자손에게 명백히 밝힌 것이었다. (신용하 한양대 석좌교수의 2003년 12월 9일자 조선일보 기고문)
- 고려 인종 때 사신으로 왔던 서긍이 귀국 후에 작성한 보고서 <고려도경>에 “왕씨의 선조가 고려(고구려)의 대족(大族)이었다”는 기록이 있고, <고려사>의 ‘고려세계’에도 왕건의 조상이 백두산을 유력했다고 기록해 왕건의 조상이 고구려나 발해에서 왔음을 보여주고 있다.
고려는 건국 직후부터 북진정책을 추진했고, 고구려의 수도였던 평양을 서경으로 바꿔 고구려의 계승국임을 명확히 했다. 고려의 수도인 송악 역시 본래 고구려 땅인 부소갑이었다. 한반도 중부 일원에는 고구려에 속했던 주민들이 거주했고, 이들은 여전히 ‘고려인’으로 불리웠다. 고려를 건국한 주체세력은 왕건을 비롯한 개성 · 평주 · 정우 등 한반도 중부 일원 출신들로 고구려 지향적인 토착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고려 성종 12년 요의 대군이 침입하자 서희는 요장 소손녕과 회담하면서 “고려가 고구려의 옛 땅을 차지하고 있으며, 그 때문에 나라 이름도 고려라고 하며 평양을 도읍지로 삼았으며, 고구려 땅의 경계로 따진다면 요의 동경도 그 경계 안에 있다”고 반박했다. 요가 고구려 땅을 차지했음을 강조했을 뿐 고구려를 계승한 국가라고 주장하지 않은 것과는 대비되는 부분이다. 김부식의 <삼국사기>와 이규보의 <동명왕편>, 이승휴의 <제왕운기>에서도 고려가 고구려를 계승했음을 명백히 했다. 이러한 서술과 역사인식은 고구려가 ‘중국과는 구별되는 천하’에서 건국한 나라이며 그 전통이 고려로 계승됐음을 드러낸 것이다. 이러한 인식은 고려가 동명왕에 대한 제사를 받든 데서도 볼 수 있다.
고려가 발해 유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것도 발해가 고려와 마찬가지로 고구려를 계승한 국가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당시 중국인이 쓴 <송사>에서도 “고려는 본래 고구려라 한다”며 ‘고려열전’을 시작했고, 이는 무지의 소치라기보다 고려가 고구려를 승계한 국가라고 생각한 당시 사람들의 역사의식이었다. 이러한 인식은 훗날 <명사>에까지도 유지됐다. (안병우 한신대 교수 <고구려와 고려의 역사적 계승성>)
III. 결론
1. 동북공정의 목적
첫째, 통일한국의 만주지역에 대한 영향력확대를 미리 차단하려는 의도
둘째, 소수민족 억제책
셋째, 동북아시아의 전략적 중심지인 동북지역의 영토 확보책
2. 동북공정 추진과정
2002년 2월동북변경 역사와 현황 연속 연구 공정조직하여 출범
동북공정의 추진부서
중국사회과학원, 동북3성 당위원회 선전부 등 지도협조기구 성립
18명 구성의 전문가위원회를 만들어 학술점검
중국사회과학원, 동북삼성 사회과학 연구부문, 대학연구기구 및 유관부문의 동지가 공동 으로 참가하는 연구팀을 조직하여 분업적으로 협동하고 함께 연구에 정진
동북공정의 추진내용
연구성과 종합 → 역사상 의문점, 현재의 논쟁점, 문제점 해결에 힘쓴다 → 체계적이고 권위있는 연구성과 창출
동북공정 프로젝트 진행 결과
학술계의 역사와 현황연구에 대한 폭넓은 관심 이끌어 냄
3. 고구려사 왜곡에 대한 한국정부의 대응 (과거→현재)
첫째, 2004. 6월에 개최될 세계 문화유산 위원회에 중국 지안의 유적지 문화유산 등재를 막고 북한 고구려 고분군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될 수 있도록 북한과 적극 협력 할 것 → 그러나 2004. 7 북한과 중국이 신청한 고구려 유적 동시 등재 확정이 되었고 중국은 북한보다 폭넓은 유적이 등재되었음.
둘째, 외교통상부는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에 대해 엄중히 항의하고 시정을 즉각 요구 할 것 → 외교부는 2004. 7 중국정부의 공식적인 입장이 무엇인지 확인을 요구하는 한편 대 응책 마련에 나섰다.
셋째, 중국의 주장에 대한 대응 논리를 개발하고 그들이 왜곡한 부분을 찾아내 사실을 규명 하고 체계적으로 연구할 연구센터 설립의 적극적인 추진을 당부함 → 2004. 3 고구려 사 연구센터 설립.
넷째, 수십~수백편의 고구려사 관련논문을 내는 중국의 학술적 인해전술과 물량공세에 대 해 IT강국의 이점을 활용하자 → 현재 중국의 역사왜곡관련 홈페이지를 개설하였음.
(http://goguryeo.history.go.kr/index.php)
이밖에 고구려사 왜곡 저기 100만인 서명운동이 진행되었다.
4. 앞으로의 과제
1)고구려의 왕경(王京)인 역사도시(평양)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는 일을 추진해야한다.
2) 국민적 관심이 정부의 지원을 이끌어 낼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3)우리역사를 바로 알아야 한다. 우리의 분노가 지식이 뒷받침 되지 않은 가벼운 분노가 되 어서는 안 된다. 만약 충분한 지식이 뒷받침 되지 않는다면 우리나라가 무조건적으로 고구 려와 발해사를 한국사에만 가두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반론에 부딪히게 된다. 올해 10월7 일부터 9일까지 개최된 ‘아차산 고구려 축제’ 와 같은 국민적 화합의 장을 통해 과거의 역 사를 과거 속에만 묻어두지 않고 국민들의 흥미를 지속시켜 고구려 역사에 대한 올바른 지 식교육과 함께 문화 체험 등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해야겠다.
4)중국과의 관계와 관련해 한미관계를 우호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노력해야한다.
5)외교 전략수립 등 정부 정책결정 기구와 학문의 연구가 함께 어우를 수 있는 제도적 차원 의 대책마련이 시급하다.
<참고자료>
1. <역사전쟁>, 윤명철, 안그라픽스
2. <중국 광명일보의 고구려 역사 연구의 몇가지 문제에 대한 시론>, 신동아 2003년 9월호
3. 국사편찬위원회 <동북공정> 관련 자료
4. 고구려 연구재단 <한국 근대사와 고구려˙발해 인식 심포지엄>
5. <중국의 동북공정 논리와 그 한계>, 방향숙, 국사편찬위원회
6. <고구려는 중국사인가>, 신현식, 백산자료원
7. 중국외교부싸이트, 한국외교부싸이트, 매일경제,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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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5.11.17
  • 저작시기20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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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3210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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