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불교의 역사와 흐름 -불교의 전래부터 조계종불교정화운동까지-
본 자료는 6페이지 의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여 주세요.
닫기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해당 자료는 6페이지 까지만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6페이지 이후부터 다운로드 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소개글

한국 불교의 역사와 흐름 -불교의 전래부터 조계종불교정화운동까지-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불교의 전래
1) 고구려의 불교 전래
2) 백제의 불교 전래
3) 신라의 불교 전래

2. 통일 신라 이후 불교의 역사적 흐름
1) 통일 신라 시대의 불교
2) 고려 시대의 불교

3. 조선 시대의 불교
1) 조선 초기의 억불정책
2) 조선 중기의 불교이념
3) 조선 후기의 불교

4. 일제 시대의 한국불교
1) 개화기의 한국불교
2) 일본인에 의한 입성해금
3) 조선사찰 관리청원
4) 조선총독부의 ‘사찰령’ 반포
5) 일본시찰단의 친일행각
6) 조선불교 조계종 출범

5. 격동기의 한국불교
1) 조계종·태고종의 분열
2) 불교종단의 난립
3) 조계종 내부의 갈등
4) 재가신도 참여의 종단개혁운동

나가는 말

본문내용

전을 거듭했던 우여곡절 속에서 결국 경찰이 철수함으로써 범종추의 개혁세력이 총무원을 접수하는데 성공하였다.
범종추의 승리는 조계종 역사에서 처음으로 종단개혁에 사부대중이 참여하여 거둔 성과였다는 점에 의의가 있다. 그것은 지금까지 정화운동을 주도해왔던 선사 중심의 근본주의적 불교로의 복귀운동과는 다른 관점이며 오히려 재가신도 단체의 다양한 참여가 이루어짐으로써 한국정통불교의 정체성 확립 위에 불교대중화의 방향이 가미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서의현 3선 반대운동을 통해 고질적인 정권 예속화로부터 종단의 자주성을 확보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렇게 성공적이었던 개혁 종헌도 명시적으로 종단운영에 있어서 사부대중의 참여를 규정하지 않음으로써 지금까지 있어왔던 분규 과정의 반복의 여지를 남겨 놓았다는 문제점을 안고 있었다. 그리고 1998년 11월, 범종추가 성공적으로 출범시킨 ‘조계종 개혁회의’마저 결국 고질적인 종정과 총무원장 사이의 갈등을 되풀이한다.
그러나 98년도에 들어서 과거와 상황이 많이 달라진 것은 더 이상 재가신도들이 조계종의 분열사태를 관망하고 있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조계종의 물리적 충돌 사태가 발생하자, 98년 11월 17일 전국불교운동연합을 포함한 9개 단체가 연대성명을 발표하고 조속한 사태해결을 촉구했다. 20일에는 여기에 대불련총동문회등 20개 재가단체가 ‘범재가 비상대책회의’를 구성하고 정화개혁회의의 해산과 사찰운영의 투명화를 강력히 촉구하고 종단과 사찰운영에 신도들의 참여를 제도화할 것을 주장한다. 26일에는 학계법조계문화예술계 등 지식인 불자들을 중심으로 산중다원에서 ‘불교바로세우기를 염원하는 지성인 461인 선언’을 발표하고 스님들이 무소유의 출가정신으로 돌아가 종헌종법에 따라 사태를 조기 수습할 것을 촉구하기에 이른다.
이러한 재가신도들의 종단운영참여에 대한 요구는 불교 고유의 전통에도 문제될 것은 없다. 본래 엄격한 계율과 청정한 생활을 통해 진리 탐구에만 전념하는 수행공동체인 승가를 돕기 위해, 우바새와 우바이라는 재가신도가 승가를 돕고 외조하는 것은 불교의 전통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재가신도들이 교단운영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개혁종단의 종헌에는 이러한 법적 제도 장치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재가신도연대의 종단운영 참여운동의 일환으로 1998년 12월 1일 ‘불교바로세우기범불교재가연대’가 결성되었다. 어쩌면 이것이 지금까지의 수행비구승 중심의 ‘청정성 시비’를 통한 불교정화운동이 새로운 국면으로 쇄신할 수 있는 실낱같은 희망일지도 모른다.
나가는 말
이번 세미나를 준비하면서 알게 된 불교계의 어두운 그림자는 본인에게 있어서 충격적인 것이 아닐 수 없었다. 그저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종교로서만 인식하고 있었던 한국불교가 이토록 극심한 혼란과 대립을 겪으며 지속되어 왔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최초 정치적인 목적으로 받아들여졌던 불교는 고려시대에 왕권의 보호를 받으며 귀족과 야합함으로써 막대한 이익을 누렸었다. 그러나 조선시대에 이르러 불교는 기존에 누렸던 모든 권리를 빼앗기고 거의 와해되어버린 채 명맥만을 유지하게 되었다. 그리고 일제 시대 때는 일본의 조선침략의 한 방편으로써 이용당하며 친일세력의 본거지 노릇을 하기도 하였었다. 해방 후에도 불교는 자주적인 정화능력을 상실한 채 정부의 개입을 받아야 했고 최근까지 대내외적인 분열을 겪고 있었다.
조선시대까지 핍박받으면서 지냈던 불교의 과거를 빼놓고도 한국불교에 있어서 크나큰 아픔은 조계종 내부의 갈등이다. 일제 35년간의 왜색친일불교가 청산되지 않은 채, 50년대에 시작된 정화운동은 너무 급진적이면서 정치권에 의존하는 병폐를 낳았고 정화과정에서 종권과 사찰확보에 급급하여 저질 폭력승들을 양산하는 커다란 문제점을 낳았기 때문이다.
조계종 개혁회의에서 실시했던 대중적인 요법들, 즉 문제승들의 징계와 서울과 지방에서의 공청회 등으로 앞서 언급한 문제점들이 해결될 수는 없다. 그 이유 중의 대표적인 것은 현재 조계종의 중진이라 할 수 있는 50-60대 승려들 중 상당수가 정화시기에 들어온 폭력배 출신이기 때문이다. 임혜봉, 한 권으로 보는 불교사 100장면, 420.
불교에서 특별히 출가하는 사람의 성분을 문제시하지는 않지만, 그들의 신심을 생각하기 이전에 그들의 인품이 먼저 검증될 필요가 있었다. 아무리 승려의 옷을 입었다 하더라도 인간적 한계가 있기 마련이라는 이야기다. 게다가 더욱 문제를 어렵게 하는 것은 이들이 자신의 지위를 굳히기 위하여 폭력 조직의 후배들을 계속 머리를 깎아서 끌어들였고, 그렇게 하여 불교계 폭력승 인맥이 만들어져 있다는 점이다. 결국 현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50대 이상의 조계종 승려들이 모두 입적해야 하는 상태인 것이다.
부처를 따라 불법을 세우겠다는 마음가짐으로 따라야할 불교가 이런 지경에 이른 이유는 아마 한두 가지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지금의 한국불교계가 보여주는 악표양, 즉 인맥지맥학맥에 치우치는 스님들의 문벌의식과 폭력승 계보, 정치권과의 결탁, 출처를 알 수 없는 거금과 같은 요소들은 결코 우리가 따라서는 안 될 모습이라는 점이다.
한국불교가 이런 모습을 지니고 싶어서 그렇게 된 것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강 건너 불구경 하듯이 불교의 극심한 혼란을 지켜보는 우리들도 교회의 정신을 잊어버린 채 세속적 이기심에 빠져버린다면 지금의 한국불교가 안고 있는 어두운 면을 우리도 맞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이번 세미나를 통하여 좀더 우리 자신에 대하여 주의 깊게 돌아보는 기회가 되었다면 그것으로 큰 의미를 지니지 않을까 생각한다.
<참고자료>
임혜봉, 한 권으로 보는 불교사 100장면 - 석가탄생에서 조계종 개혁회의까지, 가람기획, 2001.
송월주 외 4명, 교단정화운동과 조계종의 오늘, 선우도량한국불교근현대사연구회불교신문사, 2001.
동국대학교 석림동문회 편, 한국불교현대사, 시공사, 1997.
김순석, 일제시대 조선총독부의 불교정책과 불교계의 대응, 경인문화사, 2003.

키워드

  • 가격2,000
  • 페이지수18페이지
  • 등록일2005.11.21
  • 저작시기2005.11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322086
본 자료는 최근 2주간 다운받은 회원이 없습니다.
청소해
다운로드 장바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