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들어가며
Ⅱ. 교회와 국가의 동거 : 앙시앙레짐
Ⅲ. 혁명의 교회개혁과 비기독교화 운동
1) 전반적인 개혁 : 종교개혁의 시작
2) 성직자민사기본법 : 성직자는 곧 국민
3) 격렬한 비기독교화 운동 : 혁명과 종교의 불가능한 동거
4) 이성이 지배하는 사회
Ⅳ. 종교혁명은 어떤 사회를 지향했는가?
Ⅴ. 나오며
Ⅱ. 교회와 국가의 동거 : 앙시앙레짐
Ⅲ. 혁명의 교회개혁과 비기독교화 운동
1) 전반적인 개혁 : 종교개혁의 시작
2) 성직자민사기본법 : 성직자는 곧 국민
3) 격렬한 비기독교화 운동 : 혁명과 종교의 불가능한 동거
4) 이성이 지배하는 사회
Ⅳ. 종교혁명은 어떤 사회를 지향했는가?
Ⅴ. 나오며
본문내용
자유와 평등의 이념을 구현하여 주권이 인민에게 있는 사회를 이룩하려 했던 것이다.
혁명이 이루고자 했던 또 다른 목표는 바로 ‘국민’의 탄생이었다. ‘국민’은 국가에 속하며 자유롭고 평등한 시민사회의 일원으로서 조국에 충성할 의무를 지닌 존재였다. 앞서 살펴본 교회의 사회구조적 세속화는 국가가 국민을 통제하기 위해서는 필수불가결한 조치들이었다. 기존에는 교회가 교육을 담당하고 호적대장을 관리하며 결혼과 장례를 주관하였지만, 이러한 역할들이 혁명기를 거치면서 모두 세속권력에게 이양(移讓)되었다. 이는 곧 사회영역에 대한 교회의 구속력약화로 이어졌으며, 이제 사회 전반에 강력한 영향력을 미치는 존재는 국가로 대치되었다. 이로써 국가는 교회의 위치를 대신하여 호적대장으로 국민을 통제하고, 표준화되고 효율적인 교육을 통해 근대국가에 적합한 ‘국민’을 양성해 낼 수 있게 된 것이었다.
결론적으로 ‘국가’는 ‘교회’위에 서서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이성에 근거한 근대사회를 지향했다. 이 과정에서 프랑스 국민은 통합과 일체감을 공유했으며 이를 내면화하여 정체성을 확립했다. 이와 같이 결국 종교혁명으로서의 프랑스 혁명 역시 근대국가성립으로 귀결된다고 해석할 수 있겠다.
Ⅴ. 나오며
지금까지 본고에서는 앙시앙레짐기의 기독교의 모습과 프랑스 혁명을 거치면서 혁명정부가 어떻게 교회를 개혁하려 하였는지, 비기독교화 운동의 양상, 그리고 종교혁명으로서의 프랑스 혁명이 어떠한 사회를 지향하고자 했는지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기독교를 고치고 째고 뒤집었던 종교혁명으로서의 프랑스 혁명은 근대 이전사회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던 종교를 제치고 세속권력이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는 사건이었다. 모든 것을 파악하고 예측할 수 있으며, 그것을 바탕으로 무한한 발전을 이룩할 수 있다고 믿었던 새로운 사유체계, 즉 ‘과학적ㆍ합리적 이성’은 근대국가의 성립을 초래했다. 이러한 ‘근대적 이성의 기획’에 대한 믿음에서 출발한 것이 바로 프랑스 혁명이었다. 한 사회의 변혁은 그에 따른 수많은 변화를 수반한다. 허나 역사상 프랑스 혁명처럼 기존의 틀을 송두리째 바꾸어버리는 혁명은 매우 드물다. 더욱이 ‘기독교’라는 거대하고 견고한 패러다임을 뒤집고 ‘이성’이라는 새로운 사유체계로 종교를 대체하는 엄청난 변혁은 프랑스 혁명이 유일하다고 할 수 있겠다.
역사를 보는 방법은 다양하다. 하나의 역사적 사건을 두고 관점을 달리 보면 그동안 보지 못했던 ‘역사의 단면’들이 튀어나온다. 세계사에 있어 엄청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역사적 사건이자 근대를 열었다고 평가받는 프랑스 혁명. 이러한 프랑스 혁명을 종교혁명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이를 통해 혁명이 꿈꾼 사회가 어떤 사회인지 곰곰이 생각해 보는 것도 필요한 일이 아닐까 생각한다.
참고문헌
▷ 백인호, 『창과 십자가』, 소나무, 2004.
▷ 김갑수, 「프랑스 혁명」, 배영수 편저, 『서양사강의』, 한울 아카데미, 1992.
▷ 로제 샤르띠에 著, 백인호 역, 『프랑스혁명의 문화적 기원』, 일월서각, 1998.
혁명이 이루고자 했던 또 다른 목표는 바로 ‘국민’의 탄생이었다. ‘국민’은 국가에 속하며 자유롭고 평등한 시민사회의 일원으로서 조국에 충성할 의무를 지닌 존재였다. 앞서 살펴본 교회의 사회구조적 세속화는 국가가 국민을 통제하기 위해서는 필수불가결한 조치들이었다. 기존에는 교회가 교육을 담당하고 호적대장을 관리하며 결혼과 장례를 주관하였지만, 이러한 역할들이 혁명기를 거치면서 모두 세속권력에게 이양(移讓)되었다. 이는 곧 사회영역에 대한 교회의 구속력약화로 이어졌으며, 이제 사회 전반에 강력한 영향력을 미치는 존재는 국가로 대치되었다. 이로써 국가는 교회의 위치를 대신하여 호적대장으로 국민을 통제하고, 표준화되고 효율적인 교육을 통해 근대국가에 적합한 ‘국민’을 양성해 낼 수 있게 된 것이었다.
결론적으로 ‘국가’는 ‘교회’위에 서서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이성에 근거한 근대사회를 지향했다. 이 과정에서 프랑스 국민은 통합과 일체감을 공유했으며 이를 내면화하여 정체성을 확립했다. 이와 같이 결국 종교혁명으로서의 프랑스 혁명 역시 근대국가성립으로 귀결된다고 해석할 수 있겠다.
Ⅴ. 나오며
지금까지 본고에서는 앙시앙레짐기의 기독교의 모습과 프랑스 혁명을 거치면서 혁명정부가 어떻게 교회를 개혁하려 하였는지, 비기독교화 운동의 양상, 그리고 종교혁명으로서의 프랑스 혁명이 어떠한 사회를 지향하고자 했는지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기독교를 고치고 째고 뒤집었던 종교혁명으로서의 프랑스 혁명은 근대 이전사회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던 종교를 제치고 세속권력이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는 사건이었다. 모든 것을 파악하고 예측할 수 있으며, 그것을 바탕으로 무한한 발전을 이룩할 수 있다고 믿었던 새로운 사유체계, 즉 ‘과학적ㆍ합리적 이성’은 근대국가의 성립을 초래했다. 이러한 ‘근대적 이성의 기획’에 대한 믿음에서 출발한 것이 바로 프랑스 혁명이었다. 한 사회의 변혁은 그에 따른 수많은 변화를 수반한다. 허나 역사상 프랑스 혁명처럼 기존의 틀을 송두리째 바꾸어버리는 혁명은 매우 드물다. 더욱이 ‘기독교’라는 거대하고 견고한 패러다임을 뒤집고 ‘이성’이라는 새로운 사유체계로 종교를 대체하는 엄청난 변혁은 프랑스 혁명이 유일하다고 할 수 있겠다.
역사를 보는 방법은 다양하다. 하나의 역사적 사건을 두고 관점을 달리 보면 그동안 보지 못했던 ‘역사의 단면’들이 튀어나온다. 세계사에 있어 엄청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역사적 사건이자 근대를 열었다고 평가받는 프랑스 혁명. 이러한 프랑스 혁명을 종교혁명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이를 통해 혁명이 꿈꾼 사회가 어떤 사회인지 곰곰이 생각해 보는 것도 필요한 일이 아닐까 생각한다.
참고문헌
▷ 백인호, 『창과 십자가』, 소나무, 2004.
▷ 김갑수, 「프랑스 혁명」, 배영수 편저, 『서양사강의』, 한울 아카데미, 1992.
▷ 로제 샤르띠에 著, 백인호 역, 『프랑스혁명의 문화적 기원』, 일월서각,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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