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크로드 속의 페이퍼 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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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실크로드 속의 페이퍼 로드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들어가는 글 ---------------------- 2
Ⅱ-1. 종이 이전의 종이 ---------------- 4
고대 중국과 서방 세계
-2. 종이의 발견 -------------------- 6
ⅰ) 채륜 ⅱ) 발명한 것인가, 개량한 것인가?
-3. 실크로드를 따라 ----------------- 8
ⅰ) 중앙아시아로 ⅱ) 다마스쿠스 종이 ⅲ) 유럽으로
Ⅲ. 마치는 글 ------------------------ 11
Ⅳ. 참고문헌 ------------------------- 12
Ⅴ. 부록 ---------------------------- 13
- 종이의 전파 경로
- 종이 이전의 종이 역사
- 제지 기술의 고대와 현대
- 제지기술의 서역 전파 계기가 된 탈라스 전투

본문내용

수입한 것은 주로 이탈리아 상인들이었다. 일본에서는 종이 1,000장을 ‘연(連)’ 이라고 하는데(우리나라에서는 500장이 한 연), 이는 영어 ‘ream'에서 나온 말이다. 이탈리아어 ’risma' 혹은 스페인어 ‘resma’ 등도 원래는 하나의 꾸러미를 뜻하는 아라비아어 ‘rezma'에서 유래한 말이다. 이 말은 종이를 거래하는 데 사용되는 용어임이 틀림없다. 이탈리아에서 대량으로 종이를 수입한 것은 유럽 각지로 보내기 위한 것도 있었겠지만 기본적으로 자신들의 수요가 많았기 때문일 것이다. 일찍부터 르네상스의 고동소리가 들리고 있었던 것이다. 또한 한때 비잔틴 령이었던 시칠리아는 827년 이후 이슬람군이 침입하여 879년에는 수도인 시라쿠사가 함락되었다. 그로부터 노르만인이 침입할 때까지 200년 동안 시칠리아는 이슬람의 지배하에 있었다. 이탈리아의 제지기법은 시칠리아에서 전해진 것으로 되어 있다.
그에 앞서 제지 기법은 이슬람 세력과 함께 지브롤터 해협을 넘어 이베리아 반도에 먼저 전파되어 있었다. 산업적인 면에서 당시 이탈리아 종이의 경쟁자는 다마스쿠스와 코르도바였다고 알려져 있다. 이베리아 반도에서는 직접 종이를 만듦으로써 수입품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대량의 종이를 공급할 수 있는 체제를 갖추게 되었고, 이는 자연스럽게 그 지역 학술 문화의 요람이 되었다. 유럽의 어느 지역보다 더 빨리 문화의 선진화가 이루어진 이베리아 반도에서 콜럼버스나 바스코 다 가마 같은 세계사에 새로운 지평을 연 인물들이 출현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항해 기술의 진보는 천문학이나 조선 등 여러 학문의 수준이 향상된 결과이다. 스페인 출신의 프란시스코 사비에르가 포르투갈 국왕의 요청으로 동방으로 향하여 일본에 닿을 수 있었던 것도 이런 학술문화와 기술의 진보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동방에서 만들어진 종이는 거친 사막과 초원을 지나 서쪽으로 전해졌다. 거기에는 사상과 학문, 예술이 실려 있었다. 그리고 오래지 않아 이번에는 서방 문화의 정화(精華)가 바다를 건너 동방으로 전해졌다.
종이야말로 동서 문화 교류의 상징이라 할 수 있겠다.
Ⅲ. 마치는 글
로버트 템플은 ‘서양이 중국에 진 빚’이라는 표현을 썼다. 이것은 조지프 니덤의 대저(大著) <<중국의 과학과 문명>>을 참고로 쓴 <<그림으로 보는 중국의 과학과 문명>>이라는 책의 첫 페이지를 넘기면 나오는 말이다. 내용을 요약해 보자면 ‘현대 세계’를 지탱하고 있는 기초적인 발명과 발견의 절반 이상이 중국에서 기원했을 것이고, 유럽에서 발명 또는 발견되었다고 믿었던 대부분의 것들(활자, 인체 혈액 순환의 원리, 운동의 제1법칙의 발견 등)이 사실과는 다르게 중국에서 기원한 것인데, 현재 우리가 자각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중국인들이 이 점을 잊었다는 것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중국’이라는 나라를 매우 좋아한다. 중국학 이라는 전공을 하면서 지금까지 경험해온 중국은 내게 큰 흥미를 주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어떤 사물이나 현상을 볼 때, 그 시초가 무엇이었나를 찾는 것을 매우 즐겨하는 것 같다. 나 역시 동일한 의문을 가지고 바라보는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것이 중국에서 찾게 되는 것 또한 사실이다. 물론 우리가 지리적인 인접성과 유교문화권에 속해 있다는 사실이 더욱 그러하게 만든 것이겠지만 세계적으로 보아도 크게 빗나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끊임없이 중국을 탐구하게 되는 큰 이유가 되는 것이다.
리포트의 주제로 ‘종이’를 정한 것에 대해서 조사를 마치며 아주 큰 뿌듯함 같은 것을 느꼈다. 이는 절대로 글을 잘 썼다는 것은 아니다. 다시금 위를 올려다보면 정말 엉망이라는 것을 알 수 있고 체계적이지 못하다는 것에 많이 반성하게 된다. 내가 말하는 뿌듯함이란 무언가를 알게 되었다는 기쁨인 것이다. 몇 권의 책을 읽고 그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넘길 때의 느낌은 정말 사뭇 달랐다. 리포트를 마치면서 가장 아쉬운 것은 너무나도 귀중하고 좋은 자료를 가지고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시간에 쫓겨 가며 한 것이다 보니 정말 체계적으로 정리를 잘 해서 알기 쉽게 전달하려 했지만 역시 아직 능력이 많이 모자라다는 것을 느꼈다. 조사를 하면서 느낀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제지 기술이 발달 할수록 그것의 내구성은 떨어진다는 것이다. 물론 현재는 물에 젖지 않는 코팅종이와 불에 타지 않는 불연성 종이가 있지만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거슬러 올라갈수록 더욱 튼튼해진다는 것이다. 즉, 종이는 물에 매우 약하고 불에 약하다. 그러나 종이 이전에 쓰였던 죽간은 물에 젖어도 그 원형이 보존된다는 이점이 있으나 역시 불에 약하다. 그리고 죽간 이전에 쓰였던 갑골문은 물과 불 어느 것에도 파손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에 반한 장점들을 무시한 논리이긴 하지만 내구성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발전은 오히려 퇴보를 가져온 것이다. 그러나 퇴보라고 하기엔 너무 억지이고 분명 그것은 발전이다.
처음에 시작하는 글에서도 언급했듯이 원래 중국의 4대 발명을 주제로 하려 했던 이유 중 화약이나 나침반 등의 기술의 전파가 오히려 중국에게 치욕의 역사를 안겨주었다는 것은 이미 모두 제지 기술 전파의 범주에 속해 있는 듯 하다. 종이로 인해서 책이 발달하게 되고 그로인해서 기술의 전파 속도가 빨라지고 범위가 방대해 졌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중국의 ‘치욕의 100년’은 종이 전파가 시발점이 되었다고 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작은 종이 한 장에도 수많은 문명이 뒤엉켜 어우러져 있는 듯한 느낌이다. 동쪽에서 ‘발명’되고 서쪽에서 ‘발전’되어 다시 동쪽으로 돌아와 새로이 문화를 나누게 하니 분명 종이는 동서 문명 교류의 가장 훌륭한 매개체이다.
Ⅳ. 참고 문헌
* 서적
로버트 템플, <<그림으로 보는 중국의 과학과 문명>>, 까치글방, 1993.
야부우치 기요시, <<중국의 과학문명>>, 민음사, 1997.
조셉 니덤, <<중국의 과학과 문명>>, 까치글방, 1998.
진순신, <<페이퍼 로드>>, 예담, 2002.
* 인터넷 홈페이지
한솔 종이 박물관
http://www.papermuseum.co.kr/
  • 가격2,000
  • 페이지수11페이지
  • 등록일2005.11.30
  • 저작시기2005.11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323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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