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안 문제(기타 강대국화의 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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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양안 문제(기타 강대국화의 노력)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대만의 역사
2. 중국 분단의 배경
3. 중국과 대만의 문제 접근 방식
4. 미국의 문제 접근방식 고찰
5. 대만 문제의 국제 정치적 의의
6. 기타 강대국화 노력

본문내용

대외적인 요인과 복합적으로 연계되어 있으며 그 연계와 범위 정도 또한 계속적으로 확대되고 있으며 중요한 사안으로 거듭나고 있다.
‘대만의 국제적 지휘향상의 바램’
대만은 양안문제를 국제사회에서의 생존공간을 확보하기위한 외교적 투쟁으로 간주한다. 특히 이등휘 체제의 출범이후 대만은 외교정책을 통해서 대만이 국제적 지위향상에 바램이 있는가를 보여준다. 자신들의 국제적 지위 향상에 최우선 순위를 두고 이를 위한 구체적인 방안으로 UN가입, WHO가입, 대-미관계 강화, 중남미-아프리카-동남아 제3세계 국가들과의 관계 강화를 추진하였다.
결국 대만정부의 외교공세는 이등휘의 방미로 최고조에 달했으며 중국의 군사적 위협에도 불구하고 대만문제를 국제여론에 부각시키고 미국과 내면적인 정치와 군사적인 동맹 체제를 구축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이러한 이등휘의 탄성외교, 무실외교는 대만의 국제적 지휘를 향상시키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지만 중국의 반발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대만의 정책적인 성과가 크면 클수록 중국과의 갈등은 그에 비례해 고조되었다.
중국의 군사적 위협에도 불구하고 이등휘 체제의 대외정책의 전환을 꽤하게 된 배경은 크게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능동적인 외교정책을 통한 국제적으로 고립타파를 요구하는 국내여론을 수렴해 대내적인 지지기반 강화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점.
두 번째 대만의 정치적 실체에 대한 국제사회의 인식 전환을 통해 국제적 지위를 높이는 동시에 이를 대만의 정치적 지위에 대한 중국의 인식전환을 촉구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
‘중국의 21세기 최대목표 대만통일’
1997년 홍콩의 반환으로 중국은 21세기 최대목표를 대만통일임을 숨기지 않고 있다. 대만의 국제적인 지위를 얻기 위해서 국제적으로 이슈화 시키려는 의도를 벌였다면 중국은 전통적으로 대만 문제를 중국의 주권에 예속되는 내정문제로 간주하면서 외부세력의 대만문제 개입을 단호하게 반대해왔다. 이것은 대외적인 갈등이 아닌 국내적인 일로 다루면서 대만을 중국의 한 부분으로 치부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미국의 전략에 대해 대만문제를 철저한 내정문제라고 규정함으로써 미국이 양안관계 속에서 추구하려는 중심적 역할을 사전에 봉쇄하려고 한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다. 국토의 완전한 통일을 목표로 삼고 있는 중국의 야심찬 계획은 대만정책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첫째, 일국양제(一國兩制) 두 개의 서로 다른 체제를 가진 나라가 하나로 합쳐지게 되고 쌍방 간 서로의 체제를 인정해주게 되면 통일된 하나의 나라에 두 개의 체제가 존재 한다는 뜻으로 중국의 사회주의인 반면 홍콩은 자본주의 체제하에 놓인 경우를 예로들 수 있다.
에 의한 통일
두 번째, 경제통합으로 정치통합을 달성
세 번째, 대만을 제압하기에 충분한 군사력을 확보하여 무력사용도 배제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5. 기타 강대국화 노력
일본
중국과 일본의 관계는 양안관계에 밀접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또 다른 중요변수이다. 미국만큼 크다고는 할 수 없지만 최근의 일본의 정치 군사적 영향력 확대 및 대만과의 관계개선 움직임 등을 고려했을 때 중-일관계가 양안관계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은 점점 커지고 있다. 중국은 일본의 경제역량을 최대한 자국의 경제발전에 활용해야한다는 인식과 일본은 동북아시아지역에서 정치, 군사적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중국의 협조가 필요하다는 점을 인식 하고 있기 때문에 일본과 중국의 관계는 상대방의 민감한 부분을 자극하기 보다는 실제상황에서 협조 가능한 부분에 일차적인 주안점을 두면서 양안관계를 재정립해 간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의 정책변화를 보았듯이 일본의 중국정책 역시 변화할 가능성을 다분하다. 특히 양안문제에 있어서 인식의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그 예로 1994년 히로시마 아시안게임, 1995년의 APEC 정상회담 등을 전후하여 이등휘의 訪日을 허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 되었다. 비록 이러한 주장이 아직까지 성사되지는 못했지만 앞으로 이문제가 보다 구체화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프랑스와 독일
프랑스와 독일은 대만에 대한 무기판매문제와 관련하여 중국과 적지 않은 갈등을 겪은 경험이 있고 앞으로도 미국의 대만정책 변화여부에 따라 대만과의 관계변화를 추진할 가능성이 충분한 나라이다.
1998년대 이후 프랑스와 독일은 중국과의 관계발전에 주력하고 대만과의 관계는 민간차원의 경제-문화교류에 국한시켰으나 90년대에 들어서면서 대만에 대한 무기판매와 고속전철, 원자력발전소 건설등 대규모 프로젝트 참여와 관련하여 대만과의 관계발전을 조심스레 추지하고 있다. 중국은 이러한 변화조짐에 대해 민감한 반응을 보였고 90년대 초 프랑스와 독일의 대만정책 변화조짐은 중국의 초강경 대응으로 일단락되는 듯 했으나 95년 이후 다시 고개를 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아직까지 중국과의 관계를 우선순위에 두고 있기 때문에 이를 손상시키면서까지 대만과의 관계발전을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러시아
러시아의 경우 대만과의 정치적 관계를 강화할 가능성보다는 중국과 러시아 관계가 강화되고 결과적으로 중-미, 미-대만관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차원이다. 즉 러시아와 대만이 무역대표부를 서로 설치하는 등 점차 경제교류 중심의 관계발전을 모색하고 있다. 비록 대만과의 관계가 발전되고 있지만 양안관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정도는 아니다.
중국과 러시아의 양국 지도자의 상호방문 횟수가 현저하게 증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군사, 외교, 경제 등 각 분야에서 상호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그 예로 1996년 4월 미-일 신안보체제 출범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확대로 양안문제에 미국의 노골적인 개입 등에 대한 중국과 러시아의 반미감정이 집약적으로 표출된 군사-경제 분야 협력 논의와 미국의 단일패권체제에 공동 대처한다는 취지의 ‘북경 공동선언’이다.
참고문헌
문흥호, 『13억 인의 미래』 당대, 1996
정재호 편,『중국 정치 연구론』 나남, 2000
이태환, 『중미관계의 변화』 세종연구소, 1999
문흥호, 『한국동북아논총』제 10호 1999
정용하, 『대만의선거와 양안관계, 한국민족문화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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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5.12.14
  • 저작시기20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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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3267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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