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 야스쿠니 신사 참배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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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전후 야스쿠니 신사 참배 문제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전후 야스쿠니 신사 참배 문제에 관한 연구

<목 차>

Ⅰ. 서론

Ⅱ. 야스쿠니의 이중성
1. 야스쿠니 참배에 대한 내외 의식의 차이
2. 수상의 야스쿠니신사 참배
3. 미키 총리
4. 후쿠다 총리
5. 스즈키 총리
6. 나카소네 총리
7. 고이즈미 총리

Ⅲ. 패전 책임과 역사 인식 문제
1. 천황제와 역사인식
2. 도쿄재판의 한계
3. 아시아에 대한 우월의식의 잔존
4. 피해자 의식의 만연

Ⅳ. 결론


<참고 문헌>

본문내용

로 배제시켰던 것이다. 도쿄재판에서 일본의 조선지배가 단죄의 대상에서 완전히 제외됨에 따라 전전 일본인의 조선 식민지 인식은 전후에도 그대로 온존 유지될 수밖에 없었다. 일본이 패전과 도쿄재판은 전전 일본인의 역사인식을 철저히 변경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외였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인의 아시아 지배에 대한 인식은 아무런 영향을 받지 못하였다.
둘째, 미국은 냉전의 심화로 인해 빨리 도쿄재판을 끝내고 일본을 반공의 방패막이로 삼기위해 일본의 재건을 도우려 했기 때문에 그 결과로 전쟁 책임을 모든 군부의 일부에게 떠 넘기는 형태로 서둘러 끝을 맺었다. 이에 따라서 일본 국민의 주체적인 가해의식은 저지될 수밖에 없었다.
셋째, 맥아더는 일본 통치의 편의상 천황의 존재가 필요했기에 천황이 기소되는 것은 저지했다. 이는 전쟁의 당사자인 미국인이 천황에게 전쟁책임이 없다고 선언했을 때, 보통의 일본인이 전쟁 책임을 느끼기 어렵다는 사실을 극명하게 말해주고 있다.
넷째, 도쿄 재판소에서 기소의 중심이 된 것은 구미 연합국에 대한 전쟁행위와 관련된 범죄였다. 도쿄 재판에서는 25명의 군인과 정치가가 A급 전범으로 사형 등의 처벌을 받았는데 이들 전범들의 주된 죄상은 對美 介戰이었다. 이점으로 미루어봐서도 잘 알 수 있듯이 아시아인에의 시점이 희박했던 것도 일본의 아시아에 대한 가해 책임을 추궁하는 것을 약화시켰다.
3.아시아에 대한 우월의식의 잔존
과거 식민지 시절의 아시아에 대한 우월의식이 잔존하고 있는 상태에서 아시아인에 대한 가해의식이 자리 잡는다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패전 후에도 일본에 있어서 아시아인에 대한 인식의 혁명적인 변화는 일어나지 않았다. 그의 근본적인 원인으로 위에서 언급한 천황제와 역사 인식 및 도쿄재판의 한계를 들 수 있다.
4. 피해자 의식의 만연
일본 국민이 전전의 행위에 대해 주체적인 가해 의식을 가지지 못하게 된 것은 그들이 스스로 침략의 당사자라는 의식이 희박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전후의 일본인들 사이에는 원폭 피해 등으로 피해자 의식이 만연해 있었다. 그들의 패전에 이르기까지 주권자가 아니라 천황의 신민으로 언제나 피지배자였으며, 그렇기 때문에 국가 정책에 대해 그들의 주체적인 책임 의식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또한 전전의 정치는 일부 군부 세력에 의하여 실시되었으며 일반 국민들은 그저 따를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아무런 책임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며 오히려 그들이야말로 피해자라는 인식을 할 수밖에 없게 된다. 이러한 것은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도쿄재판의 과정에서 더욱 강화되었다. 이러한 의식 속에 식민통치와 침략 전쟁에 고통 받고 죽임을 당한 수많은 아시아인들에 대한 가해자의 책임의식은 기대하기 힘들다. 그들에게는 오직 그들이 경험했던 전쟁 중의 비참한 기억만이 존재할 따름인 것이다.
그리고 일본 국민의 대부분이 일본의 외국에 대한 침략행위가 전적으로 비난받아서는 안 된다는 의식을 갖고 있는 것은 교육의 문제에도 중요한 의미를 둘 수 있다. 패전 후 일본에 역사교육은 존재하였지만 침략의 역사를 있는 그대로 정확하게 다루지 않은 것에 일본국민들의 정서가 가해자 의식의 부재로 남아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Ⅳ. 결론
야스쿠니 신사 공식 참배 문제는 갈수록 더 미묘하고 복잡해지고 있다. 일본 국내의 반대의견도 점차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고, 주변국들의 반응 또한 한 발자국도 물러서려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정치인들은 일본 국내의 찬성·지지 여론과 정치적인 문제에 얽혀 칼로 자르듯이 단순하게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그만둘 수도 없는 실정이다.
일본인들은 1945년 패전 이후 일본 정부와 GHQ 측이 야스쿠니 신사를 종교시설로 남길 것인지 아니면 전몰자 추도라는 기념비적인 시설로서 남길 것인지의 선택 문제를 놓고 절충 작업을 벌였을 때 일본은 두 개의 선택지 중 야스쿠니 신사를 종교적 시설의 하나인 신사로서 존속시키자는 길을 택했던 것을 상기해야 할 것이다.
여기에 또한 주변국들도 일본인의 영혼관 및 윤리관을 이해하지 못하고 무작정 갑작스럽게 야스쿠니 신사참배를 그만두기를 강요한다면 무리가 따르지 않을 수 없다.
일본과 주변국들은 상호간에 한 발자국씩 물러서서 서로를 이해하는 눈으로 바라보면서 앞으로 어떤 상황으로 대처해야 할 것인가를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일본은 자국의 침략으로 피해를 입었던 주변국들에게 진심에서 우러나는 마음으로 사죄하고 반성해야 할 것이라고 본다. 야스쿠니 신사가 태평양 전쟁 후 그들이 스스로 택했던 종교 시설임을 인정하는 한편, 전몰자 추대 시설을 따로 만들고 주변국들이 강력히 반발하고 있는 주된 사항인 A급 전범들의 분사 문제도 심사숙고 해 봐야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제 일본은 아시아에서 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경제 대국이 되어 있고, 앞으로는 정치적으로도 세계를 이끌어갈 리더가 되기를 원하고 있는 상황인 것이다. 경제만이 아니고 정치적인 면에서도 세계를 이끌어갈 리더가 되기를 원한다면 자국이 과거에 저질렀던 행동들을 돌이켜보고 진정으로 반성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만 할 것이다. 그것이 바로 글로벌 시대에 그들이 취해야 할 태도가 아닐까 한다.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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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영선 편, 『한국과 일본』, 나남출판,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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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양욱 역 이오키베 마코토외, 『일본외교 어제와 오늘』, 다락원, 2003
김 후련, 「일본인에게 있어서 야스쿠니신사가 갖는 의미」, 한국외국어대학교 일본학연구 소, 2003
김 준섭, 「역사 인식 문제와 한일 관계:미래를 위한 제언」, 한일관계정상화40주년 국제 학술회의 , 2005
阿部謹也、『日本人の歷史意識』、講談社、1989
伊藤唯眞、 『日本人と民俗信仰』、 法藏館、 2001
國學院大學日本文化硏究所、 『日本の宗敎と政治』、 成文堂、 2001
高橋哲哉、 『戰後責任論』、 講談社、 2005
田中伸尙、 『靖國の戰後史』、 岩波書店、 2002
西川重則、 『天皇の神社「靖國」』、 梨の木舍、 2001
歷敎協、 『もっと知りたい靖國神社』、 大月書店、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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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5.12.15
  • 저작시기20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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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327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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