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학 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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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학 사상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목 차 >
Ⅰ. 머리말

Ⅱ. 본 문
1. 박제가의 생애
2. 북학의의 구성
가. 서문
나. 내편
다. 외편
3. 박제가의 주장

Ⅲ. 맺음말

<참고문헌>

본문내용

해서는 교통 운수업이 발전해야 한다고 보고, 우리나라의 지리적 특징에 근거하여 수상 운수업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박제가는 과학 기술이 국가의 부강과 발전에 중대한 역할을 한다고 논하였다. 그는 ‘북학의’에서 당시의 중국의 문물을 소개하면서 노동 도구와 무기를 개선하고 선진 기술을 도입하여 경작법을 개량하는 등 과학 기술을 개조하자는 건의안을 정부에 제출하였다. 그에 따르면 백여 년간이나 평화가 지속되고, 백성의 사치한 풍속이 없는데도 나라가 빈곤한 까닭은 과학 기술의 낙후라고 보았다. 이런 이유는 중국에서 선진 기술을 배우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는 당시 군대의 폐단을 드러내고 군대를 개혁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기도 하였다. 그는 군사력이 국가 경제의 발전 정도에 따라 결정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국방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우선 국가의 물질적 기초를 발전시켜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기 위하여 징병제를 용병제로 대체하고 군대의 수를 감축할 것과, 사병에게 녹봉제를 실시하고 무기와 훈련 및 방어 시설을 강화하여 국가의 방위 능력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北學議에 나타난 박제가의 주장은 크게 네 가지로 분류 할 수 있다. 첫째는 생활의 과학와로 미신의 타파를 들고 있다. 당시 유행하던 풍수설을 미신적인 것으로 거부하고 토지잠식을 막기위해 공동묘지 운영을 주장하였다. 두 번째는 선진문물의 도입으로 무기, 농기구, 운송수단등의 도입을 들었다. 그는 무기, 농기구, 운송 과학 기술의 발전과 선진 문물의 도입은 국부 증대와 국민 복리 증진을 위한 초석이라 간주하였다. 세 번째로 그가 말 하고자 한 내용은 상공업의 활성화였다. 전통적인 상공업의 멸시를 부당한 것으로 지적하면서 상공업의 육성 및 활성화만이 실질적인 국부 증대의 첩경이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그가 말하고자 했던 것은 신분제의 개혁이다. 능력에 따른 인재의 등용으로 적서 차별등의 차별로 인한 인재들의 능력 발휘 기회를 박탈하는 신분제와 과거 제도를 비판함과 동시에 상공인을 멸시하는 사회적 신분 의식 일소를 주장하였다. 박제가는 대부분의 실학자들이 농본적인 부국책을 모색했던 것과 달리 실질적으로 국부와 민생을 윤택하게 하려면 어찌 해야 할지 깊이 고민하였고, 과학 기술과 상공업 육성에 관한 강조는 이러한 성찰의 결과였다. 이 때문에 박제가는 ‘북학의’에서 전통적인 주자학의 공리 공담을 비판하면서 국부와 민생을 윤택하게 할 수 있는 모든 이론적 작업과 실천적 노력은 정당화될 수 있다고 믿었다. 따라서 박제가에게 외국의 낯선 문물과 과학 기술을 받아들이는 일은 전혀 부끄러운 것이 아니었다. ‘참으로 백성에게 이로운 것이라면 그 법이 비록 오랑캐에게서 나온 것일지라도 성인은 그것을 취할 것이다.는 ‘북학의’의 한 대목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해야 그 의미를 제대로 알 수 있다.
선진 문물의 도입에 대한 주장이 너무도 적극적이어서 사대적이지 않은가 하는 비판과 의문을 낳게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가 보기에 진정 사대적인 것은 주자의 말에 사로잡혀 그 밖의 모든 것은 사도(邪道)로 간주하는 고루한 지식인들의 태도였다. ‘북학의’에 나타난 박제가의 유일한 관심은 낙후된 조선의 현실을 진정으로 개혁시키는 것일 뿐이었고, 선진국의 과학 기술과 문물을 도입하는 것은 그러한 목표를 실현시킬 첩경으로 간주되었다.
박제가의 ‘북학의’에 대해 조사를 하면서 오늘날의 사대주의와 당시의 사대주의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되었다. ‘북학의’의 잘못 이해한다면 청에 대한 지나 친 사대주의라고 치부해 버릴 수 도 있다. 당시에는 변화가 필요한 시기였다. 사회의 변화 요구를 당시의 성리학으로는 해결하지 못하였고 새로운 사상이 필요하였다. 때를 맞추어 나오게 된 것이 실학자들이다. 박제가는 그 중에서도 과학 기술과 상공업의 육성을 주장한 사람이다. 선진 문물을 청에서 배워 오고자 하였다. 당시의 시대 상황은 청을 오랑캐의 나라라 하며 우리보다 한 단계 아래로 보면서 경계의 대상으로 여겼다. 하지만 현대도 그러하거니와 과거에도 세상은 ‘힘’이 지배한다. 당시 청나라는 조선보다 선진국 이였고 그들의 문화를 받아들여 우리나라도 발전을 하고자 했던 것이 박제가의 주장이었다. 하지만 그가 전개한 여러 주장은 당시 지배층의 입장에서는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만큼 혁신적이었다. 신분적인 제한으로 실질적인 국가 정책의 입안과 집행에 참여하기 힘들었다. 따라서 기존의 현실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지닐 수 있었고 시대에 앞선 사고를 할 수 있었다.
박제가가 주장하고자 했던 것은 무분별하게 선진 문물만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 안주하고 앞으로 나아가지 않으려는 사람들에 대한 충고일 것이다. 지금의 시대에도 기득권을 쥐고 있는 사람들은 변화를 원치 않는다. 하지만 세상은 돌고 변화한다. 그 변화의 세계에서 혼자만이 멈추어 있으려 한다면 그는 낙오하게 되고 세상과 어울릴 수 없다. 배우는 입장의 우리에게도 앉아서 가르치는 것만을 배우는 자세로는 세상을 주도적으로 살아 갈 수 없다. 계속해서 이끌려 가게 될 것이고 언젠가는 힘들어 주저앉고 말 것이다. 군대에서도 행군 할 때 앞에서 가면 힘든 줄 모르는데 뒤에서 따라가다 보면 신병들은 낙오하게 되는데 세상사는 이치가 모두 같을 것이다. 우리 모두 실학자가 되어 현실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올바른 삶의 방향을 찾아야 할 것이다. ‘혁신적인 사고가 세상을 바꾸고, 그 혁식적 사고의 주인이 내가 된다면…’.
지금의 시대에 나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사회의 요구에 부응 할 줄 아는 그 사회를 이끌어 갈 수 있는 ‘實學’정신이다.
<참고 문헌>
실학파의 철학사상 주칠성 예문서원
조선후기 실학파의 사회사상연구 신용하 지식산업사
실학의 철학 한국사상사연구회 예문서원
한국 철학사상사 김문용,이흥용 예문서원
이야기 한국철학2 한국철학사상연구회 풀빛
實學硏究入門 歷史學會 一潮閣
北學議 박제가 乙酉文化社
두산세계대백과 EnCyber
http://kuksa.nhcc.go.kr/
http://my.dreamwiz.com/yearnarm/
http://www.kungree.com/classic/parkjg.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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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5.12.25
  • 저작시기20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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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329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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