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국가와 정치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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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국인의 국가와 정치를 읽고...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관료주의와 민족주의의 형성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중국의 경우는 이민족의 통치로 유학이 중단되거나, 학문의 경향이 변형되기도 하였으나, 한국의 경우는 초기 유학을 거쳐 고려 중엽이후에서 현재까지 성리학으로 자리 잡았던 것이다. 유학의 정치적 특색은 도의 획득과 군자정치라는 점에 있다. 즉 최고를 지향하는 점에서 제일주의와 엘리트주의를 고양하고 엘리트주의와 씨족사회의 연결은 관료사회에 있어 파벌을 형성한다는 특색이 있다.
풍수는 음양오행사상이 토지와 지형에 관계되어, 인간사에 영향을 끼친다는 견해에 기초되어 있다. 이것은 한국과 같이 유학을 통한 관료사회의 진출이 가문을 숭상케하는 기본의식으로 정해진 사회, 혈연에 의한 집단의식이 강한 사회에서는 그것이 맞고 틀리고의 문제가 아니라, 그렇게 해서 자손이 번영한다면, 안할 수가 없다는 점에서 크게 확산되었다. 고려의 건국과 조선의 건국, 그리고 오늘날에 있어서도 국운과 관련되어 그 신봉자가 상당수에 이른다는 점은 괄목할 만하다. 또한 풍수는 어떠한 인간사회의 형성에 있어 설명할 수 없는 바에 대한 그럴듯한 견해거리가 되어 그 영향력은 비공식적인 차원에서 상당하다. 이미 정감록과 격암유록, 그리고 계룡산이라는 의미는 공식화된 민간신앙으로 자리 잡고 있으며 정치선정과 동원에도 영향을 끼치는 사실이다. 일례로, 박정희 대통령의 자손들이 불행한 것은 육영수의 묘 자리가 좋지 않은 까닭이며, 전두환의 통치 말년에 심한 비판을 당한 것도, 그의 부친이 묘 자리를 바꾼 때문이라는 것은 이미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이러한 전통적인 가치관과 함께, 한국의 전통사회의 커다란 특징의 하나는 한국사회가 신분제에 기초된 계층 사회였다는 것이다. 고대사회에서는 성씨에 의한 신분제도가 국가 정립과 더불어 관직에 따라 위계화 되었고, 고려시대에는 관료시험에 의한 귀족제도 밑에 일번인과 농노가 있었고, 조선시대에는 사농공상에 따른 차별제도가 정립되었던 것이다. 물론, 어느 시대에서나 천민이 존재하였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전통적인 차원에 있어 국가와 권력은 일치되었다. 충효의식과 가부장권, 유학적 원리 속에서 권력자는 충분히 관료 제도를 통한 정치사회화과정을 얻어낼 수 있었고, 무력의 뒷받침 속에서 집권하였으며, 민족 국가라는 틀은 권력과 국가를 자연스럽게 일치시켰던 것이다.
조상숭배의식은 왕조제를 당연한 것으로 인식하였고, 권력은 관료 제도를 통하고 신분제도를 따라 권위주의로 정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왕과 관료제도는 유학의 민본 덕치라는 교육아래 상호 견제하는 구조를 지니고 있었다. 그런 과정 속에서 중앙집권은 논의의 필요성 없이 당연한 것이었고, 이렇게 한국 전통사회의 가치관은 친권의 특징으로, 조상 숭배,효의 강조, 위계조직 가부장원을 형성시켰으며, 농업사회의 특성은 공동노동, 공동의식, 제의 윤리법의 강조를 가져왔고 유학은 조상에 대한 제의와 충효 인의를 강조함으로써 보수적이고 정신적인 가치를 숭상하여 교육적 의식 학자에 의한 관료통치와 덕치 그리고 가족주의를 발전시켰던 것이다. 불교는 자아 각성과 정토 사상 민족주의 통합이념을 지니고 있었으며 역과 음양사상은 사회 현상에 대한 은유적 해석의 방법론이 되어 복합적인 전통가치관을 형성시켰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전통적 가치관은 17세기에 들어서면서 내부적 요인과 외부적 요인에 의해 변형되기 시작한다. 이 과정은 전통적 가치관이 혈연사회와 유학적 제일주의에 의해 파벌을 형성하고 정치권력이 그에 따라 부패하고, 연이은 정치적 갈등을 표면화시켜 민생을 어렵게 하였고, 전쟁은 그것을 가증시켰으며, 전후의 문벌, 가벌정치는 전통적 가치관을 부패시켜갔다. 또한 18세기에 이르러 서구적 영향력 즉 천주교와 학문의 도입 등의 점증적 국내침투는 민중의 권력에 불만과 맥을 같이하여 빠르게 확산되었고, 집권층은 유학의 논리를 들고 나와 그 세력을 탄압하기 시작하여, 한국의 왕조사회는 정치적 탈출구없이 그 갈등만을 더하면서 무너져갔다.
전통적인 유교국가에 있어서 정치란, 덕치로서 국민을 위한 엘리트의 몫이었다. 그러나 엘리트가 혈족 또는 정치적 명분에 따라 파당을 형성할 경우, 덕치는 압치가 된다, 유교국가에서 그러한 사항은 왕의 세력이 약해지고, 관료의 세력이 강해지거나, 왕의 세력이 주변 측근에 의해 조정될 때이다. 조선조에 있어서는 압치로 명명되는 정치 갈등은 왕의 주변측근에 의해 야기되고, 관료의 파벌에 따라 진행되었다. 곧 사화와 당쟁이다. 사회는 지방유학자들이 정치에 진출하면서 기득권층과의 알력에서 형성되었다.
일반적으로 한국의 정치 행태는 유교문화의 유산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아버지가 자식을 교육시키듯, 왕은 신하를 거느리고 남자는 여자를 보다 우수한 존재라는 위계를 인정하는 것, 그리고 그에 따른 질서를 제도화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 집단화된 유교사회는 다분히 질서 유지를 위한 권위와 그에 대한 복종을 당연시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인륜을 강조함으로써 도덕적 가치를 제고하여 그 위계에 다른 사회계층을 인정하였던 것이다.
한국의 역사와 그에 따른 시대적 정황에 맞춰서 객관적으로 우리의 과거를 보는 것은 상당히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이번 과제는 상당히 의미가 있다고 본다. 한국은 절대신관의 부재속에 조상신이 신인동격이고 현실주의적 경향의 도덕론자들에 의한 조합주의적 방어형 국가이다. 달리 말하면, 가부장권은 권위주의로, 도덕철학은 인륜의 질서를 강조하고, 인맥은 파벌을 형성하여 정치로 대두되며, 관료주의가 국가를 대표하는 기관이라는 것이며, 이러한 성격을 토대로 역사 상황에 따라 그 차이는 있을망정 계속된다는 것이다. 한국정치는 민주주의로 가는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로 가는 것처럼 보일 뿐이지, 실상 한국에서 일어나는 정치행태는 비민주적 권위주의와 현실패권적 기회주의에 기초된 양태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한국인들 스스로가 자주성을 강조하고, 그것이 사회실제화 되어간다면, 통일과 더불어 새로운 국가의 창출과 정치 가치가 제자리를 찾아갈 것으로 사려된다. 또한 잘 된 정치 행태를 받아 들이 되 구시대적인 실수를 반복하지 않게 수없이 많이 관찰하고 연구하여 부작용을 최소화하여 받아들여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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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13페이지
  • 등록일2005.12.29
  • 저작시기2005.12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330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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