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의 생애와 사상 교육관 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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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공자의 생애와 사상 교육관 조사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 목 차 -

1. 공자 활동 당시의 중국 상황

2. 공자(孔子)의 생애

3. 공자의 성격 및 인간관

4. 공자의 교육관

5. 개혁가 공자

6. 공자의 사상
① 인(仁)
(1) 대친(對親)의 인(仁)
(2) 대인(對人)의 인(仁)
(3) 대기(對己)의 인(仁)
② 의(義)
③ 공자의 정치사상
(1) 정명(正名)사상
(2) 덕치(德治)사상
④ 공자의 교육사상

본문내용

한 의미를 갖는다. 고대 중국의 정치가 세습되는 특권 계층에 의해 독점되었던 데에 반해서 공자는 도덕성과 능력을 우선시함으로써 평등의 의미를 도입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도덕적, 학문적 수양을 쌓기 위한 교육을 아무나 받을 수 없었던 점에 미루어 이러한 평등은 교육 기회의 균등과 밀접한 관련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 때문에 분명 공자가 백성의 편에 서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백성의 무지함을 인정치 않을 수 없었고 대중에게 정치를 맡길 것을 제안하지는 않았다. 그 대신 모든 백성에게 교육을 베풀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공자는 가장 훌륭한 정치는 백성의 행복을 보장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이것은 공자 사상에서 가장 중요한 점이데, 이것은 단순히 복리만을 목표로 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대부분의 폭군들도 자신이 백성의 복리를 위해 모든 것을 장악하고 자비로써 다스린다고 주장할 뿐 아니라, 그 중에는 그것을 진지하게 믿는 사람도 있다. 공자가 말하는 백성의 복리 증진이란 행복을 증진시킨다는 것과는 다르다. 섭공이 정치를 물었을 때 공자는 "선정(善政)을 베풀면 가까이 있는 자는 행복하게 되고, 멀리 있는 자는 찾아온다"고 하였으며, 또 타국의 백성도 진정으로 선정(善政)이 행해진다는 것을 들으면 그 치하(治下)에서 살기를 열망하여 "자식들을 등에 업고 달려온다"고 말한 적도 있다. 요컨대 이런 말은 정치의 선부(善否)를 판단하는 사람은 백성뿐이며, 그밖에는 누구도 아니라는 것이다. 백성 자신의 눈으로 보아 선정(善政)이라고 판단할 때만이 그들이 행복해 질 수 있다.
공자는 유덕하고 능력 있는 사람[君子]가 모든 백성의 이익을 위해 정치를 해야 한다고 믿었다. 이를 위하여 공자는 (군자(君子)에 의한)예치(禮治)와 덕치(德治)를 내세웠던 것이다.
공자에게 있어서 통치자란 수신(修身)을 통한 도덕적 인격 완성을 한 사람이어야 함과 동시에 백성의 신망을 얻은 인물이어야 했다. 앞에서 언급하였던 것처럼 선정이란 백성이 판단하는 것이다. 여기서 백성의 신망을 중시하는 경향은 공자 정치사상의 민본주의(民本主義)와 직결된다. 모든 정치의 근본이 백성이라는 생각이 백성의 이익을 위한다는 것과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앞서 말한 공자의 개인의 인격적 존중과 이 민본주의를 함께 생각할 때 우리는 이러한 공자의 생각이 현대의 민주주의(民主主義)와 어떤 유사성을 갖지 않는가 하는 생각을 할 수 있다. 비록 공자의 생각이 국민에 의한 국민의 정치라는 민주주의의 단계까지 이르렀다고 보기에는 힘들지만 상당 부분 현대의 민주주의 정신과 유사성을 가진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④ 공자의 교육사상
공자의 교육목표는 실천적인 것이었다. "실천적"이라는 말은 좁게 이해될 수도 있고 넓게 이해될 수도 있다. 좁게 이해하면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교육받은 결과 직접적으로 실제의 생활에 반영되어 어떤 유용성이 나타나는 것을 뜻한다. 개인적으로는 지식을 배워 관직을 얻는다던가 기술을 익혀 직업을 얻는다는 것을 의미하고, 사회적으로는 국가나 사회가 필요로 하는 관리나 기술자를 양성하여 충원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넓게 이해하면 고도로 이념적이거나 이론적이지 않다는 것을 뜻한다. 그것은 현실적인 요구와는 무관하게 고답적인 이론이나 사상을 배우고 거기에 전념함으로써 고매한 인격을 갖추어 구체적인 현실에 초연함을 보이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개인적 삶을 영위하고나 사회적 제도를 운영하는 원리에 관심을 둔다는 뜻으로 이해된다. 이 경우에 이론이나 사상은 그 자체에 가치 혹은 목적을 지니는 것이 아니라, 현실적인 삶, 보다 나은 개인적 혹은 사회적 삶을 영위하기 위한 직접적 혹은 간접적 수단이나 방법이 된다는 것으로 수용될 뿐이다. 공자의 교육이 "실천적"이라는 말은 넓은 의미의 것이다.
공자가 교육의 사회적 목적을 좋은 나라를 만드는 데 두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오늘의 "테크노크라트"(technocrat)와 같이 기술적으로 유능한 관료를 만드는 데 관심을 두지는 않았다. 그가 목표로 하는 "교육받은 인간"의 모습, 즉 군자로서의 인간은 도덕적으로 완성된 인간이다. 그러한 인간은 물론 인을 소유한 인간이지만 더욱 완전하게 표현하면 지혜(知)와 인의(仁)와 용기(勇)의 덕을 균형 있게 갖춘 사람이다.(헌문 30) 군자가 되기 위해서는 네 가지의 과업, 즉 학문(文)을 닦고 실천(行)을 중시하며 충의(忠)를 다하고 신의(信)를 지키는 일에 힘써야 한다. (술이 24) 그러나 공자가 그러한 덕목과 과업을 교육적으로 중시한 것은 그것들이 개인으로서 성공적인 정치적 생애를 살 수 있게 하는 조건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러한 교육을 받은 군자들이 통치에 종사할 때 좋은 나라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공자는 학자를 양성하고자 한 것이 아니라 도덕적 교양인으로서 정치에 종사할 지도자를 기르는 데 관심을 두었다. 그러므로 그가 일차적으로 가르치고자 한 것은 지식이 아니다. 오히려 그는 이렇게 말하였다. "집안에 들면 효도하고(入則孝), 밖에 나가서는 사람들에게 공손히 정의(情誼)를 다하며(出則弟), 근신하여 신의를 지키고, 넓게 여러 사람을 사랑하며, 어진 이를 가까이 하라. 그리고 여력이 있으면 글을 배우라."(학이 6)
공자가 제자들을 가르치는 방법은 전적으로 비형식적인 것이었다. 물론, 수업이나 시험 같은 것은 없었다. 그는 한 사람 혹은 몇 사람을 상대로 하여 대화하였고 때로는 질문을 하고 생각할 문제를 던져 주는 방식을 취하였다. 그가 가르치는 방법은 대상에 따라서 달랐다. 같은 질문에 대한 대답도 대상에 따라서 다르다. 논어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어느 날 자로(子路)가 "옳은 것을 배웠으면 곧 행하여야 합니까?"고 물은 즉, 공자는 "부모와 형제가 계신데 왜 여쭈어 보지 않고 행할 것인가?"라고 응답하였다. 그러나 염유(苒有)가 같은 질문을 했을 때 공자는 "들은 대로 어서 행하라"고 하였다. 그것은 염유가 무엇을 행하고자 할 때 언제나 주저함이 있고 자로는 오히려 행함에 지나침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공자는 잘못에 벌하거나 무엇을 강제하기보다는 옳게 행동하도록 자극하고 권유하는 방법으로 가르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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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5.12.30
  • 저작시기2005.12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3302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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