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집 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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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영혼의 집 을 읽고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I.서론

II.강요된 선택과 대립되는 인간의 자율적 의지

III.갈등과 화해의 근거로서의 가족

IV.용서받을 자

V.결론

본문내용

감옥에 가야 했으며, 그 아래서 권력의 달콤함을 누렸던 많은 사람들이 그들이 정권을 잡으며 행했던 것과 똑같이 보복을 당해야 했다. ‘맞은 놈은 다리 뻗고 자도 때린 놈은 다리 뻗고 자지 못한다.’ 는 말처럼, 가해자들은 자신들이 행했던 잔인한 방법 그대로 보복당할까 노심초사하며, 용서를 받아들이고 반성하기보다는 다시금 자신들이 힘 있는 자리로 되돌아가는 것이 훨씬 안전하며 편안하다고 생각하기 쉽다.
참여 정부 출범이후 정부와 대립각을 세우는 세력들의 양상은 소설 속 선거에 패배한 칠레의 보수세력이 보이는 행동과 너무나도 똑같았다. 은행으로 몰려가 예금을 찾고 돈을 해외로 빼돌리며, 곧 공산주의자들이 나라를 집어 삼킬거라고 믿어버린다. 가해자들이 자신들이 피해자가 될 수 있음은 상상 이상의 공포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으며, 이렇듯 황당하기까지 한 작태를 보일 수 있다. 용서를 하는 자보다 용서를 받아들이는 자가 더 큰 어려움이 있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용서와 화해는 사과나 보상 이상의 공포와 두려움을 가해자들에게 떠넘기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용서와 화해의 제스처는 피해자로부터 나올 수밖에 없다. 물론, 힘의 위치가 뒤바뀐 상태에서 과거의 가해자가 그랬던 것처럼 강압과 물리력에 의해 죄값을 치르게 하고 용서를 강요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용서와 화해는 폭력과 분노 복수의 악순환을 끊기 위한 진정한 용서나 화해일 수 없다. 진정한 용서와 화해는 가해자와 피해자가 모두 복수와 증오에서 벗어나 역사의 악순환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을 의미한다. 용서를 통한 진정한 화해는 결국 피해자의 결단에서부터 시작될 수밖에 없다.
V.결론
인간은 짐승이 아니라 이성과 감성을 지닌 ‘만물의 영장’ 이다. 타인에 의해 일방적으로 제공되어진 것에 대해 거부할 수도 있고 수용할 수도 있다. 만물의 영장이기 위해선 ‘주어지는 것’ 보다는 ‘선택할 수 있는 것’ 이 보장되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경제성장과 사회 안전등의 명분 아래 개개인의 선택권을 박탈하는 모든 강제된 힘은 폭력이며 부당하다. “‘ 배부른 돼지’가 되기보다는 ‘배고픈 인간’이 되는 것이 낫고, ‘만족스러운 바보’가 되기보다는 ‘불만족스러운 소크라테스’가 되는 것이 낫다.” 라고 공리주의자 ‘밀’은 말했다. 배부른 돼지와 만족스러운 바보가 되기를 강요하는 것은 부당하다. 타인에 의한 선택이 강요되어 집단간, 계층간, 세대간의 갈등이 첨예한 사회는 인간의 자율적 의지와 선택이 존중받는 사회로 바뀌어야 한다.
폭력적이고 가부장적인 기질의 트루에바는 타인에게 자신의 선택을 강요했으며 소작인들뿐만 아니라 가족들에게도 이러한 기질은 영향을 미친다. 구성원들간에 대립이 심해지면 심해질수록 구성원들은 서로 다르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가족 구성원들은 사회에서의 관계에 더더욱 몰입하게 된다. 이는 다시 가족간의 공통성을 약화시키고 용서와 화해는 멀어 보였다. 그러나, 쿠데타로 온 가족이 위기에 빠지자 가족애를 확인하게 되고, 서로에 대해 배려와 용서를 하게 된다. 영원히 용서와 화해가 불가능할 것 같던 죽은 가족들도 삶과 죽음을 넘어서 항상 가족들 곁을 머물며 그들을 지켜보고 있었고 마침내 산자들과 더불어 온 가족은 화해와 용서를 하게 된다. 이는 가족이라는 1차적 관계에서 비롯된 당연한 결과로 가족은 가해자, 피해자란 구분을 뛰어넘는 가장 근본적인 1차적 관계맺음이기에 가능한 것이다. 가족간 용서와 화해는 각 구성원이 사회적 관계맺음으로 확립했던 가치관을 뛰어넘는 힘을 가진 것이며 최후의 순간까지 개개인을 지탱해주고 용서와 화해를 가능하게 하는 근거가 된다.
부당한 폭력에 반항하며 가족, 사회와 대립하던 알바는 가족간의 용서와 화해를 이루어내고 다시 사회와의 화해와 용서를 시도한다. 순환적으로 반복되는 폭력을 멈출 진정한 용서와 화해는 피해자가 먼저 가해자에게 손을 내밀 때만이 가능하다. 되풀이되는 비극의 이유를 정확히 깨닫고, 알바는 무의미한 반복의 중단을 마지막 독백을 통해 촉구한다. 진정한 용서와 화해만이 이러한 갈등과 대립을 제거할 수 있다. 알바가 이러한 모든 이야기들을 책으로 쓰려는 이유는, 진정한 용서와 화해는 바로 알바와 같은 피해자들의 몫으로 남겨진 것임을 알리기 위함이라 생각된다.
정의롭지 못한 폭력과 강요에 굴하지 않고 가족 및 사회와 화해를 하는 것은 무척 힘들고 괴로운 일이다. 가부장적이고 폭력적인 남성에 맞서, 이러한 역사의 반복을 끊으려는 여성의 용감한 깨달음의 외침이 더욱 강렬하고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이 강의를 통해 처음 접해본 ‘마술적 사실주의’에도 흥미를 가졌었으나, 소설을 읽으면서 전혀 낯설게 느껴지지 않았고, 신비롭다거나 환상적이라는 느낌도 들지 않았다. 아마도, 우리 민족의 가슴속에 녹아있는 전통적인 문화적 기반과 인디언 문화를 토대로 한 남미의 문화가 비슷하기 때문 아닐까 생각한다. 제사나 차례를 지내는 우리와, 신을 기쁘게 하기 위해 인신공양을 했던 남아메리카 원주민은 신은 별개의 세계가 아닌 이 세계에 공존한다는 유사한 사고를 했음이 분명하다. 이는 죽은 이들은 우리 주변에서 우리를 지켜보고 있으며 우리와 소통하고 있다는 믿음을 의미한다. 리얼리즘과 모더니즘에 사로잡혀 인위적이고 가공적인 기교적 환상만이 가능했던 서구의 소설과 달리, 독특한 역사와 자연으로 인해 우리와 라틴 아메리카의 삶은 그 사실 자체가 환상적이고 마술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특히 소설속에서 집안의 외손녀 알바가 현실의 고통스러운 고난을 외할아버지의 업으로 인식하고, 이러한 고난을 삶의 순환 고리로 인식하는 과정은 역사와 세상을 순환론적으로 바라보는 동양적인 정신과 일맥 상통하는 것이다. 이러한 믿음은 우리들에게는 너무나도 보편적이고 자연스러운 생각이며 전혀 환상적이거나 마술적이지 않다. 이 소설이 비동양권 소설이지만 전혀 낯설지 않은 이유는 양자가 비슷한 정치,사회적 변화 과정을 겪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서구의 입장에서는 마술적으로 보일 수 있는 사회적 현실을 공통적으로 지니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나에겐 이 소설이 너무나도 사실적이였고, 그렇기에 더욱더 읽고 느끼기에 수월했음을 밝히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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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10페이지
  • 등록일2006.01.02
  • 저작시기2005.12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330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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