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사회복지의 정의와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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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기독교사회복지의 정의와 역사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기독교사회복지란 무엇인가
1) 기독교사회복지의 정의
2) 기독교사회복지 제공 주체와 객체
(1) 기독교사회복지 주체
(2) 기독교사회복지 객체
3) 기독교사회복지의 가치

2. 기독교사회복지의 역사적 전개
1) 고대-중세 이전 기독교사회복지
(1) 고대 이스라엘의 복지사업
(2) 초대교회의 기독교사회복지
(3) 콘스탄티누스 황제 - 교황 그레고리우스 1세의 기독교사회복지
2) 중세의 기독교사회복지
(1) 중세의 기독교복지기관
(2) 중세 말기의 기독교복지
(3) 종교개혁시대의 사회복지
(4) 중세 기독교자선의 공헌과 폐해

본문내용

난한 자와 병든 자들에 대한 돌봄의 책임을 전혀 수행하지 않았다. 그리고 가난이라는 것을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신성시하는 경향도 있었다. 전체적으로 사회사업을 규정하는 하나의 법칙은 하늘나라의 상을 받기 위해서, 그리고 영혼의 구원을 받기 위해서 힘써 일하라는 것이었다.
점차 평신도(Laien)들의 봉사활동이 조직되게 되었는데 중세적인 조직체인 수도회(Orden)의 형태로 나타났다. 이는 수도원과 기사단(Ritter)의요소를 결합한 성격의 단체였다. 평신도들에 의해 이 자선사업들이 운영되게 되자 수도원에 묶여 있던 사업체들이 도시나 지방, 교통망이 잘 연결된 곳으로 필요에 따라 옮겨지게 되었다. 대부분의 자선기관들에서는 거기서 함께 일하는 성직자나 평신도들의 공동생활의 기초로 어거스킨의 규칙이 지켜졌다. 함께 일하는 현장에서는 무엇보다 철저한 수도원적인 공동체 생활이 강조되었으며 여기에는 병든 환자들도 함께 참여할 수 있었다.
(3) 종교개혁시대의 사회복지
종교개혁의 이신득의 교리에 대한 재발견은 개혁자들이 경제문제를 해석하는데 중요한 영향을 주었다. 자선행위와 함께 시작된 수도원 운동은 구원을 얻는 도구가 되어 버렸다. 이신득의는 구원이 그리스도인의 근본이지 그리스도인의 목표가 되는 것은 아니라고 가르쳤다. 그러므로 가난하게 사는 것이나 자선을 베푸는 것에는 어떤 구원의 가치도 없다. 개혁자들은 부(富)에 대한 성경의 경고를 부인하지 않았다.
루터는 수도원 제도를 반대하고 하나님의 소명 안에서 정직한 노동을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의 노동관은 ① 모든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일을 해야 한다. ② 게으름과 구걸질과 이자를 붙여서 돈을 빌려주는 일은 악한 행위이다. ③ 자선은 오직 일을 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만 베풀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그리스도인에게 세 가지 회심을 강조했다. 그것은 마음의 회심·정신의 회심·주머니의 회심이다. 그러나 그들은 물질적 가난을 강요하지는 않았다.
칼빈은 비교적 엄격한 생활을 계속하였지만 수사였던 것은 아니다. 기독교 인본주의자로 교육받은 칼빈은 종교적인 것을 포함해서 금욕주의를 거부했다. 그는 탐식과 허식을 공박하였으며 겸손과 절제의 덕을 극찬하였다. 그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단절시키지 않는 한, 그리스도인의 재산축적을 죄악시하지 않았다. 오히려 가난이 부유함만큼이나 영성에 해롭다고 썼다.“사람들은 날카롭고 선해 보이는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에 종종 둔감하기도 한 오른편에 있는 사람들, 예를 들면 부자·권력·고위관리 같은 사람들에게 다가가 감언이설로 유혹한다. 달콤한 속임수와 술 취함에 빠진 사람들은 하나님을 잊어버린다. 왼편에 있는 사람들은 가난하고 불명예와 멸시를 받으며 고통당하는 사람들이다. 고통과 어려움으로 인해 그들은 마음에 좌절하게 되고 확신과 소망에서 멀어지게 된다. 결국에는 하나님과 완전히 결별하게 된다.
종교개혁자들은 중세기의 부정적 재물관의 배후에 있는 토마스 아퀴나스의 반(反) 물질주의를 반대했다. 금욕운동은 토마스 아퀴나스의 이원록적 자연 은총론으로 뒷받침된다. 돈은 영적이지 않은 것으로 생각되었으며 타락한 세상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생존을 위한 일정량 이상의 재물은 순수한 영혼에 치명적인 것이었으며, 물질적인 빈곤은 영적인 완숙함에 필수적인 것이었다. 아퀴나스는 돈이 타락한 이후의 것이라고 했지만, 칼빈은 돈을 피조된 제도처럼 긍정적으로 보았다. 그것은 인간 공동체를 향상시키는 원동력인 자연법칙의 하나였다. 그러므로 돈의 잘못된 사용은 자연법칙의 혼란이었다.
칼빈은 스콜라주의가 이자에 대하여 가르친 것에 의문을 제기한 첫 번째 신학자였다. 그에게 있어서 돈은 교환을 위한 정적인 당위가 아니라 부(富)의 창조를 위한 역동적인 도구였다. 칼빈은 합법적인 이자와 비합법적인 이자를 구분했다. 항상 가난한 사람들을 압박하는 직업적인 고리대금업자들의 행위는 비합법적인 것이었다. 그는 그런 것들은 교회에서 금지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보다 부유해서는 안된다. 그러나 이자는 매매 현장에서 필수적이라기보다는 합법적인 것이다. 개혁자들은 상업행위와 그리스도인의 삶이 모순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칼빈은 그와 같은 행위들에 황금률인 사랑을 적용하자는 단순한 주장을 했다. 그는 궁핍보다는 근신을 가르쳤다. 신약성경의 교회처럼 가난해지려고 일부러 노력하지 말고 다른 사람들의 궁핍함을 덜어줄 것을 강조했다.
(4) 중세 기독교자선의 공헌과 폐해
* 기독교 자선사상의 공헌
교회의 설교의 영향은 지대하여 기독교신도들은 개인적 자선을 종교 생활의 덕행으로 실천하고 있었다. 1414년 영국 법령은 “많은 구빈원은 이 나라의 고귀한 국왕 제후 및 귀부인의 정신적 또는 현세적 이익으로부터 설립되었다. 그것은 많은 설립자가 영혼의 구원과 공덕을 위하여 신과 성모마리아를 신앙하여 재산을 희사하므로서 구빈원을 설립한 것을 말하는 것이다.”
London의 마듀 어네스트(Mathew Ernest)는 1506년 성 던스탄(ST. Dunstan)교구의 교회위원은 매주 토요일 5인의 빈민에게 남녀 각각1페니를 급여하지 않으면 아니된다고 규정하였다. 자선사업에 관한 종교적 공덕의 기독교사상은 은혜적 감정과 동정심을 환기시켰다는데 공헌하였다.
* 기독교 자선사상의 폐해
기독교자선은 가장 필요한 것을 급여하지 못하였을 뿐만 아니라 걸인 및 태만을 장려하는 결과가 되었다. 레온 라루만(Leon Lallemand)은 “관용은 태만을 조장하였으며 또한 진정한 빈민과 교정할 수 없는 태만자를 구별하지 않고 무차별 구제를 실시하였다.” 에쉬리(Ashley)는 “15세기에 있어서 또한 14세기에 있어서 때때로 수도원의 승려들은 태만과 사치에 빠져 빈민에 대한 사랑은 냉담하였다. 구빈원과 수도원은 그 지구의 곤궁자뿐만 아니라 구조를 바라는 미지의 사람들에 대하여도 이것을 조사 감독하지 않고 구제물을 급여하였다. 직업적 걸식은 여하한 엄격한 법률로도 이것을 제어할 수 없었다.”(지윤, 1985:67-75)
- 참고문헌 -
박영호(2001) 기독교 사회복지 - 기독교문서선교회
김기원(1998) 기독교사회복지론 - 대학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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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6.01.20
  • 저작시기20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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