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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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로마의 역사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로마통사
제 1절 공화정의 발달
제 2절 지중해세계의 정복과 공화정의 몰락
제 3절 제정의 성립과 로마의 평화
제 4절 제정의 붕괴와 로마의 몰락

로마의 문화

본문내용

팽창기-퀸투스 에니우스: 《연대기》-서사시 형태, 로마의 팽창을 애국적으로 부름.
플라우투스 , 테렌티우스 : 그리스적 희극작품.
공화정말기- 루크레티우스 : <만물의 본질에 관하여>-장편시, 에피쿠로스철학 토로.
키케로 : 라틴문학 최고의 산문작가(후세에 라틴문장의 모범이 됨). 스토아학 파사상가. <노년에 관하여>,<우정론>,《국가론》,《법률론》등 저술.
아우구스투스시대- 라틴문학의 황금기.
베르길리우스 : 《에네아스》-로마건국을 테마로 한 서사시.
호라티우스 : 전원생활을 비롯한 여러 주제에 관한 아름다운 시-로마인 의 꿋꿋함과 단순한 생활 찬양
오비디우스 : 당대 풍속에 대한 날카로운 비평, 사랑에 관한 시 지음.
은시대(銀時代) - 세네카 : 그리스비극을 모방한 9개의 비극작품 저술.
루카누스 : - 카이사르와 폼페이우스의 투쟁을 테마로 한 서사시.
유베날리스 : 풍자시- 당대 사회와 로마인의 잔인성, 탐욕을 과장되게 묘사.
◎조각과 건축, 그리고 기술
로마인의 성격을 가장 진솔하게 보여준 것은 조각예술과 건축이었다.
<조각>
로마의 조각은 주로 개선 아치와 원주, 설명적인 릴리프, 제단, 그리고 인물의 흉상과 조각상들이다. 조각의 뚜렷한 특징은 개성과 자연주의이다. 로마의 조각상과 흉상은 때로는 귀족 계급의 허영심을 드러내는 데 그치곤 했다. 그러나 우수한 인물을 조각상은 스토아 철학이 제시하는 소박한 인간적 존엄성의 특성을 표현했다. 실질을 중요하게 여겼던 로마인들은 얼굴의 잡티까지 세세하게 드러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미술 분야에서 로마 미술은 그리스의 헬레니즘의 전통을 계승한 데 불구하고 독자적인 미의 세계를 창조하지는 않았다.)
<건축>
→코린토식의 열주 + 에투루리아의 원형 아치 / 돔(dome)양식.
로마의 건축은 힘과 위엄을 드러내기 위한 기념물이었다. 때로 신전 건축 등에서 코린토스 식 기둥이 채택되기는 했지만, 건축물들을 아치, 볼트, 돔 등을 그 주요 구성으로 하고 있었다. 재료로는 벽돌과 사각형 석제, 그리고 로마인의 발명품인 콘크리트가 가장 널리 사용되었다. 로마의 건축은 일차적으로 실용적 목적을 띠고 세워진 것이 대부분이었다. 가장 두드러진 예로는 정부 청사, 원형 경기장, 목욕탕, 경주로, 개인 주택 등이 있었다. 대부분은 건축물들은 거대한 규모에 단단한 구조를 갖고 있었다. 규모가 크고 또 유명한 것으로는 판테온, 콜로세움 등이 있다.
<기술>
건축에서의 업적과 긴밀한 연관을 갖는 것은 로마인의 우수한 기술과 공공시설이었다. 로마인들은 훌륭한 도로와 교량을 건설했으며 대부분이 지금도 남아있다. 트라야누스 시대에는 11개의 수로가 설치되어 인근 언덕으로부터 로마 시로 물을 공급했다.
로마인들의 거리, 건축물을 바라보며 과학성과 거대함에 놀라지만 조금만 더 생각을 해 본다면 당시의 지배자들이 통치의 수월성을 위한 수단으로 이용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팽창기의 어쩔 수 없는 로마의 빈부격차는 가난한시민이 노예보다 낮은 경제력을 만들게 하였지만 로마의 지배자들은 빈민들에게 무상으로 곡식을 나눠주고 콜로세움에서 검투사 경기를 보여주었으며, 판테온, 신전, 개선문과 같은 아름다운 공공건물을 세워 불만을 해소하고 더 나아가 빈민들이 로마 시민의 한 사람임을 자랑스럽게 느끼도록 하는 수단으로 이용되었던 것이다.
◎그리스도교
로마제국 초기에 팔레스타인 지방에 거주하던 유대 인들은 메시아의 출현을 기대하고 있었다. 이 때 예수가 나타나서 유대 인만이 최후의 심판에서 구제받을 수 있다는 배타적인 선민의식을 배격하고 민족과 신분을 초월한 사랑과 신에 대한 믿음에 의해서만 구원받을 수 있다는 주장을 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교의 탄생이다. 그러나 예수를 따르는 이들이 늘어나자, 자신들의 입지가 줄어들 것을 염려한 유대 교 율법학자들은 예수를 로마에 반대하는 정치 선동가로 몰아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한다.(이 때문에 그리스도교가 널리 신봉되던 중세 유럽에서는 유대 인들이 예수를 죽인 민족으로 몰려 탄압 받게 된다.)
그 후 예수의 가르침은 그의 열두 제자들의 활약에 힘입어 로마 제국에 널리 퍼지게 된다. 그리하여 각지에 교회가 세워지게 되고, 예수의 복음과 사도들의 행적,편지를 묶음 신약 성서가 편찬되었다. 하지만 그리스도교는 유일신 신앙과 우상 숭배를 거부하는 교리로 인해 황제를 받들지 않는다 하여 로마 당국으로부터 박해를 받게 된다. (네로 황제의 박해)
그렇지만 처음에는 하층민과 노예를 중심으로 퍼졌던 그리스도교가 상류층에까지 확산되자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밀라노 칙령으로 그리스도교를 인정했고, 테오도시우스 황제는 이를 로마의 국교로 정하기까지 했다. 이후 그리스도교는 전 유럽에 널리 퍼지게 되어 그리스로마 문화와 함께 서양문명의 근간이 되었다.
※정리
크리스트 교의 성립
① 예수의 출현 :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이웃에 대한 사랑을 주장하였다.
② 전파 : 예수의 제자인 베드로와 바울로가 그리스, 로마 등지에 전파하였다.
③ 로마의 박해 : 로마는 황제 숭배 거부를 구실로 크리스트교를 박해하였다. 그러나 박
해에도 불구하고 크리스트 교도는 계속 증가하였다.
로마의 국교가 된 크리스트 교
① 크리스트 교 공인 : 4세기 초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밀라노 칙령으로 크리스트교를 공
인하였다(313).
② 국교 : 4세기 말 로마의 국교로 선포되어 세계 종교로 발전하게 되었다.
이렇듯 로마의 문화는 오리엔트, 그리스, 헬레니즘적 요소를 종합한 유럽 고대문화의 완성판 이었는데, 이는 그들이 세계제국을 건설하는 과정에서 정복지역에 널리 전파되어 이후 서유럽 문화의 형성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데서 그 의의를 찾을 수 있다.
참 고 문 헌
이강무, 「청소년을 위한 세계사-서양편」(두리미디어, 2002)
차하순, 「서양사 총론1」(탐구당, 2002)
민석홍, 「서양사 개설」 (삼영사, 2004)
이투스 사회팀, 「누드 교과서-세계사」(이투스, )
에른트스 H곰브리치 「곰브리치 세계사」(자작나무,1997)
로버트 램 「서양 문화의 역사 I」(사군자, 1999)
E.M.번즈 R.러너S.미첨, 「서양 문명의 역사I」(소나무,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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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6.02.20
  • 저작시기20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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