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 중앙 박물관에 다녀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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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7월 28일. 오늘은 국사 숙제하러 국립 중앙 박물관에 가는 날이다. 친구 병주와 함께...... 사실 숙제때문에 간다고는 하지만 가고 또 가도 계속 가 보고 싶은 곳이 바로 국립 중앙 박물관이다. 우리는 오전 10시에 까치산 역에서 만나 지하철 5호선을 타고 광화문 역 앞에서 내렸다. 그 곳에서 부터 한 20 분쯤 걸어 가니까 국립 중앙 박물관이 눈에 확 들어왔다. 우리는 일단 안으로 들어가서 음료수를 마시면서 좀 쉬었다. 왜냐하면 땀을 무척 많이 흘렸기 때문이다. 다 쉬고 난 후, 우린 먼저 1층으로 내려가 조선 시대 유물부터 관람 하기로 했다. 조선 시대 유물을 중심으로 관람하는 것이 이번 방학 과제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조금 이상한 점이 하나 있었다.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고구려, 백제, 신라, 고려는 전시되어 있는 유물들이 매우 많은데, 그보다 남아있는 유물이 훨씬 더 많을 것 같은 조선 시대의 전시 유물들은 왜 분청사기와 조선백자로 국한시켜 놓았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 할 수 없다. 어쨌든 우린 먼저 조선 분청사기실로 들어갔다. 들어가니까 바로 옆 벽면에는 조선 분청사기에 대한 역사, 유래 등의 내용이 매우 상세히 개재되어 있었다. 우리는 일단 종합적인 조선 준청사기에 대한 내용을 알아보고자 하는 의미에서 그 내용을 쭉 읽어 나가기 시작했다. 우리가 읽은 그 내용은 대강 이렇다.
분청사기란 훈청회청사기의 줄임말로, 회색 또는 회흑색의 태토 위에 백토로 분장하여 회청색 유약을 발라서 구운 자기이다.
힘이 넘치는 단순하고 소박한 모습의 분청사기는 퇴락해 가던 상감청자의 뒤를 이어 고려말과 조선초에 걸쳐 전국 각지에서 만들어 졌다.
분청사기 가마는 청자를 굽던 가마와는 달리 내륙 지방 곳곳에 퍼져 있다. 이것은 고려말 잦은 왜구의 침입으로 주로 전라도 해안가에 위치해 있던 청자 가마가 문을 닫게 되자, 도공들이 내륙으로 이주한데서 비롯된다. 현재까지 조사된 분청사기 가마는 남한의 약 110개 지역에 걸쳐 220여 기에 달하며, 발굴 조사된 것으로는 전남 광주 무등산 충효동 가마와 충남 공주 계룡산 가마 등이 있다.
분청사기의 특징을 가장 잘 나타내 주는 것은 무엇보다도 분장 기법과 자유 분방한 무늬이다. 분장 기법은 백토 분장의 방법과 분장 후 무늬를 표현하는 방법에 따라 상감, 인화, 조화, 박지, 철화, 귀얄, 덤벙 기법으로 나뉜다.
상감 기법은 고려 시대의 상감 기법을 이어 받은 것으로 15세기 전반에 유행하였다. 무늬로는 연당초, 연꽃, 버드나무, 모란당초, 물고기, 갈대, 어룡, 파도문 등이 있다. 분청사기상감용무늬항아리는 문양이나 크기에서 중국의 영향을 보여 주고 있으나, 당시의 상감분청을 대표하는 작품 중의 하나이다.
인화 기법은 원하는 무늬를 새긴 도장을 가지고 그릇 표면을 질서 정연히 찍은 후 백토를 넣어 무늬를 나타내는 기법이다. 세조 (1455 ~ 1468) 년 간에 절정을 이루었으며, 병 전면에 국화무늬가 빽빽히 찍힌 분청사기인화국화무늬병은 걸작으로 꼽힌다.
인화 기법이 베풀어진 대접이나 접시 등은 관청용으로 많이 사용되어 '공안부', '장흥고', '인수부', '덕녕부' 등의 관청명이 들어 있는 것이 많다.
상감이나 인화 기법보다 훨씬 자유롭게 문양을 표현 할 수 있는 것이 조화와 박지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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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6.02.04
  • 저작시기2006.02
  • 파일형식워드(doc)
  • 자료번호#336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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