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시대의 총파업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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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일제시대의 총파업에 대해서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929년의 원산총파업

신흥탄광노동자 파업

평양 고무공장 노동자 파업

본문내용

, 상공협회, 각 조합연합회의 조정을 통해 20개 요구조건의 일부를 승인하는 타협안을 내놓게 되었다. 그런데 경찰에서는 상공협회 등의 조정을 금지하고 스스로 조정에 나서 공장주의 타협안보다 불리한 조건으로 승인을 강요하였으며 전권위원들은 경찰의 이런 강압적 태도에 결국 굴복하고 말았다.
경찰의 전면적인 집회금지와 신직공 모짐을 통해 작업을 개시한 자본가들의 태도 및 기계공들의 복업 등에 격앙된 노동자들은 23일에 작업을 개시한 공장들을 습격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따라 평양 전시가 무장경관의 계엄령 하에 놓여져 도처에서 격렬한 충돌이 일어났다.
이런 가운데 복귀하는 노동자의 수가 늘어나 파업은 사실상 노동자측의 패배로 끝나게 되었고 직공조합은 9월4일에 이르러 파업단의 해체식을 갖고자 하였으나 경찰은 그것마저 금지하고 말았다.
1930년 8월의 총파업 과정에서 임금인하를 단행한 공장주들은 이듬해에 또다시 임금인하를 기도하였다. 이에 맞선 노동자들은 직공조합을 통하여 대응책을 강구함으로써 노동자와 자본가 사이의 전선이 뚜렷이 형성되었다.
노동자들은 단식 동맹을 조직하여 공장을 점령하고 농성을 벌이는가 하면 여성노동자인
강주룡은 을밀대 다락 위에 올라가 9시간 남짓을 머무르면서 “무산의 단결과 고용주측의 무리를 타매하는 연설”을 하는 열렬한 투쟁을 전개하였다.
이와 같은 노동자들의 완강한 투쟁이 계속되는 가운데 부근의 공장 일대에서는 동정태업이 일어나고 평양노동연맹을 비롯한 노동, 사회단체에서는 적극적인 지원과 응원을 결의하였다. 이에 대하여 공장주측은 감독이 파업 직공을 구타하는가 하면 파업 직공 전원의 해고를 선언하고 신직공을 모집하여 작업을 감행하는 등의 대응으로 맞섰다. 이리하여 신직공들의 작업을 막기 위하여 노동자들은 투석을 하거나 오물을 끼얹는 등의 격렬한 투쟁을 전개하였다. 파업단의 대표가 구속되고 20여 일 동안 일을 못한 노동자들이 생활난에 허덕이게 되었다. 또한 당시 평양각처에 살포된 격문으로 검거 선풍이 일어났으며 동아일보 1931년 6월 11일자 참조.
이러한 영향으로 파업단의 기세가 급격히 약화되면서 파업은 종식되고 말았다. 이와 같이 파업은 20여명의 희생자를 내고 끝나고 말았으나 실질적으로는 외부로부터 어떠한 도움도 거의 없이 자본가와 일제에 맞서 강렬하고 지속적인 투쟁을 벌였다는 점에서 커다란 의의를 지니며 임금인하를 위한 공장주들의 시도를 “일단은” 저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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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6페이지
  • 등록일2006.02.10
  • 저작시기2006.02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336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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