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군신화의 제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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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단군신화의 제문제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서론

Ⅱ. 단군신화의 유형

Ⅲ. 단 군
1. 단군의 출생신화
2. 단군의 실체

Ⅳ. 단군에 대한 인식
1. 고려 시대 - 지역 시조신이자 자연 수호신으로서의 단군
2. 조선 전기 - 우리 역사공동체를 출발시킨 천명을 받은 시조로서의 단군
3. 조선 후기 - 조선 고유문화의 영웅이자 신교 창시자로서의 단군
4. 민족해방투쟁기 - 단군을 민족신으로 모신 대종교의 창립
5. 해방 이후 - 남한 학계

Ⅴ.단군 연구의 과제와 전망

Ⅵ. 결론

본문내용

를 통해서 제시하려는 전통조차 거의 끊겨버렸다고 판단된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엄밀한 본질주의적 자세를 견지하면서 그 시대 언어를 읽어낸다면, 이를 현재 우리의 고유분화적 언어, 보편과학적 언어, 민주이념적 언어들과 상호 대화하면서 재해석해 낸다면, 앞으로 창조적이고 진보적인 기능을 담당할 수도 있을 것이다.
Ⅴ. 단군 연구의 과제와 전망
단군신화를 통해 우리민족의 건국이념을 찾고자 하면, 단군연구가 자칫 허황한 관념세계로 빠져들기 마련이다. 또한 특정 종교교단의 이해와 연결하여 단군신화를 연구해서는 안된다. 우리 민족의 건국이념을 염두에 두면서 고조선을 연구하다보니, 자연 국력이 강대했다는 구수주의적 경향이 나타났다. 그 결과 고조선의 강역을 요하에 이르는 거대한 영역으로 설정한 나머지, 그 중심지가 요동지역에서 대동강지역으로 이동하였을 가능성을 제시하였다. 바로 이런 문제로 말미암아 단군연구가 비학문적인 태도를 노출시켰다. 사실 건국 초기의 고조선은 성읍국가여서 요동에 있었을 가능성을 설정한다면, 같은 시기에 대동강유역에 성립된 국가나 사회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지적함이 중요하다.
우선 고조선의 민족 구성 문제에 대해서는, 우리 민족의 기원과 근간을 밝히려는 작업으로 연결된다. 문헌에 보이는 우리 민족의 근간인 한예맥을 알타이족으로 분류하였는데, 그 이유는 우리말이 알타이어계에 속하기 때문이다. 다만 알타이족 이전의 고아시아족이나 퉁구스족과 고조선을 세운 민족과의 관계에 대해서는 현재 엇갈린 견해가 있다. 물론 이러한 문제는 만주나 동북아지역에 거주했던 민족에 대해 심화된 인류학적인 연구를 곁들이면서, 고조선사회를 규명하여야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고조선 국가의 형성문제에 대해서는, 고조선의 개국연대를 단군고기에서 제시한 기원전 2333년으로 설정하거나 또는 그 이전이라는 입장에서 우리나라 청동기시대의 상한을 무턱대고 올려서는 안된다. 청동기시대의 고고학자료를 가장 오래되었다고 해서 무조건 고조선으로 연결시켜도 무의미하다. 왜냐하면 더 오래된 성읍국가에 관한 기록이 문헌에 실제로 전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고조선이 우리나라 비파형청동기가 제작된 상한인 기원전 10세기경에 건국되었다면, 이후 燕의 전성기였던 기원전 4세기까지의 연맹왕국으로 성립하는 발전과정에 대한 구체적인 기록이 전하지 않는다. 자연 이 부분에 대한 연구가 부족하였다.
또한 구조선의 국가체제는, 이미 성읍국가로 출발한 고조선이 연맹왕국으로 성장하였고, 그런 과정에서 왕실 내 지배세력의 교체가 있었음은 분명하다. 그러나 고조선 내의 구체적인 사회경제적인 모습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미 북한의 단군연구는 그 수준이 높지 않을지라도, 고조선의 정치제도나 경제제도에 대한 연구로 나아갔다. 앞으로 고조선에 대한 연구는 그 사회의 구체적인 모습을 실증적으로 제시해야 한다. 철기시대를 배경으로 위만조선의 성장을 무역과 연관시켜 연구하였다. 곧 위만조선사회에는 화폐를 사용하고 중국과 빈번히 무역함으로써 상인 신분이 등장하였다 최몽룡, 「고대국가 성장과 무역ㅡ위만 조선의 예ㅡ」, 『한국고대의 국가와 사회』, 일조각, 1985, p.74
. 위만조선사회에 그치지 않고 고조선의 상업과 무역에 관한 구체적 모습을 이끌어냄은 중요하다.
따라서 이러한 단군의 연구는, 자료에 대한 실증적 검토를 바탕으로 이루어져야 하며, 단군고기의 분석을 통해 민족 전통문화의 폭넓은 양상을 이끌어내야 한다. 또한 고조선 개국과 국가체제의 변천을 밝히기 위해 비슷한 시기 중국이나 특히 삼국시대 초기의 사회나 국가체제와 비교연구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단군연구는 문헌사학이 중심이 되어야 하겠지만, 인접 학문 간의 학제적 연구로 발전함이 바람직하다. 단군연구의 수준은 고조선의 구체적인 사회 경제제도에 대한 이해를 심화함으로써 높아질 수 있다. 이 경우 고고학자료가 대단히 중요한데 연대기자료로 이용될 수 있도록, 그것을 만들 당시의 문화사적 풍토에 대한 이해를 심화하면서 그 사료적 가치를 검증해야 한다. 아울러 사료의 성격상 고조선 후기의 구체적인 사회경제제도가 밝혀져야 단군조선의 사회경제상황에 대한 사실적인 모습에 접근할 수 있다. 앞으로 기자나 위만조선에 대한 심층적인 연구가 이루어져야 한다.
Ⅵ. 결론
단군신화는 고조선이란 정치적 사회가 어떻게 해서 등장했는가를 설명하는 것이다. 이에 의하면 고조선은 하늘과 땅을 대표하는 지극히 신성한 존재의 혈통을 이어받은 단군에 의해 성립되었다는 것이다. 단군신화는 이를 설명하기 위해 다양한 신화소들을 동원하는데, 그것은 고조선의 역사와 사회를 엿보게 하는 중요한 단서를 제공해 주고 있다.
우선 단군신화를 통해 고조선의 성립과정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신화에서 개인은 집단을 표상하며, 하늘로부터 내려왔다는 것은 종족의 이동을 의미한다. 한편, 곰은 토테미즘의 존재, 토템으로 상징되는 집단의 존재를 시사하는데, 아직 토템을 유지하였다는 점에서 후진적인 사회임을 짐작할 수 있다. 여기서 추측한다면 선진적 이주세력과 후진적 토착세력이 연맹을 구성하여 고조선을 탄생시켰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또한 환웅이 기후관련 신들을 거느리고 왔다는 것에서 고조선이 농경단계로 진입한 사회로 볼 수 있고, 신의 상하관계에서는 고조선이 계급사회였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알려주는 단군신화는, 일연의『삼국유사』에서 그 모습을 드러낸 이래로 계속 연구되어 왔으며 우리 역사의 사상 성립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우리의 뿌리를 아는 일으로서의 단군신화는 그간 우리 사회에서 깊은 관심을 받았고, 또 연구되어 왔는데, 그 결과와 방향은 서로 많이 달랐다. 이제 고고학자료를 만들 당시의 문화사적 풍토에 대한 이해를 심화하여 그 사료적 자치를 검증하고, 사료의 성격상 고조선 후기의 구체적인 사회경제제도를 밝혀 단군 조선의 사회경제상황에 대한 사실적인 모습에 접근해야 한다. 대중적 관심과 열의를 더 이상 추상적이고 소모적인 논쟁에 낭비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보다 합리적이고 구체적인 연구를 진전시켜 나갈 수 있는 학문적 여건을 조성하여 단군신화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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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6.02.12
  • 저작시기2006.02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336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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