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이 따르는 리더십(leadership)에 대한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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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성공이 따르는 리더십(leadership)에 대한 이해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통합의 리더십

자기 지향적 리더십 - 인생은 전쟁터이다

관계 지향적 리더십 - 사람은 나의 재산

도구 지향적 리더십 - 미래에 각광받을 리더십 스타일

삼성 이병철(성공한 리더십의 대표적인 예)

♣이병철의 경영 철학♣

♣이병철의 경영 15계명♣

♣이병철 경영대전 ♣

본문내용

성전자는 창립 9년만인 1978년에 흑백 TV 200만 대를 생산하여 일본의 마쓰시다전기를 앞섰고 1981년에는 1,000만 대를 생산하려 세계 정상에 올랐다. 1984년 3월에는 국내 최초로 컬러 TV를 500만 대, 흑백 TV를 1,500만 대를 생산했다. 이후 삼성전자는 VTR, 오디오, 냉장고, 에어컨 등을 생산했다. 이병철은 삼성전자를 세계 정상급의 전자업체로 육성하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했다. 그가 가장 염두에 둔 것은 기술 혁신이었다. 이병철의 기술에 대한 집념은 매우 강해 당시 삼성종합기술원을 설립했고 이러한 노력 덕분에 삼성전자는 미국, 일본, 네덜란드에 이어 네 번째로 VTR을 개발해낸다.
전자산업 쪽에서 입지를 굳힌 삼성은 이어 중화학공업분야로 진출한다. 그 중에서도 이병철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조선산업이었다. 조선산업은 철저한 노동집약적 산업인만큼 이병철은 인건비가 싸고 사람들의 손재주가 좋은 한국이 조선업에 진출하면 성공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세계에서 가장 크고 생산성이 높은 조선소를 만들기로 마음을 굳힌다.
이병철은 1974년 다모코사와 미쓰이 석유화학과 합자하여 울산 석유화학공업단지 내에 삼성석유화학을 설립하고 1977년에는 방위산업의 일환으로 삼성정밀공장을 설립하여 GE와 프래트휘트니 사와의 기술 제휴를 통해 항공기 사업에 진출하는 등 잠시도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분야를 개척해나갔다.
7. 경쟁자는 바로 모든 국가이다
1980년 봄 이병철은 일본의 저명한 경제 전문가 이나바 박사로부터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듣고 첨단 기술의 중요성을 깊이 인식했다. “제철, 조선, 석유화학 등 일본의 기간산업은 그동안 치열한 경쟁을 통해 기술과 품질을 향상시켰으나 과당경쟁과 과잉생산으로 도산이 속출했고 그 부담은 고스란히 국가와 국민에게 돌아갔습니다. 한편 대외적으로도 덤핑 수출로 이익도 없이 각국의 증오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결국 일본은 1973년 오일쇼크 이후로 기간산업의 생산 비중을 대폭 억제했습니다. 대신 반도체, 컴퓨터, 신소재, 유전공학, 광통신 등의 부가가치가 높은 첨단 기술분야에 치중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수출이 획기적으로 늘고 외화수입이 급증했습니다. 일본의 살길은 경박단소의 첨단기술산업에 달려 있습니다.”
이나바 박사와 헤어진 후 이병철은 곰곰이 생각했다. ‘한국도 일본과 마찬가지로 자원이 없다. 살길은 오로지 수출뿐이다. 산업 재편을 추진하고 첨단기술산업을 육성하지 않으면 안 된다.’이병철이 생각하고 있는 첨단 기술산업이란 바로 반도체였다. 반도체는 ‘산업의 쌀’이며 21세기 첨단 산업의 핵심이다. 그러나 문제는 워낙 세밀한 산업이다 보니 그 기술 수준이 상상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높고 막대한 자원이 투자되어야 했다. 이병철은 고민에 빠졌다. 고급 두뇌는 어디서 데려올 것이며, 공장 건설은 어떻게 할 것이며, 공장 설비에 드는 천문학적인 자금은 어떻게 조달할 것인가? 생각할수록 문제는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하지만 누군가는 이 문제를 해결해야만 했다. 그것은 국가를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했다.
8. 물꼬가 트일 때 확장하라
이병철은 새로 착수한 사업이 정상 궤도에 오르면 즉시 또 다른 분야로 눈길을 돌렸다. 부실기업인 동방생명과 동화백화점을 인수하여 각각 업계 최고의 기업으로 변화시켰다. 또한 정치가의 꿈을 접고 오히려 올바른 정치를 권장하고 나쁜 정치를 못하게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생각한 뒤 중앙일보를 창간했다. 동양 텔레비전과 동양 라디오도 설립했고 개국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모두 흑자를 냈다. 그는 국토개발 쪽에도 눈을 돌려 대규모의 용인자연농원을 건설했다.
9. 사업이란 인재를 구하는 것이다
이병철은 신입사원 면접 시험이 있을 때는 반드시 참석했다. 그것은 제대로 된 인재를 뽑기 위해서였고 이렇게 뽑은 인재들 중 자질이 있는 사람을 가르쳐 경영자로 만들었다. 그는 기업 경영의 모든 책임과 권한을 갖는 경영자는 판단력, 계획성, 추진력, 통찰력, 지도력 등을 갖춘 전인적 인간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1957년 삼성은 우리나라 기업 사상 처음으로 사원의 공개채용시험을 실시하여 27명의 인재들을 선발했다. 갓 입사한 이 신입사원들은 제일모직에서 한 달간 현장 실습을 하고 다시 제일제당에서 3개월간 설탕 부대를 나르는 일부터 시작하여 현장실습을 했다. 앞으로 삼성을 이끌어갈 엘리트 사원들에게 작업 현장의 어려움을 배우게 하기 위한 이병철의 고려였다. 그만큼 그는 공채 1기생들에게 거는 기대가 컸다. “자네들이 삼성을 이끌어가야 한다”, “넌 모난 성격 좀 고쳐라.”등등 개인적인 충고까지도 아끼지 않으면서 회사의 대표라기 보다는 아버지처럼 사원들을 대했다. 이병철은 인재가 회사를 발전시킨다는 것을 믿고 있었다. 훗날 삼성물산의 사장이 된 경주현, 그룹 비서실장 송세장 등 공채 1기생들은 그의 이러한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삼성의 최고경영자들로 성장했다.
이병철은 사람을 뽑는 데 있어서도 대단히 신중을 기했지만 사원의 교육에도 투자를 아끼지 않았으며 대우 면에서도 대한민국에서 최고의 대우를 해주었다. 이병철이 인재에 이처럼 집착한 이유는 1980년 그가 전경련에서 행한 강연의 다음 대목에 잘 나타나 있다. “기업의 발전은 유능한 경영자에게 달려 있습니다. 내 일생의 80%는 인재를 모으고 교육시키는 데 보냈습니다. 내가 키운 인재들이 성장하면서 두각을 나타내고 좋은 업적을 쌓는 것을 볼 때 고맙고, 반갑고, 아름다워 보입니다.”또한 이병철의 용인술의 비결은 한번 믿은 사람은 끝까지 믿고 모든 것을 위임한 채 전폭적으로 지원한다. 그리고 엄중한 신상필벌의 원칙으로 수많은 경영자를 길러냈다. 이병철이 보는 인재 기르기는 다음 말로 요약된다. “내 경험으로 보면 입사 1, 2년이 지나면 신입사원의 약 5%는 탈락하고 30%는 우수한 인재가 된다. 문제는 나머지 65%의 사람인데 이들은 환경과 지도 여하에 따라 좌우된다. 조직력이란 바로 이들을 인재로 만들어나가는 힘이다.”이병철의 이러한 노력 덕분에 정재은 삼성물산 부회장, 윤종용 삼성전자 부회장, 이수빈 삼성생명 회장 등과 같은 탁월한 경영자들이 배출되었다.

키워드

성공,   리더쉽,   이병철,   삼성,   리더
  • 가격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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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6.02.23
  • 저작시기2006.02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337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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