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나벤투라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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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들어가면서

2. 본론
2.1 이성적 방법을 통한 신 존재 증명:
2.1.1. 첫 번째 방법 : 본유 관념
2.1.2 두 번째 방법 : 인과율
2.1.3 세 번째 방법 : 완전성
2.2 관조적(觀照的) 방법을 통한 신 존재증명
2.3 삼위일체인 신 존재에 대한 관조
2.3.1 불완전한 관조
2.3.2.1 빛의 신
2.3.2.2 어둠의 신

3. 나가면서

본문내용

문일 것이다. 그는 이 작품의 결론 안에서 위-디오니시우스의 부정신학 형태를 취하고 있다. 즉 긍정의 길을 타당한 것으로 받아드리지만 부정의 길을 더 의미 있는 것으로 받아드리고 있다. 신은 밝음에서보다 어둠에 묻혀있으며, 빛보다는 불에 묻혀있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그래서 보나벤투라에 있어 신은 어둠이며 빛이다. 그는 신을 전통적 방법인 이성으로 설명하고 증명하는 것보다 관상의 방법을 선호하였다. 관상의 지식은 이성보다는 신앙에 근거한다. 따라서 관조적(관상적) 지식은 "초 개념적이고 그것은 개념과 형상이야말로 관상을 방해하는 것"
) 전통과 영성., p.229.
이다. 그러므로 보나벤투라는 『하느님께 나아가는 정신의 여정』 결론에서 이렇게 말함으로써 결론을 맺는다.
"만일 그대가 이것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알고자 한다면, 학문에 묻히지 말고 은총에
묻히며 연구하는 독서에 묻히지 말고 기도와 탄식에 묻히며 (...) 밝음에 묻히지 말
고 어둠에 묻히고 빛에 묻히지 말고 불에 묻히어라. 그 불은 완전하게 타올라서 신비
적 도유와 불타는 사랑을 통하여 하느님 안으로 변형시킨다. 이 불이 하느님이시다"
) Itin., c.7. n.6.
상기의 인용은 보나벤투라가 말하고 있는 신은 논리적이고 이성에 입각하여 증명되는 신이 아님을 역설하고 있다. 그가 말하는 신 존재는 '어둠이며 빛'이다. 여기서 우리는 그가 왜 합리적이고 이성적 논증보다 관조적 방법을 더 선호했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이상으로 우리는 보나벤투라의 신 실존에 대한 두 가지 접근방법, 즉 전통적 이성의 추론과 관조적 방법을 보았다. 전자는 스콜라 시대의 전통적 이성의 추론 방법이고 후자는 이성과 감성 둘 다를 결합시키면서 관조적 방법을 강조한다. 앞서 본 플로티누스적 방법을 그가 택한 것 같다. 즉 자신의 체험이며 신비적 깨달음을 통해서 신을 말했다, 이 관조(깨달음)적 인식 방법은 이성을 최고로 이용하고 더 이상 이성이 오를 수 없을 때 비트겐슈타인의 표현처럼 그 사다리를 버리는 방법일까? 보나벤투라는 신 논증에 있어 지성을 통한 이성적 추론 방법에만 매달리지 않았다. 그는 주의주의 안에서, 그리스도교 신앙 안에서, 그리고 신비주의자로서 최고의 빛(신)을 더 우선적으로 말한 것이다. 그러나 그의 이론은 별로 체계적으로 다듬어지지 않은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따라서 현대의 논리적 실증주의 시각과는 너무나 거리가 멀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보나벤투라가 생각한 인간 정신(mens)은 신비가들이 "영혼의 영혼", "가장 갈고 닦인 영혼의 부분"을 지니고 있다. 이것을 아우구스티누스는 삼위일체적 구조와 하느님을 인식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는 이중적 이유 때문에 바로 이 멘스 안에 하느님의 모상이 있다고 본 것이다. 따라서 보나벤투라는 인간 존재는 신을 깨달을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인간 'Capax Dei'임을 매우 강조하였다.
3. 나가면서
'신의 문제'를 논한다는 것은 최첨단 가학시대에서 무가치하고 동 떨어진 논의일 수 있다. 더구나 생명공학 발달로 인한, 인간이 인간 생명까지 좌지우지하는 마당에서는 더욱 흥미로운 주제가 아닐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철학이 문제 삼는 근본문제 중, 신의 물음은 가장 긴급한 문제이기도 하다. 사실은 신의 학문인 신학(테오로기아) 개념 자체는 과학의 단일성을 주장한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사상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 이성만으로 인간과 신의 관계를 낱낱이 고찰한 아리스토텔레스는 철학에 의해 지혜에 도달할 수 있다고 보았으며, 신이 종점이고 목적이 되는 존재론적 신학을 전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아리스토텔레스적 학문의 방법론을 13세기에 받아들여 스콜라철학을 집대성한 토마스 아퀴나스는 덕택으로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은 그리스도교 신학의 일부가 되었으며 후대 신학의 발전을 도모했다는 것은 주지된 사실이다.
보나벤투라는 당시 시대적 조류에서 앞장 선 아리스토텔레스를 안전 흡수하지 못했다는 비판도 있지만 그의 학문이 근본 방향은 이론보다 그리스도교의 신을 직접 체험하고 살았던 프란치스코 삶과 플라톤- 아우구스티누스의 보수적 사상을 견지했다. 그리고 참된 철학자로서 신비가로서 보나벤투라는 플라톤이 말한 철학자의 몫 즉 신적인 것과 상종하며 "인간의 자질을 가능한 한 최대한으로 "신들의 마음에 들도록 까지 다듬어"(국가 501a-b) 내었고, 또 아우구스티누스의 참된 철학자란 "최고선인 신을 사랑하며 향유하는 자"(De civitate Dei VIII, 8)였다,
보나벤투라는 지성과 의지로 이루어진 영혼을 신에게 인도하였다. 이성의 빛만으로 갈수 있는 곳까지 갔지만 한계성을 발견하고 지성이 더 이상 나아가지 갈 수 없는 정서적 사랑의 절정이 있음을 깨닫는다. 그는 의지의 정서적 사랑이 지성을 능가함을 알았던 것이다. 그리고 관상을 통한 신앙의 열정 속에서 체험된 신을 『하느님께 나아가는 정신의 여정』이란 저서를 통해 오늘날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보나벤투라의 '관조적 신 이해'는 현대인들에게는 신을 이러 저러한 개념으로 인식하게 한 것이 아니라 신을 체험하도록 한 것에 한 몫을 하고 있다.
또한 13세기 파리대학교에 Facultas Theologica라는 명칭이 등장하면서 신학은 그리스도교 신앙에 대한 학문으로서의 개념을 가지게 되었는데 보나벤투라는 그리스도 안에서 계시된 신이 그리스도교 신학에서 이해되고 숙지되어야 할 유일한 대상임을 말하면서, 그리스도는 신앙의 기초, ,신앙의 완성자, 진실된 모든 교의의 원천, '그리스도 중심주의'를 주창하였다. 따라서 보나벤투라는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에 발견한 존재론적 신보다는 구체적이고 육화한 그리스도 안에서 신을 말하길 좋아했다. 끝으로 이성과 신앙의 괴리에서 신앙을 우위에 둔 보나벤투라는 『하느님께 나아가는 정신의 여정』 서두에 '빛의 아버지'를 부르며 도움을 청하는 구절은 현대의 신학자 카알 바르트의 말을 기억하게 한다. <하느님은 '전혀 다른 분'이기에 하느님 밖에 있는 어떠한 것으로도 신을 인식할 수 없다. '하느님으로부터 인간에게로 오는 길 뿐이다. 인간으로부터 하느님에게 가는 길은 단절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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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6.03.04
  • 저작시기20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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