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문화대혁명 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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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들어가며

Ⅱ 문화대혁명과 중국
1. 문화대혁명의 배경
2. 문화대혁명의 전개
3. 문화대혁명기의 경제
4. 문화대혁명기의 문화
5. 문화대혁명기의 대외관
6. 일화로 본 문화대혁명
7. 문화대혁명의 결과와 평

Ⅲ 맺음말

본문내용

기 3중전회로부터 변화된 문혁 인식이 보인다. 천안문 사건을 반혁명으로 인정한 결의를 과오로서 취소하고 팽덕회 등을 명예 회복시켰다. 중국의 구체제를 파괴하는 혁명의 이론방법으로서는 유효하였던 모택동의 이론이 경제건설의 이론 및 방법으로서는 실격이었다는 것을 인정하여 문혁을 결과적으로 부정하였고 진운과 호요방을 필두로 등소평을 지지하는 사람들을 요직에 배치시켰다. 1981년 6월의 11기 6중전회에서는 모택동 지도의 공로와 죄과에 대한 평가 11기 6중전회의가 열리던 해에 발표된 북한연구소,『북한』통권 제118호, 1981년 10월 의 권두언으로 양호민,「문혁에 대한 역사의 심판」이라는 글이 게재되었다. 이에 따르면 6중전회에서는 모택동이 1927년 정강산으로 탈출하여 1949년 10월 북경정권을 세울 때까지의 혁명업적은 높이 찬양하고 있다. 그러나 건국 후부터 친다면 그의 공은 1949년에서 55년까지의 전기 6년에 국한되고 있으며 1956년에서 76년까지의 후기 20년 동안은 과오와 죄상으로 가득찬 것으로 되어 있다.
, 문화대혁명을 전면적인 과오라고 인정하는 평가를 확정시켰다.
3) 우리가 바라본 문화대혁명
김원열 김원열, 「민중의 관점에서 바라본 문화대혁명 -평등 지향의 민중 혁명을 중심으로-」, 한국철학사상연구회『시대와 철학』, 2003
은 민중의 관점에서 문화대혁명을 긍정적으로 평가하였다. 문화대혁명이 중국 각지로 확대되면서 학생 중심의 홍위병 운동에서 노동자와 농민이 주체인 민중혁명으로 발전한 점, 민중이 당시 권력의 지배질서를 파괴하고 권력을 쟁취한 점, 문화대혁명 시기 평등 지향의 각종 정책이 수립된 점의 세 가지 측면에서 민중 중심의 끊임없는 혁명이며 노동자 및 농민을 포괄하는 민중 계급의 목적의식적인 사회적 실천을 통해 민중의 평등한 사회를 추구했던 민중 중심의 혁명이라고 파악하여 문혁 시기 중국공산당의 문혁 인식과 그 궤를 같이하고 있다.
반면에 석선(席宣), 김춘명(金春明) 席宣, 金春明 著,『문화대혁명사』, 나무와 숲, 2000 중의 제7장「10년재난 후의 고찰」 참고
은 모택동의 계속혁명이론은 좌경오류의 이론이며 문혁은 실제적으로 중국공산당의 지도를 없애 버리고 모택동사상의 지도만을 남겨 두었으며, 정치혼란, 국민경제 파괴, 인구조절 실패, 전문가 인력 상실, 좋은 전통의 파괴, 문예학술계의 침묵, 모택동 상징물 제작으로 인한 물자 낭비 등 혼란과 파괴와 재난만을 초래하였으므로 총괄하면 문혁은 정치혁명도, 문화혁명도, 사상혁명도 아닌 어떠한 의의에서도 혁명이 아닌 것이라고 평가하였다. 중국학자의 이러한 주장은 당의 평가에 따르는 측면도 물론 존재하겠지만 문혁을 직접 경험한 사람이기 때문에 더욱 현실성있게 받아들일 수도 있을 것이다.
완전히 대비되는 두 연구를 살펴보았다. 두 연구를 놓고 시비를 따질 수는 없을 것이다. 독자들의 개인적 경향에 따라 好惡의 감정을 가질 수 있을 것이고 어떠한 경우이든 그 평가를 통해 교훈을 얻을 수 있을 것이지만 과거의 답습이나 맹목적 부정은 경계해야할 태도인 것 같다.
Ⅲ 맺음말
지금까지 문화대혁명의 배경, 전개과정, 결과와 평가를 살펴보았다. 문혁은 두 노선의 권력투쟁, 정통 사회주의 국가의 확립, 모택동 개인숭배라는 원인으로 시작되었으며 문혁이 단행되는 10년의 기간동안 중국은 엄청난 혼란에 휩싸이게 되었다. 그 악영향은 심각한 것이었지만 극히 일부분의 긍정적 측면도 존재한다. 그러나 그 현상에 대한 평가는 극명한 논조의 대조를 보이는 두 연구를 통해 평가에 대한 시비는 논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마무리지어 보았다. 이로써 문화대혁명은 보는 사람마다 명과 암이 모두 존재하는 복잡한 시기임을 확인하였다.
수많은 책과 논문을 보았지만 그래도 풀리지 않는 문제는 시작부터 끝까지 유보해왔던 중국인이 모택동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느냐 하는 의문이다. 모택동은 길고 힘겨운 중국혁명의 과정을 지나 중화인민공화국을 건설함으로써 인민으로부터 신과 같은 존재로 숭배되었고 대약진으로 좌절을 겪긴 하지만 문혁을 통해 화려하게 재등장하고 모택동 개인숭배는 정점에 이른다. 같은 시기 모택동의 이론과 그 실행으로 중국과 중국인은 전에 없던 참상을 목도하는데 모택동 숭배는 중국인에게 완전히 내면화되었는지 아직까지도 모택동을 추앙하는 사람이 있으니 의아할 따름이다.
[참고문헌]
단행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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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화인민공화국 편, 이재선 역,『중국전사』, 학민사, 1988
寥蓋隆 편, 정석태 역,『중국공산당사』, 녹두, 1993
席宣, 金春明 著,『문화대혁명사』, 나무와 숲,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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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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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문학회,『중국인문과학』제25집, 200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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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 10월
김원열, 「민중의 관점에서 바라본 문화대혁명 -평등 지향의 민중 혁명을 중심으로-」,
한국철학사상연구회『시대와 철학』, 2003
목 차
Ⅰ 들어가며
Ⅱ 문화대혁명과 중국
1. 문화대혁명의 배경
2. 문화대혁명의 전개
3. 문화대혁명기의 경제
4. 문화대혁명기의 문화
5. 문화대혁명기의 대외관
6. 일화로 본 문화대혁명
7. 문화대혁명의 결과와 평
Ⅲ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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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6.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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