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독교교회사1.2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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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국기독교교회사1.2권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갑작스럽게 발생한 사건은 아니었다. 1934년 허버트 블레어 선교사는 세게에서 유랠르 찾을 수 없는 보수주의 나라 한국,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을 철저히 지키는 이 나라에 논쟁이 발생한다면 그것은 성경에 관한 논쟁일 것이라고 예측했었다. 그의 예견은 10년이 지난 1945년 현실로 나타났다. 이 논쟁의 중심에는 김재준과 박형룡이 자리 잡고 있었고, 조선신학교, 고려신학교, 장로회 신학교, 51인 조선신학생, 그리고 총회가 그 무대를 장식해 주었다.
해방이후 진행된 신학적 갈등으로 한국장로교회는 1950년대에 세 차례의 대분열을 경험해야 했다. 그리고 그 분열의 무대를 제공해 준 것은 조선신학교와 해방 이후 설립된 고려신학교와 장로회신학교였다. 그러나 이것은 장로교에 국한된 현상은 아니었다. 해방 후 감리교와 성결교도 장로교와 유사한 분열의 아픔을 겪어야 했다.
1952년 고려파가 신사참배문제로, 1953년 기장이 성경관 문제로 분립해 나간 후 한국장로교는 적어도 겉으로는 평온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외국에서 들려오는 이야기는 한국장로교가 가입해 있는 한국교회협의회의 모체 세계교회협의회가 신학적으로 정통적인 입장에서 이탈하여 세계의 신학조류를 따라 소위 새로운 노선으로 선회하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한국장로교는 1954년 8월 15일부터 31일까지 미국 일노이주 에반스톤에서 열린 제 2차 W.C.C. 총회에 명신홍과 김현정 두 사람을 대표로 파송하여 W.C.C의 신학적 입장과 성격을 정확히 파악한 후 보고해 줄 것을 요청했다. 장로교 외에도 감리교가 정식 대표를 파송했고 한국기독교연합회와 YMCA가 대표를 파송했다. 이 대회는 “세계의 희망은 그리스도이다”라는 주제로 전 세계 163개 개신교단 가운데 132교단과 헬라정교에서 파송한 1,242명의 대표들과 499명의 방청객을 포함, 2,400명이 참석한 가운데 에반스토의 노스웨스턴 대학에서 열렸다. 1948년 화란 암스테르담에서 열린 제1차 W.C.C 대회 이후 6년만에 열린 것이다.
진정한 신앙의 일치에 토대를 두지 않은 교회의 연합은 복음의 순수성을 희생시켜 교회의 연합이 종교연합으로 흐를 위험이 항상 내재되어 왔다. 그렇다고 어떤 형태라고 할지라도 교회의 일치를 무시한 교권주의에 의한 분열이 정당화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신앙의 순수성 파괴 못지않게 교회의 일치를 파괴하는 행위는 교회가 경계해야 할 또 다른 기독교의 무서운 적이다. 기독교회는 신앙의 순수성을 지키며 동시에 교회의 일치를 존속시켜 가야 할 이중적인 책임을 부여 받았다. 이것은 1960년대 이후 정체성 파악의 시대로 돌입하는 한국교회가 감당해야 할 몫이다.
해방 후 장로교만 분열의 아픔을 겪은 것은 아니다. 한국의 주류교단으로 인정받고 있는 감리교, 성결교, 침례교 모두가 대립과 분열의 아픔을 겪었던 것이다. 이 교단들은 모두 재건과 대립과 분열이라는 수순을 겪고 오늘에 이른 것이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들은 시대의 상황이 크게 작용한 것은 사실이지만 해방 후 신사참배 문제와 신학적인 문제와 정체성문제와 W.C.C. 에큐메니컬 문제, 그리고 주류와 비주류의 교권 문제에 직면했을 때마다 겸손히 엎드려 회개하고 낮아진 자세로 자신을 돌아보며 잘못을 서로 인정하고 화해하려는 노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일제의 탄압과 압박 속에 형극의 십자가, 어두운 터널을 통과했던 한국교회는 해방을 맞으면서 일제와 타협했던 이들과 끝까지 신앙을 지키려고 했던 이들, 교권주의자들과 반교권주의자들, 신앙의 순수성을 지키려고 하는 이들과 일치를 강조하는 자들 사이에 눈에 띄는 대립과 갈등이 표출되기 시작했다. 정도의 차이는 있었지만 이 점에 있어서는 감리교, 성결교, 침례교 모두 예외가 아니었다.
역사는 우연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역사의 큰 수레를 돌리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이다. 그리고 인간을 그것의 도구로 사용하신다. 전혀 복음의 빛이 들어오지 않을 것 같았던 한국에 복음이 들어오고, 싹이 날 기미가 전혀 없는 척박한 환경임에도 불구하고 강력한 성려의 능력으로 은혜를 부어주신 하나님. 모질게 닥쳐오는 외부의 침략과 핍박 가운데서도 신앙으로 견디며 그 암흑의 시간을 기회의 시간으로 선하게 바꾸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날 수 있었다. 한국의 근대사를 말하면서 기독교를 언급하지 않는 것은 오히려 역사를 외면하는 것과 동일하다. 한국의 민족중의와 민주주의를 이끌었던 것, 그리고 애끓는 마음으로 해방을 외쳤던 모든 역사의 사건들은 살아계신 하나님을 바라보는 신앙에서 나온 것이다. 특별히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는 것은 쏟아져 들어오는 신학의 여러 사조들 가운데 성경만을 붙들고 자유주의에 굴복하지 않은 것이다. 이것은 정말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이다.
역사 가운데 일하시는 하나님을 보면서 소망을 갖는 것은 바른 신학을 유지하는 교단만이 건제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과연 무엇을 우리에게 보여주는가? 바른 신학만이 하나님의 일하시는 도구가 될 수 있으며 하나님이 기뻐하신다는 것이다. 개혁주의 신앙을 철저히 고수하는 총신의 신학이 얼마나 건전하며 궁극적으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다는 것을 깨달았다. 바른 신학의 교단만이 그 명맥을 유지하며 신앙의 순결성을 지키는 역사적 사실을 보며 다시 한번 어깨가 무거워지짐을 느낀다.
한편 신앙을 지키는 일에 적극적인만큼 실천적인 면은 과연 하나님께서 기뻐하실까하는 반성을 해본다. 소위 보수신학이라는 교단의 약점이 바로 실천적인 문제이다. 실천이 없다면 바른 신학은 죽은 것과 방불하다. 세사의 기준으로 돌아가는 이 땅 가운데 오직 말씀을 붙들고 승부하는 실천적인 모습이 있어야 한다. 사회적인 책임에 대하여 뒷짐을 지고 있을 수는 없다. 세상의 빛이라고 하신 그리스도의 말씀처럼 사회적 책임에 민감해야 하며 소홀히 해서는 결코 안 된다.
또한 연합활동이 요구된다. 수없이 분열된 교단의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의 마음도 아프지 않겠는가? 그러나 연합을 위한 연합은 결코 안 된다. 순결성을 지키지 못하는 연합은 안 된는 것이다. 역사 가운데 일하시는 하나님의 열심이 본인으로 하여금 소망을 갖게 하며 다시 한번 창조주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겸손히 기도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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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18페이지
  • 등록일2006.03.30
  • 저작시기2005.5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34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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