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사마천의 사기와 사기열전의 저술배경
2.사기열전 요약
제 1 백이(伯夷) 열전
제 2 관중, 안영 열전
제 3 노자(老子), 한비자 열전
제 7 중니(仲尼) 제자 열전
제 8 상군(商君) 열전
제 10 장 장의(張儀)열전
제 11 저리자, 감무 열전
제 13 백기, 왕전 열전
제 14 맹자, 순경 열전
제 15 맹상군 열전
제 16 평원군 열전
제 17 위공자 열전
제 18 춘신군 열전
제 20 악의 열전
3.요약부분에 대한 독후감
제 1 백이(伯夷) 열전
제 15 맹상군 열전
2.사기열전 요약
제 1 백이(伯夷) 열전
제 2 관중, 안영 열전
제 3 노자(老子), 한비자 열전
제 7 중니(仲尼) 제자 열전
제 8 상군(商君) 열전
제 10 장 장의(張儀)열전
제 11 저리자, 감무 열전
제 13 백기, 왕전 열전
제 14 맹자, 순경 열전
제 15 맹상군 열전
제 16 평원군 열전
제 17 위공자 열전
제 18 춘신군 열전
제 20 악의 열전
3.요약부분에 대한 독후감
제 1 백이(伯夷) 열전
제 15 맹상군 열전
본문내용
시켜주는 곳이다. 다시말해 큰 것 한몫 잡아서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기 위한 곳인 것이다. 그런데 미국의 가치관은 돈을 벌면 사회에 다시 환원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 미국적 가치관으로 보면 미국에 와서 돈을 벌어 놓고서는 사회에 다시 환원하지 않고 모은 돈을 몽땅 가져가는 몰염치한 사람들인 것이다. 우리 민족이 돈에 대한 잘못된 가치관을 가진 이유는 자본주의가 아직 정착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맹상군의 아버지가 한 실수를 우리 민족은 자주 한다. 재산을 모아서 누군지도 모르는 훗날의 자손에게 물려주는 것 보다 사회에 환원하는 것이 자신을 위해서도 또한 사회를 위해서도 좋은 일 일 것이다. 얼마전 상속세를 안내기 위해 편법을 동원한 재벌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법을 어긴 것은 아니지만 그러한 방법으로 경영을 한다면 그러한 기업을 어찌 믿을 수 있겠는가? 자본주의가 처음 시작되었을 때 기업들은 사회에 대한 관심을 두지 않았다. 기업이란 최고의 이윤을 추구하기 위해 존재하고 그것이 최고의 가치였다. 그러나 자본주의가 고도화되면서 기업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사회도 같이 성장해 야만 한다는 사실을 기업들은 깨닫기 시작했다. 기업이 소비자들에게 무엇인가를 팔아서 이윤을 올린다면 구매력을 갖춘 소비자들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요즘 국내기업들이 벌이는 문화 사업들도 이러한 맥락에서 같이 하는 것이다. 소비자들의 문화적 수준 향상도 구매력을 높이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기업이 클래식 음반을 주로 파는 사업을 한다면 클래식 음반을 살수 있는 구매력을 갖춘 소비자를 늘려야 한다. 그렇다면 그 기업은 클래식을 이해하고 음반을 구입할 수 있는 사람들을 늘려야 한다. 따라서 클래식 음악을 홍보하고 문화사업을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클래식 음악을 많이 들려주는데 힘써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돈을 벌면 자기가 잘나서 번 줄 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굳이 제로 섬 (ZERO-SUM)을 들먹이고 싶지는 않다. 사회란 자연의 질서와 같다. 만약 청소부가 존재치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사회는 쓰레기로 넘쳐날 것이다. 그렇다면 그 사회는 제대로 유지될 수 없을 것이다. 제대로 유지되지 않는 사회에서 어떻게 돈을 번단 말인가? 따라서 자기가 돈을 번 것은 제자리를 지켜준 많은 사람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사실을 우리는 인식해야 한다. 그러므로 돈을 벌면 사회에 환원을 시켜줘야 하는 것이다.
다시 맹상군 이야기로 돌아가자. 맹상군은 앞에서 말한바와 같이 많은 식객들을 거느리고 있었다. 그 중에 성대모사 잘하는 사람과 도둑도 있었는데 사람들은 그들의 재주를 하찮은 것으로 얘기했다. 후일 맹상군은 진나라를 방문하게 된다. 그 곳에서 그는 소왕에 의해서 죽을 고비를 맞게 되는데 살기 위한 방법으로 소왕의 애첩을 이용하기로 한다. 소왕의 애첩에게 이야기를 해보니 흰여우 가죽을 바치라고 하였다. 그러나 진나라에 올 때 그 여우 가죽을 소왕에게 선물한 뒤였다. 맹상군은 데리고 온 식객들과 함께 의논을 하였으나 뾰족한 수가 없었다. 그 때 도둑이 말했다. "제가 소왕에게 있는 흰여우 가죽을 가져오겠습니다." 그러고는 자신의 특기인 도둑질 솜씨를 발휘하여 가죽을 가져온다. 뇌물을 이용하여 맹상군은 풀려나게 된다. 맹상군과 그 일행은 그 즉시 제나라로 돌아가기 시작한다. 애첩에 의해 실수를 했다는 것을 안 소왕은 즉시 추격병을 보낸다. 제나라로 돌아가던 맹상군 일행은 함곡관에 도달한다. 그 당시 관문은 밤에는 문을 닫았는데 마침 도착한 시간이 한 밤중이었다.
추격병은 쫓아오고 관문이 열리려면 아침이 되어야 하는 진퇴양난의 상황이었다. 이 때 성대모사를 잘하는 사람이 나와서 닭 울음소리를 내었다. 그 함곡관 내에 있던 닭들이 일제 히 울어대기 시작했고 아침이 된 줄 알고 관문을 열 수 있었다. 이 사건을 일컬어 계명구도(鷄鳴狗盜)라고 한다. 이 고사에서 우리가 배울 점은 어떤 재주든지 불필요한 재주는 없다는 것이다.
어느 시대건 정치에는 한가지 변하지 않는 게 있다. 바로 지지세력이 있어야 정권을 유지한다는 것이다. 과거로 말하자면 민심을 잡는 것이고 요즘말로 하자면 지지도를 높게 유지하는 것이다. 조선 4대 임금이었던 세종은 조선 최고의 성군으로 불린다. 그가 실시한 많은 정책들이나 제도들은 지배층의 입장에서 실시된 것이긴 하지만 조선 시대를 통틀어 가장 민본정치를 했음은 틀림없다. 그러나 세종이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피비린내 나는 정권다툼에서 이겨 왕에 오른 그의 아버지 태종의 뒷받침이 있었다. 고려말 공민왕도 나라를 되살리고 민본주의 정치를 하려고 했다. 그러나 기존 수구 세력들의 저항으로 실패하고 암살되고 만다. 그러한 반면 태종은 세종이 성군이 되는데 필요한 모든 것을 마련해 주었다. 군사적 힘, 경제력, 각종 제도 등. 그 중에서도 공신세력과 외척 세력들을 숙청한 것이 세종이 성군이 되는데 가장 큰 힘이 되었다. 중국역사에서 또는 국사에서 건국 후에 나라가 안정되면 숙청이 시작되는 이유는 권력 분산으로 인한 통치력 약화이다. 한나라는 해하성에서 초를 깨뜨리고 천하를 제패한다. 한나라가 천하를 제패하는데 가장 큰 공을 세운 사람은 소하와 장량 그리고 한신이다. 소하는 내정에 치중해서 유방이 싸움을 하는데 필요한 경제력을 만들어줬다. 장량은 모사에 가까운 인물이었는데 정치와 외교 쪽에서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다. 한신은 유방이 천하를 제패하는데 가장 직접적으로 도운 사람이었다. 대장군에 올라 전투를 진두지휘해서 초를 깨뜨렸다. 그러나 천하를 제패하고 나자 한신의 재주가 너무나 두려웠던 유방으로서는 한신을 제거해야만 했다. 이와 비슷하게 이방원은 정도전과의 숙명의 다툼에서 이숙번을 얻는데 성공하고 이숙번은 1, 2차 왕자의 난에서 활약 하면서 이방원이 왕에 오르는데 가장 역할을 한다. 그러나 후일 이숙번도 태종에 의해 숙청되고 만다. 이숙번뿐 아니라 많은 공신들과 자신의 처남과 장인까지 숙청하는 냉혹함을 보여준다. 그리고 호패법실시, 사병폐지등과 같은 개혁조치를 실행함으로써 세종이 정책을 펴는데 아주 쉽도록 만들어 줬다. 세종은 반대세력이 없었기에 자기가 생각한 바대로 정책을 추진할 수 있었던 것이다.
다시 맹상군 이야기로 돌아가자. 맹상군은 앞에서 말한바와 같이 많은 식객들을 거느리고 있었다. 그 중에 성대모사 잘하는 사람과 도둑도 있었는데 사람들은 그들의 재주를 하찮은 것으로 얘기했다. 후일 맹상군은 진나라를 방문하게 된다. 그 곳에서 그는 소왕에 의해서 죽을 고비를 맞게 되는데 살기 위한 방법으로 소왕의 애첩을 이용하기로 한다. 소왕의 애첩에게 이야기를 해보니 흰여우 가죽을 바치라고 하였다. 그러나 진나라에 올 때 그 여우 가죽을 소왕에게 선물한 뒤였다. 맹상군은 데리고 온 식객들과 함께 의논을 하였으나 뾰족한 수가 없었다. 그 때 도둑이 말했다. "제가 소왕에게 있는 흰여우 가죽을 가져오겠습니다." 그러고는 자신의 특기인 도둑질 솜씨를 발휘하여 가죽을 가져온다. 뇌물을 이용하여 맹상군은 풀려나게 된다. 맹상군과 그 일행은 그 즉시 제나라로 돌아가기 시작한다. 애첩에 의해 실수를 했다는 것을 안 소왕은 즉시 추격병을 보낸다. 제나라로 돌아가던 맹상군 일행은 함곡관에 도달한다. 그 당시 관문은 밤에는 문을 닫았는데 마침 도착한 시간이 한 밤중이었다.
추격병은 쫓아오고 관문이 열리려면 아침이 되어야 하는 진퇴양난의 상황이었다. 이 때 성대모사를 잘하는 사람이 나와서 닭 울음소리를 내었다. 그 함곡관 내에 있던 닭들이 일제 히 울어대기 시작했고 아침이 된 줄 알고 관문을 열 수 있었다. 이 사건을 일컬어 계명구도(鷄鳴狗盜)라고 한다. 이 고사에서 우리가 배울 점은 어떤 재주든지 불필요한 재주는 없다는 것이다.
어느 시대건 정치에는 한가지 변하지 않는 게 있다. 바로 지지세력이 있어야 정권을 유지한다는 것이다. 과거로 말하자면 민심을 잡는 것이고 요즘말로 하자면 지지도를 높게 유지하는 것이다. 조선 4대 임금이었던 세종은 조선 최고의 성군으로 불린다. 그가 실시한 많은 정책들이나 제도들은 지배층의 입장에서 실시된 것이긴 하지만 조선 시대를 통틀어 가장 민본정치를 했음은 틀림없다. 그러나 세종이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피비린내 나는 정권다툼에서 이겨 왕에 오른 그의 아버지 태종의 뒷받침이 있었다. 고려말 공민왕도 나라를 되살리고 민본주의 정치를 하려고 했다. 그러나 기존 수구 세력들의 저항으로 실패하고 암살되고 만다. 그러한 반면 태종은 세종이 성군이 되는데 필요한 모든 것을 마련해 주었다. 군사적 힘, 경제력, 각종 제도 등. 그 중에서도 공신세력과 외척 세력들을 숙청한 것이 세종이 성군이 되는데 가장 큰 힘이 되었다. 중국역사에서 또는 국사에서 건국 후에 나라가 안정되면 숙청이 시작되는 이유는 권력 분산으로 인한 통치력 약화이다. 한나라는 해하성에서 초를 깨뜨리고 천하를 제패한다. 한나라가 천하를 제패하는데 가장 큰 공을 세운 사람은 소하와 장량 그리고 한신이다. 소하는 내정에 치중해서 유방이 싸움을 하는데 필요한 경제력을 만들어줬다. 장량은 모사에 가까운 인물이었는데 정치와 외교 쪽에서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다. 한신은 유방이 천하를 제패하는데 가장 직접적으로 도운 사람이었다. 대장군에 올라 전투를 진두지휘해서 초를 깨뜨렸다. 그러나 천하를 제패하고 나자 한신의 재주가 너무나 두려웠던 유방으로서는 한신을 제거해야만 했다. 이와 비슷하게 이방원은 정도전과의 숙명의 다툼에서 이숙번을 얻는데 성공하고 이숙번은 1, 2차 왕자의 난에서 활약 하면서 이방원이 왕에 오르는데 가장 역할을 한다. 그러나 후일 이숙번도 태종에 의해 숙청되고 만다. 이숙번뿐 아니라 많은 공신들과 자신의 처남과 장인까지 숙청하는 냉혹함을 보여준다. 그리고 호패법실시, 사병폐지등과 같은 개혁조치를 실행함으로써 세종이 정책을 펴는데 아주 쉽도록 만들어 줬다. 세종은 반대세력이 없었기에 자기가 생각한 바대로 정책을 추진할 수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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