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측면에서 본 자본축적의 영국, 일본, 우리나라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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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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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측면에서 본 자본축적의 영국, 일본, 우리나라 비교

서론
역사적 측면에서 본 자본축적

본론
1. 영국의 자본축적 과정
2. 일본의 자본축적 과정
3. 한국의 자본축적 과정

결론
영국, 일본, 대한민국의 자본축적 종합비교

본문내용

아 내리는 한편 그 재원을 정부가 저축하는 방법이다. 직접세는 국민의 소득에 과세하는 것이므로 전가되지 않으며 따라서 물가를 올리지 않는 대신 조세저항이 크다. 그뿐 아니라 직접세는 누진세여서 저축 률이 높은 고소득자일수록 부담이 크기 때문에 그 소득을 정부가 가져온다 하더라도 저축 증대효과는 별로 R대하기 어렵다. 이와 달리 간접세는 소비에 과세하는 것이므로 저소득층 일수록 담세율이 높아지는 역진세이며 물가에 전가된다. 다라서 간접세를 많이 거둬들이 면 소득의 공평분배는 역행하고 인플레를 우발하는 단점은 있지만 소비를 억제하고 저축을 늘리는 효과가 클 뿐 아니라 조세저항도 작다는 장점이 있다.
내자동원 방식에 있어서 영국이나 일본의 원시축적과정은 영국이나 일본의 경우에는 내자 동원의 원천이 되는 대상이 사실상 농업부문에 국한되었던 데 대해서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그 대상이 국민경제의 소비계층 전체였다는 점이다.
또 이러한 내자동원 방식은 거의 전적으로 정부주도 하에서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4) 국내저축과 수출의 역할
우리나라의 국내저축이 주로 강제저축과 수출에 위한 저축으로 이루어졌다고 말했거니와 자본축적에 있어서 수출의 역할은 1960년대 이후에 비로소 나타난 것이다.
뒤늦게 공업화과정에 들어갈수록 자본축적수단으로서 수출의 역할은 더욱 크고 또 직접적 이라는 사실은 이미 지적한 바 있지만 그러나 이러한 수출의 역할은 어디까지나 국제경쟁력을 가지는 수출산업이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1950년대는 투자재부문은 말할 것도 없고 소비재부문에서도 초과수요로 일관되어 왔으며 따라서 수출액은 매우 적었다.
수출이 1960년대 이후의 내자동원을 이끌었다면 어떤 경로를 통해서 인가? 수출이 국내저축을 증대시키는 데 있어서는 소득승수를 통하여 잠재저축을 늘리는 역할과 투자재 공급기능을 통하여 잠재저축을 투자로 연결시키는 두 R지 역할이 있다함은 이미 말한 바 있다. 한국의 경우 수출은 두 가지 역할을 다 같이 수행하였다. 그리하여 경제 근대화과정에 있어서 수출의 역할은 영국에서보다도 일본에서, 그리고 일본에서보다도 한국에서 훨씬 더 컸던 것이다.
결론
자본축적모형의 종합비교
선두주자형(영국)
중간주자형(일본)
낙후주자형(한국)
공업화 이전의 원시 축적유무
충분
불충분
없었음
농업개발이 공업화에 선행 여부
선행
병행
후행
자본축적에 있어서 무역의 역할
소극적
적극적
더욱 적극적
국내자본의 동원방법
자발적 저축
자발적 저축과 강제저축의 병행
강제저축
정부의 역할
소극적
적극적
더욱 적극적
외자도입 여부
국내자본수출
자본의 자급자족
외자도입
공업화 초기의 투자율
낮음(6%선)
높음(9%선)
더 높음(20%선)
공업화 초기의 1인당 소득증가율
낮음(1~2%)
높음(2~3%)
더 높음(7%)
① 영국의 경우에는 산업화 이전에 이미 충분한 원시축적이 존재하였으며 일본의 경우에도 존재하였지만 불충분하였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에는 존재하지 않았으며 따라서 원시축적이 없는 상태에서 공업화에 들어갔다.
② 영국의 경우에는 농업혁명이 공업화에 선행하였으나 일본에서는 병해되었으며, 한국의 경우에는 후행하여 농업성장은 공업화의 결과 또는 부산물로서 이해된다.
③ 자본축적에 있어서 무역의 역할은 일본이 영국보다 적극적이었으며 한국은 일본보다도 더 적극적이었다.
④ 국내자본의 동원방법에 있어서 영국에서는 충분한 원시축적이 있었으므로 강제저축에 의존할 필요가 없었고, 원시축적이 불충분했던 일본에서는 자발적 저축과 강제저축이 병용되었으며, 원시축적이 없었던 한국에서는 주로 강제저축에 의존하였다.
⑤ 정부의 역할은 영국보다 일본이, 그리고 일본보다도 우리나라의 경우가 더 적극적이며 포괄적이었다. 그리하여 개발 초기의 자본 동원은 영국의 경우에는 민간기업, 일본의 경우에는 정부와 은행,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정부가 각각 주도하였다.
⑥ 영국은 처음부터 자본을 수출했고 일본의 경우에는 수출도 수입도 하지 않고 자급자족했으며, 우리나라는 막대한 외자를 도입하였다.
⑦ 공업화 초기단계의 투자율과 1인당 소득증가율을 보면 영국보다 일본이 높았고 일본보다도 한국이 높았다. 투자율은 영국이 6%선, 일본이 9%선이었던 데 비해서 ks국은 20%선이었으며 1인당 국민소득의 증가율에 있어서도 영국이 1~2%, 일본이 2~3%인 데 대하여 한국은 7&수준이었다. 이러한 사실은 뒤늦게 공업화에 들어갈수록 일단 공업화가 시작되면 그 속도는 더욱 폭발적이라고 하는 거센크론의 주장을 뒷받침한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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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6.05.15
  • 저작시기2006.3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349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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