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체시와 근체시의 비교와 두보시의 정형성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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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들어가며

2. 고체시와 근체시의 비교ㆍ대조

3. 두보시에서 나타난 정형성

4. ‘시선’ 이백과 ‘시사’ 두보의 비교

5. 두보가 우리나라 시단에 미친 영향

6. 맺음말

◇ 참고자료

본문내용

그 대신 고시라고 해도 두보의 칠언가행은 평판이 좋다. 이백은 절구에는 뛰어났지만 조금 시형이 큰 율시나 배율은 매우 고시적이며, 고시로도 근체시로도 귀결짓기 어려운 것이 많다.
5. 두보가 우리나라 시단에 미친 영향
두보의 시가 우리나라에 알려진 것은 통일신라 시기부터라고 여겨진다. 통일 신라 시대에 많은 유학생을 당나라에 파견하였는데, 이 유학생들이 세련된 당나라의 시들을 우리나라에 소개하였다. 그 이후 고려 중엽부터는 두시가 널리 읽히고, 조선에 들어와서는 숭유척불의 국시에 알맞은 두보의 시가 성행하게 되었다. 더욱이 이러한 성행은 당대의 시인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다. 훈민정음이 반포된 후 여러 분야의 한문 서적들이 연이어 번역되면서 문학 서적인 시집의 번역도 활발히 진행되었다. 당시의 한시 경향과 달랐던 두보의 시가 한글로 번역된 것은 당시 민족 정서상으로나 국문학사적으로도 큰 의의를 가진다. 약 1400여 편의 두보의 시가 현존하고 있으며, 유가적 성향이 강했던 까닭에 이후 유교사상을 중시했던 우리나라의 시단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 것이다.
고려시인들의 시작을 집대성한 《동문선(東文選)》에 채록된 작품을 조사해보면 근체시의 작품수가 고체시의 약 5배 정도 된다. 또한 근체시 중에서도 칠언율시가 오언율시보다 3배 정도 많다. 또한 이것은 두보의 경우, 근체가 고체시의 4배 정도 이고, 근체시 중에서도 칠언율시는 오언율시보다 7배나 될 뿐만 아니라, 두보 전 작품의 반을 점유하고 있다. 이러한 사실을 통해 두보가 칠언율시를 가장 좋아했음을 알 수 있고, 두보의 이러한 경향이 고려시대 시인들에게서도 발견할 수 있다. 즉, 《동문선(東文選)》에 수록된 고려시인들의 작품 중 칠언율시가 거의 반을 점령하고 있다는 사실이 바로 두보의 칠언율시 기호풍을 그들이 배운 것이라 생각할 수 있다.
고려 중엽의 시인 정지상과 이인로의 시작에서 처음 두보의 그림자를 발견할 수 있었고, 최자를 정점으로 하여 고려 말엽에는 ‘두보의 시 수용 홍수시대’를 형성하였다.
여기에서는 우리나라 시 중에 두보의 영향을 받은 작품을 살펴보겠는데 그 중에서도 시의 형식면을 중심으로 살펴보도록 하겠다.
고려의 목은(牧隱) 이색은 시형이 다양하여 절구와 율시 모두 많이 지었는데 특히 율시로는 오언율시, 칠언율시의 형식으로 많이 지어졌다. 오언율시는 1,188수, 칠언율시는 1,663수로 칠언율시의 형식을 제일 많이 지었음을 알 수 있다. 이를 통해서도 이색은 두보의 칠언율시를 좋아했던 성향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겠다. 이색의 많은 칠언율시 중에 한 편을 선택해서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겠다.
<東 山>
- 이 색 (李 嗇)
東山高頂立多時 동산 높은 마루에 오래도록 서 있으니
○○○∨∨○◎
思入鴻蒙自不知 생각이 몽롱해짐을 스스로 모르겠네
○∨○○∨∨◎
飛鳥片雲俱渺 나르는 새와 조각구름들이 모두 아득하고
○∨∨○○∨∨
連岡斷壟自遙 연한 메뿌리와 끊어진 언덕 모두 꾸불꾸불 하네
○○∨∨∨○○
秋風杜老破芽屋 가을 바람에 두보는 초가집 무너졌고
○○∨∨○○∨
落日山公倒接籬 떨어지는 해에 산공은 두건을 거꾸로 썼네
∨∨○○∨∨◎
畝忘君非我志 밭두둑에서 임금 잊는 것 내 뜻이 아니니
∨∨∨○○∨∨
更將餘力念安危 다시 남은 힘 가져 안위를 생각하리.
○○∨∨∨○◎
(○:평, ∨:측, ◎:운)
-> 이 시는 목은 이색의 시로, 형식은 근체시의 한 형식인 칠언율시의 형태이고, 운은 ‘i’로 보았다(時, 知, 籬, 危). 그러나 압운이 되어야 할 4번째 구의 마지막 글자는 ‘遙(요)’로 운에 맞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아마도 칠언율시의 형식을 완전히 따르지 못한 것이거나, 예전 발음과 현재 발음의 차이에서 생긴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평측법은 평기법을 따랐다.
이 외에도 우리나라의 옛 시인들(물론 몇 몇 현대 시인들도 있지만)은 두보의 영향을 많이 받았음을 여러 자료를 통해 알 수 있다. 앞서 말한 시의 형식뿐만 아니라 시구, 시어 등에서도 두보의 그림자를 엿볼 수 있다. 예를 들어, 고려시대의 임유정은 집구 작시법을 사용한 인물인데, 그가 쓴 율시 41수 중에서 두보의 시구는 무려 10구나 된다. 그리고 앞에서 설명한 이색의 시의 경련과 미련은 두보의 ‘茅屋爲秋風所破歌’라는 노래에서 끌어온 것이고, 마지막 구는 우국의 심정을 잘 드러내는 두보를 좇은 것이라 할 수 있다. 고려시인들은 두보의 이러한 시작에서뿐만 아니라, 그의 인간성에서도 많은 감화와 암시를 받아서 자신의 시세계를 창조하기도 하였다. 예를 들어, 이규보는 두보의 ‘嗜酒詩句’에서 촉발하여 <白酒詩>한 수와 병서를 남겼다.
6. 맺음말
지금까지 당시이전의 형식인 고체시와 당대에 큰 발전을 이룬 근체시에 대하여 알아보았다. 고체시는 시의 형식에 있어서 엄격한 제약이 없지만 그에 비해 근체시는 구법, 평측, 대우, 용운에 있어서 형식상 수많은 제약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우리는 고체시와 근체시를 비교하면서 근체시의 정형성에 대해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시를 한 수 지으면서 몇 가지가 아닌 수십가지의 규칙에 따라 자신의 의견을 정확히 전달하는 시인들을 보면서 그들의 뛰어남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참고문헌
교재- <중국문학입문> 김장환, 학고방
<중국시의 창작과 번역> 김파, 한국문학사
<당시학의 이해> 천뽀하이 지음 이종진 옮김, 사람과 책
<당시개설 > 오가와타마끼 지음 심경호 옮김, 이회
<초당시와 성당시 연구 > 류성준, 국학자료원
<당대 칠언율시 연구 > 김준연, 역락
<이백 두보를 만나다> 다카시마 도시오 지음, 심산출판사
<韓中詩의 比較文學的硏究> 이창룡, 일지사
<牧隱의 漢詩硏究> 조용제, 고려대학교 교육대학원
웹사이트-
http://hanshi.com.ne.kr/kyukryul.htm
http://www.andongkwon.pe.kr/adboard
http://blog.naver.com/drunkentiger
*목차
1. 들어가며
2. 고체시와 근체시의 비교ㆍ대조
3. 두보시에서 나타난 정형성
4. ‘시선’ 이백과 ‘시사’ 두보의 비교
5. 두보가 우리나라 시단에 미친 영향
6. 맺음말
◇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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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6.05.19
  • 저작시기200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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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3500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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