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서론
Ⅱ. 본론
1. 고구려노래
1) 원문 살펴보기
2) 고려사 악지에 남아있는 고구려 노래
3) 고구려 노래에 대한 고찰
2. 서동요
1) 들어가기
2) 내용 살펴보기
① 서동요 해석
② 배경설화
③ 서동(薯童) 인물에 대하여
④ 서동요와 관련된 쟁점들
▶ ‘서동’ 의 출생신분에 관해
▶ 서동이 설화적 인물이라는 견해에 관해
▶ 서동요는 백제 무왕과 신라 선화공주의 러브스토리가 맞을까
3) 마무리
3. 풍요
1) 들어가기
2) 내용 살펴보기
① 풍요 해석
② 배경설화
③ 풍요의 의미 해석
④ 풍요에 대한 의견차이
▶ 내용 해독
▶ 풍요의 성격 문제
3) 마무리
Ⅲ. 결론
Ⅱ. 본론
1. 고구려노래
1) 원문 살펴보기
2) 고려사 악지에 남아있는 고구려 노래
3) 고구려 노래에 대한 고찰
2. 서동요
1) 들어가기
2) 내용 살펴보기
① 서동요 해석
② 배경설화
③ 서동(薯童) 인물에 대하여
④ 서동요와 관련된 쟁점들
▶ ‘서동’ 의 출생신분에 관해
▶ 서동이 설화적 인물이라는 견해에 관해
▶ 서동요는 백제 무왕과 신라 선화공주의 러브스토리가 맞을까
3) 마무리
3. 풍요
1) 들어가기
2) 내용 살펴보기
① 풍요 해석
② 배경설화
③ 풍요의 의미 해석
④ 풍요에 대한 의견차이
▶ 내용 해독
▶ 풍요의 성격 문제
3) 마무리
Ⅲ. 결론
본문내용
현이 되어 諷의 기능을 수행하게 될 것이다.
서정적 자아는 "우리(의내)로", "오다"와 "셔럽다라"의 반복에 담겨 있는 탄식적 분위기와 "功德닷까라"의 반어적 표현에 숨겨진 <뒤틀림의 感情>, 이것이 곧 이 노래의 집단적 정서의 내용이라 하겠다. 그래서 이것은 단순한 민요이거나, 불찬적(佛讚的) 불표가요이기보다는 당시 요역에 시달리는 피지배 노역계층이 집단적 감정을 은연중에 토로한 "풍요"로 보여진다.
④ 풍요에 대한 의견차이
내용 해독
대부분의 학자들의 의견이 별다른 논란 없이 일치하는데 반해 정열모의 것이 독특하여 소개하고자 한다.
'래여(來如)' : 양주동, 홍기문, 김완진 등은 모두 오다, 오나, 오라 등으로 비슷한 뜻으로 풀고 있음. 정열모만 '오료'로 독특하게 해독.
'애반다라(哀反多羅)' : '애돌 하나'로 읽어서 서러움이 많다 로 해독. 의미상 다른 이들의 해독과 비슷하지만 해독하는 방법이 특이한데 '애돌 하이'로 읽어서 문장의 끊음과 해독상의 특징을 보여줌.
'도양(徒良)' : 양주동, 홍기문, 오구라 등은 '이도양(矣徒良)'을 하나로 보아 '의내여'로 풀 이한 반면, 김완진은 '다의(多矣)'와 '도양(徒良)'을 끊어서 중생의 무리로 해 석한 점이 특이.
풍요의 성격 문제
공통적으로 민요라는 점에서는 모두 다 의견의 일치를 보이고 있으나, 그 성격에 있어서 의견을 달리하고 있는데 노동요로만 보는 견해와 향찬적, 불교적 민요로 파악하는 것으로 나눌 수 있다. 그 의견 차이를 살펴보면 전자의 의견은 "이제까지 서민들이 절구질을 함에 다 풍요를 노래하는데 그것은 영묘사의 부처를 만들 때 진흙을 나르면서 부른 데서 비롯되었다"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며 후자의 견해는 "영묘사의 丈六佛을 소조할 때 모든 土女들이 진흙을 다투어 나르면서 풍요를 불렀다"에 초점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일연의 기술 가운데 양지가 丈六佛을 지음에 온 성중의 남녀가 자발적으로 진흙을 다투어 날랐다고 하여 그것을 양지와 결부시켜 놓고 있다. 글의 흐름으로 보아 그것은 양지의 神異
한 행적과 神妙하여 비할 데 없는 재주 때문인 것으로 표현해 주고 있다. 그래서 온 성중의 남녀가 "다투어 진흙을 나른" 것은 불상을 지음에만 필요한 것이었던 것으로 보이며, 절을 세우는 큰 역사에 참여한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그러면 일연은 왜 "지금도 서민들이 절구질을 할 때 모두 이 노래를 부르는데, 대체로 여기서 시작된 것이다"고 하였겠는가?
고려에서도 신라 이상으로 불교가 융성했고, 사찰의 규모는 사람의 수로나 경제적으로 확대되었으며, 그래서 절의 노비와 같은 존재들이 사찰에서 소비될 식량의 도정 작업을 했을 것이고, 그들의 입에서 전래의 사찰과 관계된 <풍요>가 불려졌을 것이다. 일연은 승려인지라 사찰을 승려인지라 사찰을 편력할 때 귀로 듣게 된 것을, 그 근원을 캐어 보니 영묘사를 창건 할 때 불려졌음을 밝혀냈을 것이다. 그래서 <풍요>는 "절구질하는" 그 행위와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노래말'이 영묘사 창건과 관계를 맺고 개작된 것이, 그것이 불사와 관계가 있기에 사찰 경내에서 고달픈 용부들의 입을 통하여 불려졌음직 하다
참 고
*노동요
노동요라 함은 노동을 하면서 부르는 민요로 일의 지루함을 잊고 능률을 높이기 위해서 부르는데, '작업요'라고도 한다. 노동을 하면서 무슨 노래든지 부를 수 있겠으나, 민요로 서 오랫동안 집단적으로 전승되어 온 노래만 노동요라고 하는 것이 관례이다.
노동요는 의식요나 유희요와 함께 일정한 생활상의 기능을 가진 기능요에 속하며,
기능요 중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민요는 원래 노동요에서 시작된 다음 다른 기 능요로 전용되고, 일정한 생활상의 기능을 가지지 않은 비기능요로 바뀌기도 했다는 것 이 유력한 견해이다.
*노동요의 의의
노동요는 인간 생활의 가장 기본적인 활동인 노동 그 자체를 하면서 창조해 온 음악이고 문학이라는 점에서 문화 창조의 양상을 규명하는 데 중요한 의의를 가진다. 음악이나 문 학이 그만큼 필수적인 것임을 입증해 준다.
사회가 노동에 종사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분화된 다음에는 노동에 종사하는 사람의 자기표현 방식이라는 점에서 노동요는 기층문화로서 작용해 왔으며, 민요의 여러 다른 형태는 물론 상층의 시가를 산출하는 모체 구실을 한 점 또한 주목된다.
사회가 근대화되면서 지난 시기의 노동요는 그대로 유지될 수 없는 사태가 벌어졌으나, 그 유산은 오늘날의 예술로 풍부하게 계승되어야 할 것이다.
3) 마무리
이상에서와 같이 '풍요'에 대해 짧게나마 검토한 결과 <풍요>는 처음부터 민요로서 노동요의 모습을 보였다기보다 처음에 불리어질 때는 장육불을 지음과 관련하여 공덕을 닦으려는 사람들에 의해 향찬적, 불교적 성격이 강하였고 불교의 포교적인 교리가 은연중에 내포되어 불리어 지다가 점차 시간이 변함에 따라 노동요로써의 성격이 강해져 지금에서는 처음의 그러한 성격보다는 노동요의 성격이 더욱 강해진 것으로 보여 진다. 결국 <풍요>는 <양지사석>에 전하는 노래와 같은 종류의 명칭이지, <양지사석>에 전하는 노래만을 지칭하는 고유의 명칭이 아님을 우리는 이해하고 무엇보다 이것은 단순한 민요이거나 불교가요이기보다는 집단적 감정을 은연중에 토로한 '풍요'라는 사실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Ⅲ. 결론
지금까지 각 단원에서 <고구려노래> <서동요> <풍요>에 관해 살펴보았다.
우리가 알고 있는 내용보다도 그 이면의 숨겨진 내용에 대해 살펴보려고 노력했으며 또한 이러한 작업이 계속 늘어나 풍성한 문학을 만들어 갔으면 하는 바램 이다.
참고문헌
<한국사2>, (국사편찬위원회 )1977
차주환, <고려사악지> (을유문화사)
조동일, <한국문학통사1> (지식산업사), 2005
윤영옥, <한국의 고시가>, 문창사, 2001
김광순 외, <국문학개론>, 새문사, 2005
신재홍, <향가의 해석>, 집문당, 2000
유창균, <향가비해>, 형설출판사, 1994
김완진, <향가해독법연구>, 서울대학교 출판사, 1984
홍기삼, 「향가설화문학」, 민음사, 1997
이완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문학교육사이트 http://www.seelotus.com)
서정적 자아는 "우리(의내)로", "오다"와 "셔럽다라"의 반복에 담겨 있는 탄식적 분위기와 "功德닷까라"의 반어적 표현에 숨겨진 <뒤틀림의 感情>, 이것이 곧 이 노래의 집단적 정서의 내용이라 하겠다. 그래서 이것은 단순한 민요이거나, 불찬적(佛讚的) 불표가요이기보다는 당시 요역에 시달리는 피지배 노역계층이 집단적 감정을 은연중에 토로한 "풍요"로 보여진다.
④ 풍요에 대한 의견차이
내용 해독
대부분의 학자들의 의견이 별다른 논란 없이 일치하는데 반해 정열모의 것이 독특하여 소개하고자 한다.
'래여(來如)' : 양주동, 홍기문, 김완진 등은 모두 오다, 오나, 오라 등으로 비슷한 뜻으로 풀고 있음. 정열모만 '오료'로 독특하게 해독.
'애반다라(哀反多羅)' : '애돌 하나'로 읽어서 서러움이 많다 로 해독. 의미상 다른 이들의 해독과 비슷하지만 해독하는 방법이 특이한데 '애돌 하이'로 읽어서 문장의 끊음과 해독상의 특징을 보여줌.
'도양(徒良)' : 양주동, 홍기문, 오구라 등은 '이도양(矣徒良)'을 하나로 보아 '의내여'로 풀 이한 반면, 김완진은 '다의(多矣)'와 '도양(徒良)'을 끊어서 중생의 무리로 해 석한 점이 특이.
풍요의 성격 문제
공통적으로 민요라는 점에서는 모두 다 의견의 일치를 보이고 있으나, 그 성격에 있어서 의견을 달리하고 있는데 노동요로만 보는 견해와 향찬적, 불교적 민요로 파악하는 것으로 나눌 수 있다. 그 의견 차이를 살펴보면 전자의 의견은 "이제까지 서민들이 절구질을 함에 다 풍요를 노래하는데 그것은 영묘사의 부처를 만들 때 진흙을 나르면서 부른 데서 비롯되었다"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며 후자의 견해는 "영묘사의 丈六佛을 소조할 때 모든 土女들이 진흙을 다투어 나르면서 풍요를 불렀다"에 초점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일연의 기술 가운데 양지가 丈六佛을 지음에 온 성중의 남녀가 자발적으로 진흙을 다투어 날랐다고 하여 그것을 양지와 결부시켜 놓고 있다. 글의 흐름으로 보아 그것은 양지의 神異
한 행적과 神妙하여 비할 데 없는 재주 때문인 것으로 표현해 주고 있다. 그래서 온 성중의 남녀가 "다투어 진흙을 나른" 것은 불상을 지음에만 필요한 것이었던 것으로 보이며, 절을 세우는 큰 역사에 참여한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그러면 일연은 왜 "지금도 서민들이 절구질을 할 때 모두 이 노래를 부르는데, 대체로 여기서 시작된 것이다"고 하였겠는가?
고려에서도 신라 이상으로 불교가 융성했고, 사찰의 규모는 사람의 수로나 경제적으로 확대되었으며, 그래서 절의 노비와 같은 존재들이 사찰에서 소비될 식량의 도정 작업을 했을 것이고, 그들의 입에서 전래의 사찰과 관계된 <풍요>가 불려졌을 것이다. 일연은 승려인지라 사찰을 승려인지라 사찰을 편력할 때 귀로 듣게 된 것을, 그 근원을 캐어 보니 영묘사를 창건 할 때 불려졌음을 밝혀냈을 것이다. 그래서 <풍요>는 "절구질하는" 그 행위와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노래말'이 영묘사 창건과 관계를 맺고 개작된 것이, 그것이 불사와 관계가 있기에 사찰 경내에서 고달픈 용부들의 입을 통하여 불려졌음직 하다
참 고
*노동요
노동요라 함은 노동을 하면서 부르는 민요로 일의 지루함을 잊고 능률을 높이기 위해서 부르는데, '작업요'라고도 한다. 노동을 하면서 무슨 노래든지 부를 수 있겠으나, 민요로 서 오랫동안 집단적으로 전승되어 온 노래만 노동요라고 하는 것이 관례이다.
노동요는 의식요나 유희요와 함께 일정한 생활상의 기능을 가진 기능요에 속하며,
기능요 중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민요는 원래 노동요에서 시작된 다음 다른 기 능요로 전용되고, 일정한 생활상의 기능을 가지지 않은 비기능요로 바뀌기도 했다는 것 이 유력한 견해이다.
*노동요의 의의
노동요는 인간 생활의 가장 기본적인 활동인 노동 그 자체를 하면서 창조해 온 음악이고 문학이라는 점에서 문화 창조의 양상을 규명하는 데 중요한 의의를 가진다. 음악이나 문 학이 그만큼 필수적인 것임을 입증해 준다.
사회가 노동에 종사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분화된 다음에는 노동에 종사하는 사람의 자기표현 방식이라는 점에서 노동요는 기층문화로서 작용해 왔으며, 민요의 여러 다른 형태는 물론 상층의 시가를 산출하는 모체 구실을 한 점 또한 주목된다.
사회가 근대화되면서 지난 시기의 노동요는 그대로 유지될 수 없는 사태가 벌어졌으나, 그 유산은 오늘날의 예술로 풍부하게 계승되어야 할 것이다.
3) 마무리
이상에서와 같이 '풍요'에 대해 짧게나마 검토한 결과 <풍요>는 처음부터 민요로서 노동요의 모습을 보였다기보다 처음에 불리어질 때는 장육불을 지음과 관련하여 공덕을 닦으려는 사람들에 의해 향찬적, 불교적 성격이 강하였고 불교의 포교적인 교리가 은연중에 내포되어 불리어 지다가 점차 시간이 변함에 따라 노동요로써의 성격이 강해져 지금에서는 처음의 그러한 성격보다는 노동요의 성격이 더욱 강해진 것으로 보여 진다. 결국 <풍요>는 <양지사석>에 전하는 노래와 같은 종류의 명칭이지, <양지사석>에 전하는 노래만을 지칭하는 고유의 명칭이 아님을 우리는 이해하고 무엇보다 이것은 단순한 민요이거나 불교가요이기보다는 집단적 감정을 은연중에 토로한 '풍요'라는 사실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Ⅲ. 결론
지금까지 각 단원에서 <고구려노래> <서동요> <풍요>에 관해 살펴보았다.
우리가 알고 있는 내용보다도 그 이면의 숨겨진 내용에 대해 살펴보려고 노력했으며 또한 이러한 작업이 계속 늘어나 풍성한 문학을 만들어 갔으면 하는 바램 이다.
참고문헌
<한국사2>, (국사편찬위원회 )1977
차주환, <고려사악지> (을유문화사)
조동일, <한국문학통사1> (지식산업사), 2005
윤영옥, <한국의 고시가>, 문창사, 2001
김광순 외, <국문학개론>, 새문사, 2005
신재홍, <향가의 해석>, 집문당, 2000
유창균, <향가비해>, 형설출판사, 1994
김완진, <향가해독법연구>, 서울대학교 출판사, 1984
홍기삼, 「향가설화문학」, 민음사, 1997
이완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문학교육사이트 http://www.seelot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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