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I.서론
II.본론
1. 조지 W. 부시 대통령
2.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
3. 조지 W. 부시 대통령 VS 고이즈미 준이치로
(1) 리더십 원리
(2) 리더십과 문제해결
(3) 리더십과 조직관리
(4) 리더십과 외교노선
(5) 리더십과 비전
III. 결론
II.본론
1. 조지 W. 부시 대통령
2.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
3. 조지 W. 부시 대통령 VS 고이즈미 준이치로
(1) 리더십 원리
(2) 리더십과 문제해결
(3) 리더십과 조직관리
(4) 리더십과 외교노선
(5) 리더십과 비전
III. 결론
본문내용
리했다. ‘물론 제 앞에 놓여있는 과업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는 압니다. 또 대통령으로 일을 하다 보면 자긍심이 기도하는 마음으로 바뀌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지금 제 앞에 놓인 일을 시작하기를 갈망합니다. 그리고 미국이 새롭게 시작할 준비가 되어있다는 것을 확신합니다.’
②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
1955년 이후 계속된 일본 자민당 체제는 전후 일본 경제가 급성장하는 데 기여했다. 50년간 자유와 번영이 계속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균형잡힌 대안을 찾아가는 ‘열린 토론 문화'는 정착되지 못했다. 절대 다수 집권당과 군소 정당으로 이뤄진 일극 정치체제에서 공통분모를 찾는 노력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이기 때문이다. 만연된 파벌정치는 총리의 권위를 제한해 왔고 장수하는 총리를 찾아보기 어려웠다. 대기업과 거대 정부의 밀월관계는 과도할 정도로 중요시됐다. 비선출직 직업 공무원들은 책임에 걸맞지 않게 많은 권력을 갖고 있었다. 이렇듯 일본에서 기득권을 타파하는 개혁은 그래서 너무나 어려운 과제였지만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 이후 일본은 달라지고 있다.
일본은 자민당 지배 체제의 틀을 벗어던지고 미국 영국 같은 양당 체제로 가고 있다. 일본이 이처럼 변화하는 데는 고이즈미의 정치 스타일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특히 일관성 있는 주장과 메시지를 전달한다는 점에서 고이즈미는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과 많이 닮았다. 고이즈미는 총리가 된 이후 우정 시스템을 민영화하고 자민당의 파벌정치를 분쇄하겠다고 약속했다. 고이즈미와 후쿠다 파벌은 이미 1970년대부터 자민당내 다나카 파벌을 상대로 거의 전쟁을 벌여왔다. 수십년간의 정치 역정을 통해 간직해온 소신을 총리가 된 뒤에도 밀어붙이고 있는 것이다. ‘1955년도식 일본 시스템'을 해소하려는 고이즈미의 노력은 그래서 ‘레이건적(Reaganesque)'이라 할 만하다.
III. 결론
같은 시대, 같은 공간에서 같은 인적물적 자원을 갖고도 리더에 따라 기업이나 국가의 흥망성쇠가 바뀐다. 이순신, 원균, 아이아코카 ,박정희, 김일성의 예를 잘 생각해보자. 그래서 대통령을 뽑는 일은 미인투표나 인기투표를 하는 것과는 분명히 다르며, 우리와 우리 후손들의 운명을 좌우하는 심각한 결정이다. 국정 지도자를 잘못 만나 고생하는 여러 우수한 국민들의 모습을 남의 일로만 여겨서는 안 된다. 부시 정부 출범 후 나타나고 있는 한-미 갈등은 매우 걱정스러운 일이다. 클린턴 정부와 YS 정부와의 갈등 때문에 한국은 IMF 외환위기 때 더 큰 어려움을 겪어야 했고, 카터 정부와 박정희 정부의 갈등은 10.26 참화의 씨앗이 되었다. 남북관계에 관련, 일각에서는 미국이 이라크 다음 공격 대상으로 북한을 삼을 것이라는 한반도 위기설을 주장하고 있다. 물론 대부분의 국제 문제 전문가들은 위기의 가능성을 낮게 보고 있지만, 고이즈미 정부 및 부시 행정부와의 결정적 관계정립이 이루어지지 않는 한 위기 가능성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우리 정부의 현명하고 합리적인 리더십이 그 어느때보다도 요구되는 시점이다.
②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
1955년 이후 계속된 일본 자민당 체제는 전후 일본 경제가 급성장하는 데 기여했다. 50년간 자유와 번영이 계속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균형잡힌 대안을 찾아가는 ‘열린 토론 문화'는 정착되지 못했다. 절대 다수 집권당과 군소 정당으로 이뤄진 일극 정치체제에서 공통분모를 찾는 노력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이기 때문이다. 만연된 파벌정치는 총리의 권위를 제한해 왔고 장수하는 총리를 찾아보기 어려웠다. 대기업과 거대 정부의 밀월관계는 과도할 정도로 중요시됐다. 비선출직 직업 공무원들은 책임에 걸맞지 않게 많은 권력을 갖고 있었다. 이렇듯 일본에서 기득권을 타파하는 개혁은 그래서 너무나 어려운 과제였지만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 이후 일본은 달라지고 있다.
일본은 자민당 지배 체제의 틀을 벗어던지고 미국 영국 같은 양당 체제로 가고 있다. 일본이 이처럼 변화하는 데는 고이즈미의 정치 스타일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특히 일관성 있는 주장과 메시지를 전달한다는 점에서 고이즈미는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과 많이 닮았다. 고이즈미는 총리가 된 이후 우정 시스템을 민영화하고 자민당의 파벌정치를 분쇄하겠다고 약속했다. 고이즈미와 후쿠다 파벌은 이미 1970년대부터 자민당내 다나카 파벌을 상대로 거의 전쟁을 벌여왔다. 수십년간의 정치 역정을 통해 간직해온 소신을 총리가 된 뒤에도 밀어붙이고 있는 것이다. ‘1955년도식 일본 시스템'을 해소하려는 고이즈미의 노력은 그래서 ‘레이건적(Reaganesque)'이라 할 만하다.
III. 결론
같은 시대, 같은 공간에서 같은 인적물적 자원을 갖고도 리더에 따라 기업이나 국가의 흥망성쇠가 바뀐다. 이순신, 원균, 아이아코카 ,박정희, 김일성의 예를 잘 생각해보자. 그래서 대통령을 뽑는 일은 미인투표나 인기투표를 하는 것과는 분명히 다르며, 우리와 우리 후손들의 운명을 좌우하는 심각한 결정이다. 국정 지도자를 잘못 만나 고생하는 여러 우수한 국민들의 모습을 남의 일로만 여겨서는 안 된다. 부시 정부 출범 후 나타나고 있는 한-미 갈등은 매우 걱정스러운 일이다. 클린턴 정부와 YS 정부와의 갈등 때문에 한국은 IMF 외환위기 때 더 큰 어려움을 겪어야 했고, 카터 정부와 박정희 정부의 갈등은 10.26 참화의 씨앗이 되었다. 남북관계에 관련, 일각에서는 미국이 이라크 다음 공격 대상으로 북한을 삼을 것이라는 한반도 위기설을 주장하고 있다. 물론 대부분의 국제 문제 전문가들은 위기의 가능성을 낮게 보고 있지만, 고이즈미 정부 및 부시 행정부와의 결정적 관계정립이 이루어지지 않는 한 위기 가능성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우리 정부의 현명하고 합리적인 리더십이 그 어느때보다도 요구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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