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문학] 삼국유사와 수로부인에 대해서
본 자료는 3페이지 의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여 주세요.
닫기
  • 1
  • 2
  • 3
  • 4
  • 5
  • 6
  • 7
  • 8
  • 9
해당 자료는 3페이지 까지만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3페이지 이후부터 다운로드 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목차

Ⅰ. 서론
주제 선정의 이유

Ⅱ. 본론
1. 원문해석
2. 피랍사건의 의미
(1) 수로부인의 미를 탐한 사통
(2) 신이한 출생담
(3) 신과의 만남

Ⅲ. 결론

본문내용

it., pp.179~180.
-입무(入巫)의식-
② 수로부인을 앗아갔다는 용은 악룡이며, 재앙과 반역을 상징한다. 수로부인이 이 용에게 끌려간 것은 희생제물이 된 것이다. 노인과 백성들이 도움을 받고 수로부인은 구출되었지만 수로부인이 용궁에서 돌아와 그 곳을 찬양했다는 것은 타협하면서 화해를 이루려는 의도를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을 악룡 노릇을 한 지방의 불만 세력을 아주 제거하려고 하지 않고 적당한 선에서 용서하는 편이 유리하다고 판단한 정책적인 조치를 보인다. 신라의 지배층은 불교를 최고이념으로 삼고 유교의 제도를 채택했으나 무속을 버린 것은 아니다. 위기를 타개하고 민심을 수습해야 할 때에는 굿을 했다. 조동일, 「한국문학통사」1, 제5판, 지식산업사, 2005, p.163.
③ 지리적으로 보아 강릉을 바닷가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그 지역의 주민들은 바다에서의 고기잡이를 통한 생산 활동으로 생계를 유지했을 것이다. 특히 바다의 기상상태는 그들의 생산 활동과 밀접한 연관과 생명과도 직결되는 것이었으므로 매주 중시 여겼을 것이다. 그들은 바다에서 일어날 수 있는 거대한 자연현상과 바다에서의 안전한 항해를 보장하는 것을 용이라고 믿었다.
그리하여 무(巫)의 주도아래 많은 주민들이 모여 해상에서의 안정과 다획 그리고 풍요를 기원하기위해 용에게 제의를 지냈다. Op.cit., pp.176~178.
여기서 수로부인은 이 제의를 이끄는 무당이었을 것이다. 여기서 또 한 해룡에게 잡혀간 수로부인은 접신을 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위의 해석들은 정리해 생각해 보면 수로부인은 무당으로서 해룡(海神)에게 제의를 지내는 것이다. 또 이 과정 가운데 용에게 잡혀가는 것은 굿을 하던 수로부인이 해신(海神)과 접하는 장면이라고 생각된다.
Ⅲ. 결론
지금까지 용의 납치 행위가 어떤 의미가 있고 수로부인의 존재는 무엇인지 살펴보았다. 수로부인의 존재에 대해서는 수많은 논의가 있다. 우리 조에서는 조원들이 서로 조사한 자료를 바탕으로 논의하여 ‘과연 수로부인은 누구였을까?’라는 결론을 내려보았다. 우선 수로부인의 미를 탐한 사통이라는 측면은 우선 일연이 신라의 미를 나타내려 했다면 왜 사통이라는 것으로 표현했느냐는 모순을 발견할 수 있다. 또한 삼국유사의 기이편에는 기이한 이야기가 실리는데 사통이라는 단순한 모티브를 기이편에 싣는다는 것도 모순이라고 할 수 있다. 또 그 당시에는 유교적 관념이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 아니기 때문에 순정공이 수로부인의 순결하지 못함을 미화시켰다는 점은 모순이며 수로부인이 남편에게 끌려갔던 것을 황홀하다고 표현한 점도 모순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우리나라 고대사회에서는 여성의 정조를 소중히 여긴 자료들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부여(扶餘)에서는 남녀가 음란하면 모두 죽이고 또 여자의 투기를 미워하여 죽여서는 그 시체를 사에다 버렸으며, 동예(東濊)에서는 부인정신(「婦人貞信」)이라 하였다. 한편, 백제의 법속(法俗)에서는 간음한 여자는 남편의 종(婢)으로 삼았다. 고조선에서도 부인들은 정신(貞信)하여 음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신라에서도 김유신이 누이동생인 문희가 남편 없이 임신했다하여 태워 죽이려 하였다. 이 점에서 혼전 임신이 금기시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고, 더욱이 신라에서는 국학(國學)이 설치되면서 각종 유교경전이 교육되고 있었다. Ibid., pp.163~164.
이러한 상황으로 볼 때 수로부인의 사통으로 보는 것은 무리가 있는 해석이라고 생각된다.
다음 용녀의 출생담이라는 측면을 보자. 수로부인의 ‘부인’이라는 칭호는 왕모, 왕비, 왕비모에게 주어지는 위호 중 하나일 것이라는 것은 지나친 추측일 수 있다. 훈귀의 처에게 주는 위호를 받았을 가능성을 전혀 배제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이는 순정공의 이름이 삼모부인의 아버지 이찬 순정과 동음이사(同音異寫)한 음절을 표기하는 데 각기 다른 한자를 차음해 쓰고 있는 것.
라는 추측이 무리가 있다는 점과 연관 지어 생각해볼 수 있다. 추측과는 달리 순정공과 이찬 순정이 전혀 다른 사람이라면, 수로부인이 왕비의 어머니라는 주장은 그 설득력을 잃는다. 단지 수로부인은 강릉의 민심을 수습하고 반란세력을 진압하기 위해 파견된 순정공의 조력자로서의 역할을 했고, 그 공으로 인해 부인의 위호를 받았다고 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수로부인이 피랍사건을 통해 용녀를 출생했다는 주장은 지나친 상상력의 소산일 수 있다.
위와 같은 사실들을 바탕으로 우리 조원들은 수로부인이 무당이었을 것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키워드

삼국유사,   수로부인,   금와왕,   신라,   ,   피랍,   ,   일연
  • 가격1,500
  • 페이지수9페이지
  • 등록일2006.08.22
  • 저작시기2006.8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361899
본 자료는 최근 2주간 다운받은 회원이 없습니다.
청소해
다운로드 장바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