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문화의 다양성과 복잡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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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중국 문화의 다양성과 복잡성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지리적 환경 : 남과 북의 대조

(2) 내륙 아시아와 중국 : 유목과 농경

(3) 여덟 개의 기본 문화

본문내용

것이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역사민족학이 도움이 될 지도 모른다. 문화의 물질적 요소들과 빗물질적 요소들을 조심스럽게 자리매김하고 전설과 그 밖의 전승을 이용함으로써, 그리고 지금까지 현존하는 「지방문화」의 분포를 가능한 한 먼 옛날까지 추적함으로써 역사민속학은 아음과 같은 사실을 설정할 수 있으리라 본다. 즉 현재의 중국땅에 상당수의 상잉한 지방문화가 존재했으며 제각기 자신의 길을 따라 전개되었지만, 결국 정도는 달라도 모든 지방문화가 우리가 「중국문화」라고 일컫게 된 것을 형성하는 데 기여하였다는 사실이다. 이제 가장 중요한 지방문화만을 언급해보고자 한다.
(a) 동북문화, 이것은 현재의 하북(河北, 하베이 : 이곳에 북경이 있다), 산동 (山東, 산둥) 남만주의 여러 성(省)들에 집중되어 있다. 이 문화의 주인공들은 퉁그스인의 조상으로, 아마 오늘날의 고-시베리아(Paleo-Siberia) 종족들에 포함되어 있는 요소와 혼합되어 있을 것이다. 이 사람들은 주로 수렵민이었으나 곧 약간의 원시적 농경을 발달시켰고, 후에 이어지는 중국의 토기(예컨대 三脚土器라고 일컫는 유형)에서 오래 보존되고 있는 어떤 기본 형식을 지닌 거칠고 두터운 토기를 만들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이후, 이 문화는 돼지 사육이 전형적 특징이 되었다.
(b) 이 문화의 서쪽으로, 오늘날 중국의 산서(山西, 산시)성 지역과 내몽고의 제홀(Jehol, 熱河)성에는 북방문화가 존재한다. 그 주인공은 수렵민이었는데, 그 후 주로 소에 의존하는 유목민이 되었다. 이 문화의 주인공은 후에 몽골인으로 알려진 종족들, 이른바 원-몽골인(proto-Mongols)이었다. 인류학적으로 그들은 퉁구스인과 마찬가지로 몽골인종에 속한다.
(c) 그보다 더 서쪽으로 위치한 북서문화의 주인공은 몽골인이 아니다. 그들 역시 원래는 수렵민으로 나중에는 소홀히 여길 수 없을 정도의 농경(특히 밀과 기장을 재배)을 곁들인 목축민이 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말이 이집단의 전형적인 동물이 된다. 말은 몸집이 큰 동물 중에서는 가장 마지막으로 가축화된 것으로 보이는데, 극동에서 처음 가축화된 형태로 나타나는 시가는 아직 확실하지 않지만 기원전 2500년 무렵에 이 집단이 이미 말을 소유하였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말은 항상 「사치품」으로 특별한 보살핌이 필요한 가치있는 동물이었다. 이 종족들은 경제적 필요에 의해 양, 산양, 소와 같은 다른 동물에도 의존하였다. 이 문화의 중심은, 중국의 자료에서 확인할 수 있는 한, 현재의 섬서(陝西, 산시)성과 감숙(甘肅, 간쑤)성이었는데 주로 그 평원만 해당된다. 이 문화의 주인공은 대부분 후세의 투르계 민족들의 조상들이었을 것이다. 물론 투르크족의 원래 고향이 중국의 섬서와 감숙석 지역에 있었다는 말은 아니다. 그러나 그 지역이 투르크족의 팽창에 경계지역이 되었다는 인상을 받는다. 이 시기에 관한 중국의 문헌들은 투르크족 세력권의 중심을 설정하기에 충분치 않다. 최근의 언어학적 연구는 투르크어, 몽골어, 통구스어가 어느 정도 연관이 있고 하나의 단일한 유형의 언어로부터 발달된 것일지도 모른다는 추측을 가능하게 한다. 한국어 역시 이 언어들과 관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일본어는 한국어나 한국어를 매개로 한 알타이어와 관련이 있다 해도 더욱 복잡한 기원을 가졌을지도 모른다.
(d) 현재의 사천(四川, 쓰촨)지방의 성들과 감숙과 섬서성의 전 산악지대인 서방에 또 하나의 분리된 문화로서 티베트족의 조상이 살고 있었다. 그들은 목양민으로, 일반적으로 양떼와 산양떼를 끌고 고산지대를 유량하였다.
(e) 나머지 네 개의 문화는 남쪽에서 발견된다. 그 하나는 매우 원시적인 랴오(Liao)문화이다. 이 문화의 주인공은 오스트로-아시아인이다. 이들은 원시적인 수렵민의 단계를 벗어나지 못했고 그 일부 사람들은 활과 화살조차 몰랐다.
(f) 그보다 동쪽으로는 초기 오스트로네시아 문화인 야오(Yao)문화가 있었는데, 그들 역시 산악지대에서 일부는 채집민과 수렵민으로 일부는 간단한 형태의 농경(燒畑 경작)까지 하면서 살고 있었다. 이들은 나중에 남방의 마지막 대문화, 즉 농경에 의해 구별되는 타이(Thai)문화와 혼합되었다.
(g) 타이문화의 주인공은 골짜기에 살면서 주로 쌀을 재배하였다. 타이문화의 중심은 현재의 광동과 광서성이었을지도 모른다. 오늘날, 그들의 후손은 태국의 타이인, 미얀마의 샨(Shan)인, 라오스의 라오(Lao)인의 주된 구성원이 되었다. 그들이 미얀마의 샨 제국(諸國)과 태국으로 이주한 것은 아마 기원후 1000년보다 그리 이르지 않은 매우 최근의 역사적 시기들에 불과하다.
(h) 마지막으로 야오문화가 타이문화와 혼합되어 다소 후대에 또 하나의 초기 오스트로네시아 문화인 위에(Yeh)문화가 발생하였다. 이 문화는 이후 인도네시아의 광범위한 지역으로 확산되었으며 장방형 단면의 도끼가 그 문화의 전형적 특징이 되었다. 언어학적으로 티베트족(롤로 Lolo족같이 중국본토의 소수민족들이 여기에 속한다)의 언어들은 중국어와 관련이 있다. 타이어는 중국어와 더욱 밀접한 계통이지만, 야오족과 위에족의 언어는 인도네시아와 남태평양 언어에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랴오족은 동남아시아의 몬(Mon)과 크메르(Kmer)문화들과 관계했을 것이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다음과 같이 요약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크게 어림잡아서 기원전 3000년대의 중반에 현재의 중국의 북방과 서방에서 다수의 목축민 문화들이 만난다. 남방에는 다수의 농경문화가 있었는데 그 중 타이족의 세력이 가장 강해서 후세의 중국에 가장 중요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우리는 이 문화들이 그 사회 구성에 있어서 아직 분화되지 않았다는 사실, 말하자면 기껏해야 특별히 유목민들 사이에서 계급형성이 시작단계에 있었을 뿐, 그 때까지는 뚜렷한 사회적 계층화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다는 사실을 가정해야만 한다. 선사시대의 문화들은 제각기 후세의 「중국의」문화에 나름대로 기여하게 되는데, 그에 관한 구도는 고고학만으로 이루낸 구도보다는 훨씬 상세하다.
[ 선사시대의 주요 지방 문화권 ]
볼프람 에베하르트의 『中國의 歷史』
여덟 개의 기본 문화에서
  • 가격1,000
  • 페이지수10페이지
  • 등록일2006.09.08
  • 저작시기2006.9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363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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