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산교와 대순진리회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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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증산교
1. 증산교 개관
2. 증산의 사상·교리
3. 증산사상의 특징
4. 현황

Ⅱ. 증산교와 대순진리회
1. 증산교 교파 분열과 그 배경
2. 증산교와 대순진리회의 차이점·유사점
3. 대순진리회

Ⅲ. 우리나라에 미친 영향
1. 등장배경
2. 우리나라에 미친 영향

*참고문헌

본문내용

득할 만한 설명을 해줄 수 있었던 이들은, 옷만 갈아입은 기득권 개혁사상가들도 아니었고, 기성종교인들도 아닌 증산 같은 신종교 운동가들뿐이었다.
증산은 끊임없이 자신의 시대 현실에 대해서 해석하고 개혁하는 역사 내적 종교성의 실현을 위해 노력한 사람이다. 증산은 일본이 쳐들어오는 것은 서구의 침략을 막아내기 위한 것이었다고 '설명'하고, 그러나 운도를 조정해서 결국 조선을 상등국으로 세울테니 희망을 가지라고 '고무'했다. 그 설명과 고무의 장소는 '역사'였다는 것이, 증산을 현실이탈적 신비주의자가 아니라, 민중 종교운동가로 보게 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그 설명과 고무가 '역사'라는 맥락을 떠나지 않고 참여, 책임적으로 진행되었다는 것이다. 그것이 예언이었거나 혹은 회고였다 해도, 원인도 미래도 알 수 없었던 아노미상태의 민중들에게 사태의 실상을 '합리적(시대 제약적)'으로 깨닫게 한 것이다.
(3) 민중의 기대에 부응
일제하 증산교파의 교세 확장의 배경은 '새로운 나라'에 대한 민중의 기대에 근거한다.
일제하 활동한 증산교파 중 가히 '폭발적' 성장을 한 교파는 차경석의 보화교(보천교)였다. 증산교 파들은 초기에도 민중 사이에서 상당한 성장을 했지만, 6백만 신도를 호칭할 정도로 급성장하게 된 계기는, 차경석이 주도한 1921년 9월의 고천의식이었다. 그 내용은 일본 군대의 포위망을 뚫고 황석산 정상에서 1천여 명의 신도와 간부신도들이 모여 제단과 촛불을 밝힌 가운데, 국호를 '시국(時國)'으로, 교명을 '보화(普化)'라 선언한 것이었다. 이 사건 직후 보화교의 신자수는 6백만, 간부의 수효만도 557,700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노길명, [한국의 신흥종교], p.286
이것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은, 증산의 정치적 관망태도에도 불구하고, 민중은 후천선경이 현실에서 정치적으로 실현되기를 갈망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고천의식이 일제 치하에서 가졌던 상징성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의 폭발적 힘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민중이 증산을 통해서, 혹은 신종교를 통해서 기대했던 것은 단순한 내면적 위로 차원이 아니라, 여전히 현실의 개벽이라고 하는 변혁적 차원의 기대였지 않았을까?
(4) 증산 사상의 현대적 함의를 다각도로 조명하는 작업의 가능성
증산의 사상은 이처럼, 현대적 주제들인 반전, 남녀평등, 생태, 종교간 협력, 가난 등의 주제들에 대한 상상력의 토양으로 살아있다.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증산의 상상력에 영감을 받고, 보다 인간화된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노력하는 이들에게 달려있다. 한 예로, 생태학적 전망을 들 수 있다. 김지하는 최근 마당극 '세 개의 사랑 이야기'에서 증산의 '지적 높이는 공사'를 예술로 형상화했다. 마당극의 클라이막스에서 땅을 상징하는 황색천을 하늘로 올리는데, 그것이 하늘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과 균형을 이루는 것으로 형상화되었다. 이는 그동안 지배 대상 혹은 이용 대상으로 인식했던 땅(자연)에 대한 패러다임 전환을 의미한다. 하늘과 땅과 사람이 하나의 유기체적 전체를 형성한다는 것은, 자연을 '환경'이라는 인간중심적 개념에서 '생태계'라고 하는 공존 개념으로 전화하게 하는 뜻을 담고 있다. 그것은, 증산에게는 새로운 것이 아니라, 이미 생생한 세계 인식으로 구성되었던 요소이다.
조사를 통해서 우리는 증산교와 대순진리회에 대한 대략적인 지식을 얻게 되었다. 그러나 이들의 증산사상은 일반인들이 이해하기에는 어렵고 심오한 부분이 있어서 정확히 그것을 안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이 정도의 정보를 통해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이들이 무조건 ‘사이비 종교’ 등으로 분류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들이 우리 민족에게 미친 영향은 너무도 컸으며, 종교적인 것 뿐 아니라 철학으로서 그들의 교리는 충분히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들을 통해서 마음의 안정을 찾는 사람들도 있기에 섣불리‘사이비’라고 말하는 데에는 무리가 따른다. 그러나 지금까지 종종 보여주었던 부정적인 사건들의 잔상이 아직 우리의 머릿속에 있는 한 이들을 마음으로까지 인정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들 종교인들의 노력여하에 따라 일반 국민들의 시선은 달라질 것이다.
20세기 초의 증산 사상이 세기말의 현대에도 여전히 의미가 있는 것은, 그 사상이 현대 세계가 안고 있는 문제들과 비교적 가까운 시기에 형성되었다는 것, 다시 말해서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현대적 주제들을 포함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증산교파가 수 십 분파로 분열해 왔고, 단일한 종교이념으로 종합되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 증산교 이해를 어렵게 하고 있는 문제가 있다. 그러나 그것은, 증산교가 살아있는 현대 종교현상이라는 것을 역설적으로 반증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증산교가 지금도 고정화되지 않고 변화발전하고 있다는 것 자체에 주목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증산교 사상사
*참고문헌
김홍철, 증산교사상사, 연세대학교 출판부, 한국종교사상사 3,
노길명, 한국의신흥종교, 카톨릭신문사,
한국민족종교연구(1999.11.23), 지도교수 : 김성례, 발표 : 정경일
딴지일보, 2001.5.11.금요일 [분석] 기나 도, 너희를 밝히마
‘대순진리회의 비극’ 머리말 중에서, 증산도 전국청년신도연합회 펴냄,
월간 현대종교 94년 8월호
국민일보 2003.05.17, [시신발견 현장] ″생명수 마시면 살아나″ 빗나간 믿음,
경향신문 2004년 11월 16일, 글 이동형·사진 권호욱기자
경향신문 2004년 11월 12일, 윤석원기자
한겨레신문 2005.10.18, 조연현 기자
이철수 스테파노 신부, 연중 제 19주일 수원주보
노길명, [한국의 신흥종교], p.286
http://mizii.com/jesusi/inlight/religion/korean/zeungsan/zeungsan.htm
*목 차
Ⅰ. 증산교
1. 증산교 개관
2. 증산의 사상·교리
3. 증산사상의 특징
4. 현황
Ⅱ. 증산교와 대순진리회
1. 증산교 교파 분열과 그 배경
2. 증산교와 대순진리회의 차이점·유사점
3. 대순진리회
Ⅲ. 우리나라에 미친 영향
1. 등장배경
2. 우리나라에 미친 영향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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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6.09.13
  • 저작시기2006.9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3637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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