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서론
1. 삼국시대 [三國時代]
Ⅱ. 본론
1. 고구려의 예술
1). 고분 벽화
2). 불 상
3). 공예
2. 백제의 예술
1). 회화
2). 건축
3). 불상
4). 공예
3. 신라의 예술
1). 회화
2). 불상
3). 공예
Ⅲ. 결론
♣.참고문헌
1. 삼국시대 [三國時代]
Ⅱ. 본론
1. 고구려의 예술
1). 고분 벽화
2). 불 상
3). 공예
2. 백제의 예술
1). 회화
2). 건축
3). 불상
4). 공예
3. 신라의 예술
1). 회화
2). 불상
3). 공예
Ⅲ. 결론
♣.참고문헌
본문내용
(騎馬人物形土器)
국보 (國寶) 제 91 호
토제 (土製)
높이 : 23.4 cm
길이 : 29.4 cm
너비 : 10.5 cm
무장을 한 신라의 무사가 말을 타고 있는, 작은 "테라 코타" 작품이며, 풍취가 가득한 신라 무인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2). 금속공예
신라 미술의 일반적인 경향은 고분에서 쏟아져 나온 금관을 비롯한 금속공예품과 토기등에서도 잘 나타난다. 신라의 금관을 위시한 금속공예는 대개가 매우 정교하고 호화로우며 또 간혹 현대적인 감각을 풍겨주기도 한다.
특히 금관의 입식(立飾)은 당시의 수목 숭배사상과 사슴 숭배사상을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믿어져 당시 신라인들의 토속신앙이나 사상도 엿보게 한다.
◈. 천마총금관 (天馬塚金冠)
국보 (國寶) 제 188 호
신라 (新羅) 5~6세기
재질-금속 (金屬) /금제 (金製) /유리/보석 /옥 (玉)
크기-높이 : 32.5 cm
출토지-경상북도 경주시
◈. 굵은고리금귀걸이 (金製太環耳飾)
국보 (國寶) 제 90 호
국적/시대/년대-한국 (韓國) /신라 (新羅)
재질-금속 (金屬) /금제 (金製)
크기-전체길이 : 8.7 cm /지름 : 3.8 cm
출토지-경상북도 경주시
<신라예술의 특징>
토속적이며 소박함
조화를 이룸
엄격하고 추상적이며 사변적인 성격을 강하게 띰
Ⅲ. 결론
우리 나라에서 미술이 시작된 것은 선사시대부터지만 좁은 의미에서 미술이 발전하기 시작한 것은 불교가 처음으로 전해졌던 고구려시대 부터라 할 수 있다. 목조와가(木造瓦家) 건축은 이미 낙랑군(樂浪郡:BC 108~AD 313)의 중국인을 통하여 소개되어 있었으나 불교건축을 계기로 하여 본격적으로 우리나라 미술이 등장하기 시작하였다. 불탑(佛塔)은 처음에는 중국식 고루목탑(高樓木塔)으로 동서북의 3면이 각각 독립된 금당(金堂)으로 둘러싸인 8각탑(角塔)이 있던 흔적이 고구려에서도 발견되고 있으나, 6세기경부터 화강암에 의한 석탑이 건조되기 시작했으며, 이것이 통일신라 시대인 8세기경에 이르러 한국 석탑이라고 할 수 있는 독특한 형식을 완성하게 되었다.
불상조각(佛像彫刻)은 고구려가 북위(北魏)를 주로 한 중국 북조(北朝)의 조각을 본보기로 하고 있는 데 반해서, 백제에서는 남조(南朝)의 영향을 받아 둥그스름한 얼굴에 온화한 백조의 미소라고도 할 수 있는 천진난만한 웃음을 머금은 불상이 만들어졌고, 고신라(古新羅)는 기본적으로는 북조불(北朝佛)에서 영향받아 엄숙하고 침울한 추상적인 작품을 만들어냈다. 정면시(正面視) 위주의 평면조각에서 입체조각으로 발전한 것은 900년경으로 보이며, 대부분의 미륵반가사유상(彌勒半跏思惟像)이 구리 또는 돌로 만들어졌다. 이 반가사유상을 포함하여 7세기 전반(前半)의 삼국 불상은 종래의 북위 전통에서 벗어나 북제(北齊)수(隋) 초당(初唐)의 양식을 차례로 반영하여 의복 밑의 신체에 보다 주력하였다.
7세기 중엽이 되면 고신라의 불상도 한국적인 온화함을 되찾고, 구리돌의 조각기술이 원숙해져 이후 통일신라의 황금기를 예시하고 있다. 회화는 압록강 중류 북안(北岸)의 퉁거우[通溝]와 대동강(大同江) 하류 북안의 용강(龍岡) 부근에 산재하는 고구려의 벽화고분에 남아 있을 뿐이다. 이것들은 후한(後漢)과 삼국시대의 중국벽화 고분에서 배워온 것으로, 발생기는 4세기 말경으로 추정된다. 4~5세기에 걸친 초기 고분벽화는 중국식인 주인 부부의 초상화를 주로 하고, 6세기에 접어들면 부부를 중심으로 한 중요 생활기록, 즉 풍속화로 바뀌며, 7세기 전반(前半)에는 사신도(四神圖)와 수목(樹木) 연화(蓮花)를 제재로 한 풍경화가 주류를 이룬다. 벽화고분은 백제의 공주(公州)와 부여(扶餘)에서 각각 볼 수 있으나 가야(伽倻)고신라 땅에도 전해져 근래에 고령영주(榮州)에서도 1기(基)씩 발견되었다. 금속공예는 처음에 낙랑군에서 비롯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중국의 육조미술(六朝美術)과도 긴밀한 관계를 가지고 크게 발전하였다.
고신라의 금관총(金冠塚)에서 나온 순금제 외관(外冠)은 잘 알려져 있지만, 이것이 3개의 수목형(樹木形) 입식(立飾)과 2개의 녹각형(鹿角形) 입식을 단 시베리아 초원(草原) 일대에서 유래된 특수 형식인 데 반해서, 고구려 백제는 일보 전진하여 포제(布製)의 모자에 수목형 또는 초화형(草花形) 투조(透彫)로 된 전식(前飾)을 달았고, 71년 발굴된 백제 무령왕릉(武寧王陵)의 유물은 고신라의 것보다 세련되었다. 고신라 토기는 3세기경에 성립한 초벌구이의 경도(硬陶)로서 고배(高杯)감()을 주체로 하고 있다. 표면 장식은 파상집선(波狀集線)기하학적 선(線)무늬 등으로 한정되어 소박고졸(古拙)한 기형(器形)과 더불어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삼국의 미술은 중국, 인도, 페르시아등 외국의 미술을 수용하고, 삼국간에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점차 많은 공통점을 지니게 되어, 후에 민족 미술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전체적으로 고구려, 백제, 신라의 미술은 소박한 아름다움을 지닌 예술이었다. 토우(土偶) 같은 것에 아직도 치기어린 괴기성을 가지고 있지만 대체로 이를 극복하고 있었다.
또 삼국시대에는 또한 유교, 불교, 도교의 삼교가 전래되어 우리 나라의 미술에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특히 불교와 도교가 이 시대 미술에 크게 영향을 미쳤다. 불교의 발전과 함께 사상적 내용이 풍부해지고 기술이 고도화됨에 따라 높은 미의 감각을 엿볼 수 있는 작품들이 많이 있다. 삼국시대의 예술은 건강한 아름다움을 지닌 사실적인 예술이었다.
♣.참고문헌
http://honam.ms.kr/~geeum/age/korea/2_samguk/samguk.htm
http://www.k-dongil.hs.kr/romila/k2.htm
http://user.ducsi.ac.kr/kyungjin/homepage/sang04/product/home/htm/3_4.htm
http://210.217.245.140/susuk/koreaart/sr4-2.htm
http://myhome.netsgo.com/kimkoo2727/삼국시대.htm
http://www.kwangsu.com/history/source/100-9.htm
국보 (國寶) 제 91 호
토제 (土製)
높이 : 23.4 cm
길이 : 29.4 cm
너비 : 10.5 cm
무장을 한 신라의 무사가 말을 타고 있는, 작은 "테라 코타" 작품이며, 풍취가 가득한 신라 무인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2). 금속공예
신라 미술의 일반적인 경향은 고분에서 쏟아져 나온 금관을 비롯한 금속공예품과 토기등에서도 잘 나타난다. 신라의 금관을 위시한 금속공예는 대개가 매우 정교하고 호화로우며 또 간혹 현대적인 감각을 풍겨주기도 한다.
특히 금관의 입식(立飾)은 당시의 수목 숭배사상과 사슴 숭배사상을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믿어져 당시 신라인들의 토속신앙이나 사상도 엿보게 한다.
◈. 천마총금관 (天馬塚金冠)
국보 (國寶) 제 188 호
신라 (新羅) 5~6세기
재질-금속 (金屬) /금제 (金製) /유리/보석 /옥 (玉)
크기-높이 : 32.5 cm
출토지-경상북도 경주시
◈. 굵은고리금귀걸이 (金製太環耳飾)
국보 (國寶) 제 90 호
국적/시대/년대-한국 (韓國) /신라 (新羅)
재질-금속 (金屬) /금제 (金製)
크기-전체길이 : 8.7 cm /지름 : 3.8 cm
출토지-경상북도 경주시
<신라예술의 특징>
토속적이며 소박함
조화를 이룸
엄격하고 추상적이며 사변적인 성격을 강하게 띰
Ⅲ. 결론
우리 나라에서 미술이 시작된 것은 선사시대부터지만 좁은 의미에서 미술이 발전하기 시작한 것은 불교가 처음으로 전해졌던 고구려시대 부터라 할 수 있다. 목조와가(木造瓦家) 건축은 이미 낙랑군(樂浪郡:BC 108~AD 313)의 중국인을 통하여 소개되어 있었으나 불교건축을 계기로 하여 본격적으로 우리나라 미술이 등장하기 시작하였다. 불탑(佛塔)은 처음에는 중국식 고루목탑(高樓木塔)으로 동서북의 3면이 각각 독립된 금당(金堂)으로 둘러싸인 8각탑(角塔)이 있던 흔적이 고구려에서도 발견되고 있으나, 6세기경부터 화강암에 의한 석탑이 건조되기 시작했으며, 이것이 통일신라 시대인 8세기경에 이르러 한국 석탑이라고 할 수 있는 독특한 형식을 완성하게 되었다.
불상조각(佛像彫刻)은 고구려가 북위(北魏)를 주로 한 중국 북조(北朝)의 조각을 본보기로 하고 있는 데 반해서, 백제에서는 남조(南朝)의 영향을 받아 둥그스름한 얼굴에 온화한 백조의 미소라고도 할 수 있는 천진난만한 웃음을 머금은 불상이 만들어졌고, 고신라(古新羅)는 기본적으로는 북조불(北朝佛)에서 영향받아 엄숙하고 침울한 추상적인 작품을 만들어냈다. 정면시(正面視) 위주의 평면조각에서 입체조각으로 발전한 것은 900년경으로 보이며, 대부분의 미륵반가사유상(彌勒半跏思惟像)이 구리 또는 돌로 만들어졌다. 이 반가사유상을 포함하여 7세기 전반(前半)의 삼국 불상은 종래의 북위 전통에서 벗어나 북제(北齊)수(隋) 초당(初唐)의 양식을 차례로 반영하여 의복 밑의 신체에 보다 주력하였다.
7세기 중엽이 되면 고신라의 불상도 한국적인 온화함을 되찾고, 구리돌의 조각기술이 원숙해져 이후 통일신라의 황금기를 예시하고 있다. 회화는 압록강 중류 북안(北岸)의 퉁거우[通溝]와 대동강(大同江) 하류 북안의 용강(龍岡) 부근에 산재하는 고구려의 벽화고분에 남아 있을 뿐이다. 이것들은 후한(後漢)과 삼국시대의 중국벽화 고분에서 배워온 것으로, 발생기는 4세기 말경으로 추정된다. 4~5세기에 걸친 초기 고분벽화는 중국식인 주인 부부의 초상화를 주로 하고, 6세기에 접어들면 부부를 중심으로 한 중요 생활기록, 즉 풍속화로 바뀌며, 7세기 전반(前半)에는 사신도(四神圖)와 수목(樹木) 연화(蓮花)를 제재로 한 풍경화가 주류를 이룬다. 벽화고분은 백제의 공주(公州)와 부여(扶餘)에서 각각 볼 수 있으나 가야(伽倻)고신라 땅에도 전해져 근래에 고령영주(榮州)에서도 1기(基)씩 발견되었다. 금속공예는 처음에 낙랑군에서 비롯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중국의 육조미술(六朝美術)과도 긴밀한 관계를 가지고 크게 발전하였다.
고신라의 금관총(金冠塚)에서 나온 순금제 외관(外冠)은 잘 알려져 있지만, 이것이 3개의 수목형(樹木形) 입식(立飾)과 2개의 녹각형(鹿角形) 입식을 단 시베리아 초원(草原) 일대에서 유래된 특수 형식인 데 반해서, 고구려 백제는 일보 전진하여 포제(布製)의 모자에 수목형 또는 초화형(草花形) 투조(透彫)로 된 전식(前飾)을 달았고, 71년 발굴된 백제 무령왕릉(武寧王陵)의 유물은 고신라의 것보다 세련되었다. 고신라 토기는 3세기경에 성립한 초벌구이의 경도(硬陶)로서 고배(高杯)감()을 주체로 하고 있다. 표면 장식은 파상집선(波狀集線)기하학적 선(線)무늬 등으로 한정되어 소박고졸(古拙)한 기형(器形)과 더불어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삼국의 미술은 중국, 인도, 페르시아등 외국의 미술을 수용하고, 삼국간에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점차 많은 공통점을 지니게 되어, 후에 민족 미술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전체적으로 고구려, 백제, 신라의 미술은 소박한 아름다움을 지닌 예술이었다. 토우(土偶) 같은 것에 아직도 치기어린 괴기성을 가지고 있지만 대체로 이를 극복하고 있었다.
또 삼국시대에는 또한 유교, 불교, 도교의 삼교가 전래되어 우리 나라의 미술에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특히 불교와 도교가 이 시대 미술에 크게 영향을 미쳤다. 불교의 발전과 함께 사상적 내용이 풍부해지고 기술이 고도화됨에 따라 높은 미의 감각을 엿볼 수 있는 작품들이 많이 있다. 삼국시대의 예술은 건강한 아름다움을 지닌 사실적인 예술이었다.
♣.참고문헌
http://honam.ms.kr/~geeum/age/korea/2_samguk/samguk.htm
http://www.k-dongil.hs.kr/romila/k2.htm
http://user.ducsi.ac.kr/kyungjin/homepage/sang04/product/home/htm/3_4.htm
http://210.217.245.140/susuk/koreaart/sr4-2.htm
http://myhome.netsgo.com/kimkoo2727/삼국시대.htm
http://www.kwangsu.com/history/source/100-9.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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