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열과 가네코 후미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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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시작하는 말

2. 본 론
1) 박 열
① <박열 평전>의 박열의 삶
② <박열 평전>의 저자 소개
2) 가네코 후미코
① <가네코 후미코 평전>의 가네코 후미코의 삶
② <가네코 후미코 평전>의 저자 소개
3)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
①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의 만남, 그리고 아나키스트로서의 길
② 그와 그녀의 법정 투쟁기
4) 민족주의자? 아나키스트? 박열
① <박열 평전>의 저자의 박열에 대한 평가
② 동아시아 아나키즘의 특수성
③ 민족주의자? 아나키스트? 그리고 새로운 시각

3. 맺는 말

본문내용

에서 발현된 아나키스트라는 것에서 그 사실을 알 수 있다. 단재 신채호 선생의 예. <조세현 著, 동아시아 아나키즘, 그 반역의 역사, 책세상, 2001.> pp. 110.
즉 동아시아, 특히 조선의 아나키즘은 민족주의가 사상 저변에 깔린 아나키즘이었고 이로 인해 서구 아나키스트들에 의해 비판받기에 이른다. 내용인 즉, 자아에 대한 고민 없이 자아와 민족이라는 하나의 권력 개념을 분리하지 않고 아나키즘 운동을 한 것이며, 여기에서 동아시아 아나키즘의 한계가 보인다는 것이다. <위의 책.>. pp. 117
그리고 저자도 이 같은 생각에 동조하여 박열이라는 사람을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그것으로만은 박열을 설명할 수 없다.
③ 민족주의자? 아나키스트? 그리고 새로운 시각
박열의 행동을 보여주는 자료 중 예심에서의 신문 조서를 살펴보면 박열도 민족의 독립을 이야기하며 그것이 인민 해방의 첫 걸음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을 자주 볼 수 있다. 그러나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를 경험하지 못하고, 바로 식민지배를 당한 조선인이라는 것을 생각한다면 새로운 것을 생각할 수도 있다. 비록 아나키즘이 서구에서 시작된 개념이고, 그를 수용한 박열이지만 그 사상의 발전단계에서 민족이라는 개념을 정의내리는 것을 빼고는 그가 아나키스트, 허무주의자가 된 것을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다. 즉 박열의 사상 저변에는 식민지배를 당하며 차별받고 억압받는 일반 개념으로서의 조선의 인민이 있었고, 그 이전에 조선자체도 절대복종적 계급사회를 가지고 있다고 비판하는 그의 진술에서 볼 수 있듯이 이중적으로 억압받는 자신이라는 인민에 대한 고민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김삼웅 著, 박열 평전, 가람기획, 1996>. pp. 90
그는 단지 자신의 자아와 민족이라는 개념 자체를 가네코 후미코처럼 분리해 내지 못하고 그는 이것이 민족의 독립사상을 형성한 계기 중 하나였다고 말한다. 하지만 다시 생각한다면 절대복종적 관계와 다른 권위에 기대고 있던 조선을 비판한 것은 민족주의의 형성과는 다르다고 볼 수 있다. 민족주의란 것의 저변에는 자신의 민족에 대한 자긍심, 혹은 다른 민족과 평등하다는 생각이 있어야 하지만 박열은 이것을 비판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박열이 말하는 조선인에 대한 일본인의 차별과 억압, 착취를 권력자와 인민이라는 것으로 대체한다면 서구의 아나키즘과 다르지 않다. 즉 그는 자신도 모르는 새에 아나키스트가 되어 있었고, 가네코 후미코는 이것을 알고 함께 했던 것일 수도 있다.
민족과 자아라는 개념을 분리하고 나서, 기존 체제와 권위에 대한 비판에서 성립하는 아나키즘으로 그를 설명한다면 그는 민족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한 아나키즘을 수용한 민족주의자이다. 이것은 그의 신문 조서에서도 충분히 알 수 있다. 그러나 억압받는 민족, 그리고 피상적으로 자본주의나 정부에 억압받는 것이 아닌 확실한 식민지배국가라는 타자를 가진 민족, 그리고 그 중에 한 사람이 박열이었다면 그는 민족주의자가 아닌 단지 권위와 권력을 타도하는 데 있어 우선으로 타도해야 할 대상을 확실히 보유하고 그 대상에 대하여 반역하는 사상을 자발적으로 구성해 낸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즉 박열의 아나키즘을 서구의 그것과 대비하여 당시 조선 사회라는 특수성에서 발달한 형태로 인식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것에 대가 내 나름대로 이름을 붙인다면 동아시아 아나키즘이라기보다는 우선적 타도 대상을 보유했을 뿐인 아나키즘인 것이고, 박열은 그러한 사람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바라본다면 민족주의와 독립에 대한 열망을 아나키즘으로 가린 박열이라는 민족주의자라고 평가하는 것이 아닌, 아나키즘에서 이야기하는 사회를 구성하는데 있어서, 가장 확실한 타도 대상인 일본 제국주의라는 대상을 가진 박열이라는 아나키스트라고 평가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설사 그가 민족주의자였다 하더라도 가네코 후미코와 만나고 사랑하고, 살며, 죽음 앞에서 의연했던 그의 1922년부터 1926년까지의 기간 동안에는 훌륭한 한 사람의 아나키스트로서 살아간 것임에 분명하다. 그렇지만 끝내 자신을 아나키스트로서 정의하지 못하고 긴 수감생활 동안 어떤 이유에서인지 모르겠지만 전향하였고 이 사실에 대해서는 <야마다 쇼지 著, 가네코 후미코, 산처럼, 2002>의 366페이지에 서술되어 있다.
, 민족주의자가 되었던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3. 맺는 말
내가 박열을 선택한 이유 중 이야기 하지 않은 것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바로 나 자신도 아나키즘에 동조하는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박열보다 더 사상적으로 진보한 가네코 후미코와 비교하면서 이 글을 쓰는 것도 내가 박열보다 가네코 후미코와 비슷한 사상을 가졌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리고 내용을 살펴보고 그와 그녀의 만남과 법정 투쟁기를 읽으면서 박열은 단지 아나키즘으로 민족주의를 가린 민족주의자만은 아니었다는 것을 알았다. 아나키스트로서 생각해 보건대, 굳이 박열을 민족주의자라고 설명한다는 것은 서구의 잣대로만 생각할 수는 없었다. 크로포트킨과, 프루동의 이야기도 지금의 아나키즘에서는 이겨내야 할 권위에 불과한 것이다. 즉 새로운 의미의 아나키스트로서 박열을 바라보는 것이 이 글의 목표였고, 나는 그것에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었다. 바로 박열은 아나키즘을 수용한 민족주의 자일 수도 있지만, 눈앞의 현실에 가장 확실한 타도 대상을 가진 행복했던 아나키스트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에 대한 내 생각은 다른 것보다는 박열 자신의 사상을 포함했을 시를 인용하는 것이 더 적절한 설명일 것이라 생각하며 이 글을 끝낸다.
大我와 無我 또한 나로부터요
萬物과 萬我 모두가 하나의
큰 덩어리로다.
영특한 학자, 설교가는
빛을 못 보고
자유인은 크게 분방하도다
천지라는 수레는 돌아가는 것
본래 높고 낮음이 없도다
세계는 하나의 둥근 공인데
어느 곳이 궁벽진 곳이겠는가
- 박열 獄中詩
※ 참고문헌
김삼웅 著, 박열 평전, 가람기획, 1996
야마다 쇼지 著, 가네코 후미코, 산처럼, 2002
조세현 著, 동아시아 아나키즘, 그 반역의 역사, 책세상, 2001
이호룡 著, 한국의 아나키즘-사상편-, 지식산업사,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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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6.10.05
  • 저작시기2006.9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366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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