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옹(佐翁) 윤치호(尹致昊)의 내면세계를 통해 본 식민지 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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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좌옹(佐翁) 윤치호(尹致昊)의 내면세계를 통해 본 식민지 시기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머리말

2. 내용소개

3. 내용비평

4. 결 론

본문내용

바로 기존의 친일파 연구 경향의 문제점에 관한 것이다. 그동안의 친일파 연구는 거의 대부분 누가 친일파이고 그의 친일행적이 무엇인지 조사 정리해 대중에게 알리는 수준에 머물러 왔다. 물론 해방 직후 친일파 청산을 이루지 못했고, 1950년대 이후 오랫동안 친일문제가 은폐되어 대중 사이에서 잊혀져 왔다는 뼈아픈 현실을 고려하면, 또 친일파 연구가 아직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너무나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더 이상 친일파 문제를 ‘윤리적’ 관점에서 ‘비난’하는 것, 다시 말해서 당대 최고의 엘리트나 경제인이 사리사욕에 눈이 어두워 양심과 지조를 버리고 민족을 배신했다는 투의 시각은 역사 연구의 올바른 태도는 아닌 것 같다. 그런 친일파들이 전혀 없었다는 것이 아니라, 있다 하더라도 그들은 ‘역사적 맥락’에서는 별로 중요치 않다는 말이다. 어차피 그런 인간들은 어느 시대 어느 사회를 막론하고 다 있게 마련이다. 즉 그것은 개인 윤리, 더 나아가서는 품성문제이지 역사적인 문제라고 보기는 어렵다. 따라서 엘리트든 경제인이든 자발적으로 친일하게 되는 시대상황과 사상적 근거를 확인해서 ‘역사적 맥락’에서 ‘비판’해야 한다.
일제하의 조선인 명망가들이 친일활동을 벌이게 된 진정한 이유, 즉 그들의 내면세계를 파악하는 것은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다. 특히 중일전쟁 이후 친일의 강도가 높아졌거나 친일파로 전향한 명망가들의 경우는 더욱 어려운 점이 있다. 중일전쟁 이후 전시체제가 점차 장기화, 고도화되고 일제가 강도 높은 민족말살정책을 시행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명망가들에게는 상당한 외압이 되었을 수도 있다. 따라서 그들의 친일활동을 순전히 자발적인 것으로 보는 데는 무리가 따를 수 있다. 그러나 명망가들의 친일을 단순히 시대적 상황이나 일제의 외압에 의한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보기에는 그들의 친일활동이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너무나 굵고 선명하다. 그들이 자서전이나 회고록에서 이 부분에 대해 진솔하게 고백했다면 좋으련만, 거의 대부부응ㄴ 자신의 행위를 합리화 하거나 아예 언급조차 하지 않고 있다.
- 위 논문 -
이와 같은 맥락에서 볼 때 윤치호는 남다른 데가 있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그가 평생에 걸쳐 일기를 썼다는 점에 우린 주목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그의 일기는 상당수의 자서전이나 회고록의 경우처럼, 과거에 대한 기억에 잘못이 있거나 현재적 관점에서 과거를 돌아보며 자신의 행위를 과장 또는 은폐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물론 한 개인의 일기를 기본 자료로 삼는 데는 적지 않은 문제점이 있을 수 있다. 그런데 『윤치호 일기』의 내용은 대체로 진솔한 편이다. 아울러 그의 일기의 주요내용은 그가 신문, 잡지에 기고한 글이나 강연한 내용 및 그의 행보와 거의 일치 된다. 따라서 그의 일기는 일제하 그의 내면세계, 특히 국내외 정세 인식과 조선인의 진로에 대한 구상 및 친일화의 계기 등을 규명하는데 대단히 유용한 자료라 할 수 있다.
4.나오며
역사적 인물을 연구하는 궁극적인 목적이 위인이나 열사의 공적을 밝히는 데 있는 것만이 아니고, 과거의 역사를 심층적으로 이해하여 역사의 진실과 그 의미를 파악하는데 있다고 한다면 역사의 격량을 올바로 헤쳐간 인물뿐만 아니라 그 격량에 휩쓸려 빗나간 인물에 대한 연구도 중요시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더욱이 한국근대사가 개화의 추진과 독립의 유지에 실패한 역사였다고 한다면, 당시의 지식인, 지도적 인물들의 사상과 실천방법론 및 행동성향 속에 내재되어 있던 실패의 요인을 규명함으로써 한국근대사가 실패하게 된 원인의 일면을 밝힐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볼 때, 윤치호가 개화기에 민중의 추앙을 받은 민중지도자였다가, 일제 시대의 민중의 지탄을 받은 친일 협력자로 변모한 사실은 오히려 그에 대한 연구의 필요성을 더욱 높여 준다고 할 수 있다.
막스 브로트가 “일기문이란 대개 저기압 즉 극심하게 괴로운 시간만이 기록되고 고기압은 기록되지 않는 불완전한 기압계의 곡선과 같은 것이라” 지적했듯이, 일기는 대체로 격한 감정의 기록, 곧 부정적인 감정의 기록이며, 때로는 ‘의도적인 기록’ 곧 자기 행동의 합리화를 위한 기록이기도 하다. 하지만 일기가 자료로서 지니는 이러한 제약성을 고려한다 해도, 역사상황에 있어서 윤치호가 어떠한 생각을 가지고 어떻게 행동 했는가 라는 의식의 흐름을 중요시하는 과제의 흐름으로 볼 때 『윤치호 일기』 가 갖는 사료로서의 역할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윤치호란 인물을 평가할 때 우선 좌지우지 되는 것은 친일에 대한 진상규명이라고 생각한다. 객관적으로 봐서 윤치호는 일제와 많은 교류를 했고 때문에 친일파라고 규정되어 있다. 1948년 9월 민족정경문화연구소가 친일파를 모두 9개의 범주로 나누었는데, 그 가운데 윤치호를 ‘자진적으로 나서서 성심으로 활동한 자’ 중 ‘친일과 전쟁협력이 옳지 않음을 알면서도 자기의 재산 또는 지위의 보전, 신변의 안정 등을 위하여 행한자’의 대표적 인물로 선정한 것이다.
- 위 논문 -
하지만 나는 이번 레포트를 통해서 윤치호를 그냥 친일분자로 몰아버리기 보다는 그 이면에 숨겨진 윤치호의 내면세계와 우리 민족을 위한 노력이 있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된다는 교훈을 함께 얻고 가는 것 같아 뿌듯한 심정이다. 『윤치호 일기』를 읽다보면 나라와 민족에 대한 그의 애끓는 마음을 충분히 헤아릴 수 있다. 객관적으로는 나라와 민족을 저버린 것이 틀림없지만 우리는 이 그 일말의 노력까지 알아야한다고 생각한다. 또한 나는 이 작업을 통해 무엇에 접근하고자 할 때 일면만 보는 것이 아니라 다각도로 접근하는 유연한 사고를 키웠으며, 여러 자료와 비교 검토 해보는 작업을 통해 여러 자료를 관리하는 방법을 터득한 것 같다.
★참고문헌
김상태, 「일제하 윤치호의 내면세계 연구」, 『역사학보』, 역사학회, 2000.
유영렬, 「개화기 윤치호 연구」, 고려대학교 대학원, 1984.
김상태, 『윤치호 일기』, 역사비평사, 2001.
좌옹윤치호문화사업회, 『윤치호의 생애와 사상』, 을유문화사, 1998.
좌옹윤치호문화사업회, 『좌옹 윤치호 선생 약전』, 을유문화사, 1998.
  • 가격2,000
  • 페이지수11페이지
  • 등록일2006.10.06
  • 저작시기2006.9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366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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