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저자에 대하여
나쓰메 소세키(夏目漱石)는 1867년 1월 5일에, 당시는 아직 에도(江戶)라고 불리고 있었던 도쿄의 우시고메 바바시타 요코초(현재 도쿄의 가장 중심가인 신주쿠쿠 기쿠이초)에서 태어났다.
5남 3녀 가운데 막내둥이로 태어난 나쓰메 소세키는 1890년에 동경제국대학 문과대학 영문과를 졸업했다.
졸업한 뒤 곧 교단에 서서 동경고등사범학교(東京高等師範學校) 등의 강사를 거쳐 1895년부터 이듬해까지 시코쿠(四國)의 마쓰야마중학교(松山中學校)의 영어 교사를 한 적도 있다. 그때의 교사 생활의 체험을 살려 후에 발표한 작품이 도련님(坊っちゃん) 이다.
이후 나쓰메 소세키는 규슈(九州)의 구마모토(熊本)에 있는 제오고등학교(第五高等學校)로 학교 근무처를 옮겨 교감 대리까지 되었다.
그런 와중에 1900년 5월에 갑자기 문부성으로부터 제오고등학교(第五高等學校) 현직에 있는 채로 영어 연구를 위해 만 2년 간 영국으로 유학을 명한다 라는 사령장을 받게 되었다.
나쓰메 소세키는 문부성 제1회 관비 유학생으로 영어 연구를 위해 유학을 명령 받은 것이었다.
약 3년간의 영국 유학 생활을 마치고 귀국한 그는 동경제국대학의 강사로서 영문학을 강의하게 되었다.
영문학자로서의 그의 이름은 차츰 널리 알려지게 되었지만, 그 자신은 이상하게도 대학을 갓 졸업할 무렵부터 일본인으로서 영문학을 연구하는 일에 불안과 허망함을 느껴 오고 있었다.
영국에 유학해서 영문학을 낳은 토대를 몸소 느끼게 되었을 때 그 느낌은 한층 강해져서 교직 생활에 견딜 수 없는 불쾌감을 느끼게 되었다.
그런 답답하고 우울한 마음에 빠져 있던 나쓰메 소세키가 노일전쟁이 끝나던 해인 1905년에 마사오카 시키(正岡子規) 통해 알게 된 친구 다카하마 쿄시(高浜虛子)의 권유로 쓴 작품이 나는 고양이이다 이다.이어서 마쓰야마중학교(松山中學校) 영어교사 시절의 체험을 토대로 한 도련님(坊っちゃん) 을 1906년에 호토토기스 라는 잡지에 발표하여 주목을 받았다.
같은 해에 풀베개(草枕) 를 新小說 에 발표했다.
1907년에는 당시 일본인의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일이었지만 나쓰메 소세키는 동경대학 영문과 교수를 그만두고 아사히신문사(朝日新聞社)에 입사해서 소설가로 나설 결심을 굳혔다.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 수필, 하이쿠, 한시 등 다양한 작품을 읽어보면 그는 일본 근대문학사에 있어서 위대한 존재라는 것을 알 수 있게 될 것이다.또한 그의 결벽함과 순수함, 지식인으로서의 풍부한 교양과 차원 높은 윤리관 등은 다음 세대의 일본의 많은 근현대 작가들에게 깊은 영향을 미쳤다.
더욱이 그의 초상이 일본 지폐 천엔(千円)권 속에 아로새겨지고 난 이후 계속 변함없이 그에 대한 붐이 현재 일본에서 일고 있는 것도 부인하기 어려운 현실이다.
현재는 해외에까지 그 명성이 널리 전해져 일본의 경제발전과 더불어서 중국, 미국, 영국을 비롯한 한국의 국내에서도 일본 근대작가 가운데 가장 폭넓게 연구되고 있는 작가이다.
일본 천엔 짜리 지폐에 삽입된 나쓰메소세키의 모습은 점잖은 표정으로 콧수염을 기르고 무엇인가를 지긋이 생각하는 중후한 표정을 짓고 있다.
일본 사람이 제일 많이 사용하는 천엔(千円)짜리 지폐, 그 지폐와 함께 그의 초상은 일본을 비롯하여 온 세계를 떠돌아다니고 있다.
http://www.soseki.co.kr/ 에서 인용함.
나쓰메 소세키(夏目漱石)는 1867년 1월 5일에, 당시는 아직 에도(江戶)라고 불리고 있었던 도쿄의 우시고메 바바시타 요코초(현재 도쿄의 가장 중심가인 신주쿠쿠 기쿠이초)에서 태어났다.
5남 3녀 가운데 막내둥이로 태어난 나쓰메 소세키는 1890년에 동경제국대학 문과대학 영문과를 졸업했다.
졸업한 뒤 곧 교단에 서서 동경고등사범학교(東京高等師範學校) 등의 강사를 거쳐 1895년부터 이듬해까지 시코쿠(四國)의 마쓰야마중학교(松山中學校)의 영어 교사를 한 적도 있다. 그때의 교사 생활의 체험을 살려 후에 발표한 작품이 도련님(坊っちゃん) 이다.
이후 나쓰메 소세키는 규슈(九州)의 구마모토(熊本)에 있는 제오고등학교(第五高等學校)로 학교 근무처를 옮겨 교감 대리까지 되었다.
그런 와중에 1900년 5월에 갑자기 문부성으로부터 제오고등학교(第五高等學校) 현직에 있는 채로 영어 연구를 위해 만 2년 간 영국으로 유학을 명한다 라는 사령장을 받게 되었다.
나쓰메 소세키는 문부성 제1회 관비 유학생으로 영어 연구를 위해 유학을 명령 받은 것이었다.
약 3년간의 영국 유학 생활을 마치고 귀국한 그는 동경제국대학의 강사로서 영문학을 강의하게 되었다.
영문학자로서의 그의 이름은 차츰 널리 알려지게 되었지만, 그 자신은 이상하게도 대학을 갓 졸업할 무렵부터 일본인으로서 영문학을 연구하는 일에 불안과 허망함을 느껴 오고 있었다.
영국에 유학해서 영문학을 낳은 토대를 몸소 느끼게 되었을 때 그 느낌은 한층 강해져서 교직 생활에 견딜 수 없는 불쾌감을 느끼게 되었다.
그런 답답하고 우울한 마음에 빠져 있던 나쓰메 소세키가 노일전쟁이 끝나던 해인 1905년에 마사오카 시키(正岡子規) 통해 알게 된 친구 다카하마 쿄시(高浜虛子)의 권유로 쓴 작품이 나는 고양이이다 이다.이어서 마쓰야마중학교(松山中學校) 영어교사 시절의 체험을 토대로 한 도련님(坊っちゃん) 을 1906년에 호토토기스 라는 잡지에 발표하여 주목을 받았다.
같은 해에 풀베개(草枕) 를 新小說 에 발표했다.
1907년에는 당시 일본인의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일이었지만 나쓰메 소세키는 동경대학 영문과 교수를 그만두고 아사히신문사(朝日新聞社)에 입사해서 소설가로 나설 결심을 굳혔다.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 수필, 하이쿠, 한시 등 다양한 작품을 읽어보면 그는 일본 근대문학사에 있어서 위대한 존재라는 것을 알 수 있게 될 것이다.또한 그의 결벽함과 순수함, 지식인으로서의 풍부한 교양과 차원 높은 윤리관 등은 다음 세대의 일본의 많은 근현대 작가들에게 깊은 영향을 미쳤다.
더욱이 그의 초상이 일본 지폐 천엔(千円)권 속에 아로새겨지고 난 이후 계속 변함없이 그에 대한 붐이 현재 일본에서 일고 있는 것도 부인하기 어려운 현실이다.
현재는 해외에까지 그 명성이 널리 전해져 일본의 경제발전과 더불어서 중국, 미국, 영국을 비롯한 한국의 국내에서도 일본 근대작가 가운데 가장 폭넓게 연구되고 있는 작가이다.
일본 천엔 짜리 지폐에 삽입된 나쓰메소세키의 모습은 점잖은 표정으로 콧수염을 기르고 무엇인가를 지긋이 생각하는 중후한 표정을 짓고 있다.
일본 사람이 제일 많이 사용하는 천엔(千円)짜리 지폐, 그 지폐와 함께 그의 초상은 일본을 비롯하여 온 세계를 떠돌아다니고 있다.
http://www.soseki.co.kr/ 에서 인용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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