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서에 기록된 예수는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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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I. 서 론

II. 본 론
1.예수의 연구 흐름
2.나사렛 예수
1) 예수는 존재 하였는가?
2) 복음서 이외의 기록된 증거
3) 고고학적 증거
3.기록된 예수

III. 결론

본문내용

발견은 예수 시대 무렵 팔레스틴 지역의 십자가형에 대한 첫 번째 독립적인 증거가 되었다. 이러한 증거가 복음서 이야기가 무책임한 조작이라는 견해를 반박하는데 쓰인다.
아리마대 요셉이 예수의 시체를 세마포로 쌌다는 이야기는 사복음서 모두 나온다. 투린(Turin)의 성당에 있는 4 미터가 넘는 긴 세마포 조각이 실제로 예수를 쌌던 천이라고 오랫동안 주장해왔다. 투린의 수의에는 핏자국 같은 것이 보이고 팔레스틴 근처에서 자라는 식물의 꽃가루가 발견되었다. 무엇보다도 흥미로운 것은 몸과 얼굴의 흔적이 음화로 찍혀있다는 사실이다.
1988년에 이 천조각을 가지고 정밀한 방사선 탄소 연대 측정을 해본결과 어떤 의심의 여지도 없이 그 수의가 중세의 것임이 밝혀졌다.
그러나 과학적 연구결과 1세기의 물건이라고 할지라도 그것이 어떻게 예수와 관계있는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겠는가? 1세기에 참혹한 죽음을 맞이한 다른 사람들도 매장할 때 세마포로 싸여졌을 것이다.
본장에서 우리는 폭 넓게 기록된 또는 기록되지 않은 증거에 관해서 논하였다. 복음서 연구에서 그 중요성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최근 몇십 년 동안 이 증거등에 의해서 예수의 생애와 가르침의 사회적, 문화적, 종교적 배경에 관한 우리의 지식에 중요한 진전을 이루게 한 불과 몇가지 예만을 포함시킬 수 있었다.
역사가가 ‘중립적인’ 증거를 찾는 것은 거의 불가능 하다.복음서 이외의 모든 증거에 대해서도 비판적으로 접근해야하나 복음서 기자의 예수의 의미에 관한 신학적 신념 때문에 그들의 이야기가 역사가들에게 무가치하다는 생각은 오해이다. Ibid. p181~183
3. 기록된 예수(역사속 예수)
예수님은 유대인이셨다. 이 사실은 자명할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쉽게 잊혀지는-특히 서구의 현대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는-사실이다. 우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의 사람-우리와 같은 습관과 관심사를 갖고 있으며 우리와 같은 사고방식에 익숙해진 분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 결과 우리는 보통 예수님의 말과 행동이 그 당시와 그 당시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를 갖고 있었는가를 간과한다.
예수님을 그 분 자신의 역사적 문화적 배경 내에서 생각하는 때로는 지루한 훈련을 회피함으로써 우리는 그 분의 행동과 말씀 중 많은 것의 의미를 파악하지 못하게 된다. 예를 들어, 요한복음 4장에 나온 예수님과 사마리아 여인과의 대화가 얼마나 놀라운 것인지를 잘 깨닫지 못한다. 또한 우리는 예수님의 치유 행위에서 손을 대는 것의 중요성을 분별하지 못한다. 역사적 배경에는 조금도 주의를 기울이지 않은 채, 우리는 예수님이 “죄인과 함께 식사하신” 것이 뭐가 그리 대단한 것이었을까 라고 생각한다. 실로 케네스 베일리(Kenneth Bailey)가 보여주고 있듯이, 만일 예수님이 누구셨으며, 그가 언제 살았고, 어떤 종류의 사람들에게 말씀 하셨는가를 우리가 기억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심지어 예수님이 비유로 하신 가르침에 속해있는 중요한 점들까지도 잃어버린 채로 있는 것이다. 예수님은 성육신하신 말씀이셨지만 또한 그분은 1세기의 유대인이셨다. 그렇기 때문에 그분은 그러한 역사적 제한 내에서 활동 하셨다. 이것은 성육신의 대가였다. 예수님의 메시지를 이해하려 한다면, 그분이 그 당시에 어떤 분이었는지를 심각하게 고려해야한다. 죠엘 그린, 「어떻게 복음서를 읽을 것인가」김동건역 (서울 : 한국기독학생회출판부 2004) p42~43
이런 “문화적 간격”만이 예수님이 처했던 역사적 문화적 배경을 고려해야하는 이유는 아니다. 기독교가 그 기원인 유대교와 마찬가지로 역사적 종교라는 사실을 기억 해야만 한다. 즉 기독교 신앙은 실제 역사 내에서 실제 인물들을 다루시는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실제 역사에서 예수님 안에서 어떻게 자신을 계시 하셨는가를 더 많이 이해하면 이해할수록 우리는 주님과 우리의 신앙에 대해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예수님이 팔레스타인, 그리고 세계의 역사라는 무대에 입장하도록 역사적 문화적 배경막을 설치하는 일이다.
이 전체 문제에 초점을 맞추기 위해 예수님의 식탁교제가 명백히 그분의 사역의 특징이면서 동시에 당시의 종교적인 사람들에게는 걸맞지 않는 것으로 보여지게 된다. 한편 예수님께서 자신이 오신 이유가 죄인들과 함께 식탁에 앉아 교제하기 위함이라는 사명에 대한 솔직한 진술을 발견한다(막2:15-17). 게다가 죄인들과 먹고 마시는 것이 예수님의 전형적인 행동 이었다는 인상을 심어주는 수많은 다른 본문들도 있다.(특별히 마11: 18-19; 눅15:2; 19:7) Ibid. p44
III. 결론
예수 연구에 있어서 원문이 없음은 “은혜”이다.
만약 원문이 있었다면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고, 글을 모르는 자는 그 은혜를 누리지 못하는 저주받은 자로 살 것이다. 아마도 원문을 소유한자가 있었다면 그는 자신이 예수라고 떠들었을 것이다.
복음서 이외의 글이나 고고학적 증거나 자료가 없이도 예수는 자신을 얼마든지 드러낼 수 있다.
그러나 우리의 눈높이와 청각의 수준에 맞추시려 이 땅에 오셔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모든 자료들을 사용하시어 자신을 드러내도록 허락하셨다.
만약 우리에게 완벽하게 주어진 자료들이 있었다면 그것 또한 우리의 우상이 되었을 것이다.
예수를 아는데 있어서 복음서가 제시하는 것만으로도 인류역사 모든 것을 다 동원 했어도 아직 다 알지 못함, 또한 은혜이다
「복음 속에서 구속의 메시지가 상아탑으로 나타나지 않고, 단지 일련의 개념들, 명제들의 목록으로 진술되어있지 않을 지라도 복음은 숨을 쉰다. 복음은 걷고 말한다. 복음은 바로 사람이신 나사렛 예수님이시다.」
지금도 모든 사람이 알기를 호소하시는 살아계신 분으로 알게 하시는 은혜에 희열을 느끼며 이글을 정리 한다.
참고문헌
죠엘 그린, 정옥배 역『「어떻게 복음서를 읽을 것인가』,(서울 : 한국기독학생회출판부, 2004)
그레이엄 스탠턴 저, 김동건 역『복음서와 예수』, (서울: 대한 기독교 서회, 1996)
인터넷 자료http://blog.naver.com/holyhillch?Redirect=Log&logNo=600225743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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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6.11.01
  • 저작시기20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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