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Ⅴ. 굴원(屈原)과 초사(楚辭)
Ⅵ. 음악과 중국 문학
Ⅶ. 무아지경 (無我之境)
- 도연명과 자연을 중심으로
Ⅷ. 중국 시의 멋과 맛
-이백(李白)과 두보(杜甫)를 중심으로
Ⅵ. 음악과 중국 문학
Ⅶ. 무아지경 (無我之境)
- 도연명과 자연을 중심으로
Ⅷ. 중국 시의 멋과 맛
-이백(李白)과 두보(杜甫)를 중심으로
본문내용
다. 그는 자기 한 사람만의 슬픔이나 괴로움으로써가 아니라, 이러한 슬픔이나 괴로움을 겪었거나 이해하는 모든 사람들의 슬픔이나 괴로움으로써 노래하였다.
이백이 흘러가는 시간을 통하여 어쩔 수 없는 숙명적인 슬픔을 느끼고 될 수 있는 대로 술 마시며 즐기려던 것과는 달리, 두보는 흐르는 세월을 통하여서도 언제나 어지러워진 사회와 살기 어려워진 백성들을 먼저 느꼈다. 이백이 인간적인 본질에서 오는 슬픔을 그대로 인정한 데 비해, 두보는 인간의 모든 가능성을 동원하여 그 슬픔에 저항하려고 노력하였다. <강남에서 이구년을 만남>이란 두보의 시가 있다. 이시에서는 전쟁이 사람들을 얼마나 비참하게 만드는가, 또 자연은 이처럼 아름다운데 사람들의 현실은 왜 이렇게 어지러운가 하는 한탄이 숨어있다. 두보의 한탄은 그 개인의 한탄이 아니라 온 인류의 한탄인 것이다.
4. 이백 두보와 자연
이백은 술과 함께 달을 좋아하였다. <술잔을 들고 달에게 묻는다>는 이백의 시에서처럼 이백은 맑고 아름다운 달을 사랑했지만, 또한 달을 보면서도 언제나 시간의 흐름 속에 늙어 죽는 인생의 숙명을 느꼈다. 그는 모순되고 어지러운 사람들 세상에 대한 분만을 술로 씻어 버리고, 자연 속에 자기를 잊고 융화하려는 몸부림에서, 달을 변함없는 자기 이상의 상징으로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달빛 아래 홀로 술마시다>라는 시에서 노래한 것처럼 자기 그림자와 달을 벗 삼아 술에 취하였지만 달은 언제나 이백에게 흐르는 시간을 느끼게 하고 아울러 숙명적인 시름을 일깨워 준다. 이외의 이백의 시에서 무수히 나오는 달은, 모두 슬픔이 깃들인 달이라고 보아도 좋다. 두보의 우수가 사회나 사람들에 대한 성실한 배려에서 우러나온데 비해, 이백의 슬픔은 사람의 숙명에 대한 개인적인 각성에서 생겨난 것이다.
달은 이백에게 있어서는 자연을 상징하는 것이라 보아도 좋다. 자연의 영원함과 아름다움을 달을 통해서 집약적으로 그는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달은 그에게 시름을 안겨 주기도 하지만 한편 영원한 벗도 되고 귀의처도 되는 것이다. <경정산에 홀로 앉아서>라는 시도 자연 속에 자신을 융화시키려는 그의 이상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에 비하여 두보는 착실하게 자연을 관찰한다. 세상의 불합리와 불공평에 대한 가슴 속에 서린 분만이, 자연에 대하여도 성실하고 자세하게 관찰하도록 만들었을 것이다. 그의 시는 바로 자연과 장엄한 아름다움을 다투는 듯이 보이기도 한다. <태산을 바라봄>이란 그의 시에서 시의 표현이 마치 태산의 장중하고 높고 큰 모습과 그 위세를 다투는 듯이 느껴진다. 두보는 성실한 자기의 인격을 통하여 자연을 보고 그것을 시로 읊었으므로 문구에도 땀 흘려 다듬고 깎은 흔적이 느껴진다. 따라서 어떤 때는 자연보다도 오히려 색채가 곱고 여운이 아름다운 작품도 짓게 된다. <절구(絶句)>라는 시의 첫 구에선 파란 빛(강)과 흰 빛(새)의 아름다운 한 폭의 수채화를 그리고 있다. 이 색깔의 대조는 상상 속의 아름다운 자연을 극점에 이르도록 이끌어 준다. 둘째 구에서도 푸른 산 속에 붉게 피어 있는 꽃이 색깔의 대조를 이룬다.
두보는 자연을 성실한 태도로 대하고 노래했지만 자기를 잊으려는 노력은 별로 하지 않았다. 오히려 완전한 자연 속에서 불완전한 자기의 존재를 의식하고, 언제나 여러 사람들 모두를 걱정하였다.
5. 중국 시와 독음
중국에서 글귀를 깎고 다듬는다는 것은 뜻에 있어서 멋진 표현을 추구하는 한편 그 글귀의 독음이 글귀의 뜻과 잘 들어맞는 것을 찾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따라서 알맞은 글귀를 찾아 성실하게 시를 써 온 두보의 시를 보면 <독음>이 시에서 차지하는 묘미를 잘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두보의 <절구> 시 첫 두 귀의 독음을 중고대(中古代)의 음으로 환원시켜본다.
강(江) 벽(碧) 조(鳥) 유(逾) 백(白) / 산(山) 청(靑) 화(花) 욕(欲) 연(然)
이러한 오언시는 한 구절이 다시 두 자와 석자, 곧 “강벽”과 “조유백”, “산청”과 “화욕연”으로 갈라진다. 이 두귀의 시를 소리 내어 읽어보면 한 자 한 자의 음성에서 매우 강한 인상을 느끼게 된다. 첫 귀는 <강>이란 여운이 있는 첫째 소리에 <벽>이란 짧게 끊어지는 소리가 붙어 강렬한 조화를 이룬다. 그 뒤 석 자도 <조유>라는 평탄한 소리에 다시 <백>이라는 짧고 격한 소리가 붙어서 같은 효과를 낸다. 그리고 뜻에 있어서는 “강의 파랗고” “새는 희다”는 색깔의 대조와 소리에 있어서도 “강벽”과 “조유백”은 소리의 강렬한 대조를 이룬다. 이 시는 벌써 독음 자체가 음악적인 구성으로써 시의 뜻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둘째 귀를 보면 “산청”이란 부드럽고 여운 있는 소리 뒤에 <화>란 평탄한 소리가 붙고 다시 <욕>이란 격한 소리에 이어 <연>이란 여운있는 소리가 뒤따른다. “산청”이란 음은 산의 푸르고 평화로운 색깔과 어울리고 “화욕연”이란 여러 가지 성격의 소리의 결합은 붉은 색깔과 어울린다. 유명한 두보의 <춘망(春望)> 시를 보자.
국파산하재, 성춘초목심. / 감시화천루, 한별조경심.
“국파”란 격렬한 음이 혼란에 빠진 조국과 어지러운 백성들을 생각하는 두보의 격렬한 감정을 잘 나타내 준다. “산재”란 음에서 <재>는 짧게 끊어지게 발음되는 소리이며, 부드러운 “산하”란 소리 뒤에 붙는다. “성춘초목심”도 전체적으로 의연한 아름다운 자연과 자연에 대한 반사로서 느껴지는 슬픔이 배어 있는 소리이다. “감시”는 음자체가 “시국을 느끼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하며, “화천루”란 변화 많은 소리는 애수의 파동을 느끼게 한다. “한별”의 <별>은 본시 <볏>으로 짧게 끊어지는 소리여서 “이별이 한이 된다”는 감정과 똑같은 기분을 느끼게 하고 “조경심”은 <한>뒤에 오는 착잡한 감정을 나타내는 듯하다.
이로써 중국시에 있어서 한 자 한 자의 음이 시에서 차지하고 있는 지위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는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중국시는 소리 내어 읽어 보아야 진실한 시의 맛을 이해 할 수 있다. 최소한 우리나라 음으로라도 중국시를 읽어야 이백처럼 거침없는 시원한 멋이나 두보처럼 존엄하고 위대한 맛을 제대로 감상하게 된다.
이백이 흘러가는 시간을 통하여 어쩔 수 없는 숙명적인 슬픔을 느끼고 될 수 있는 대로 술 마시며 즐기려던 것과는 달리, 두보는 흐르는 세월을 통하여서도 언제나 어지러워진 사회와 살기 어려워진 백성들을 먼저 느꼈다. 이백이 인간적인 본질에서 오는 슬픔을 그대로 인정한 데 비해, 두보는 인간의 모든 가능성을 동원하여 그 슬픔에 저항하려고 노력하였다. <강남에서 이구년을 만남>이란 두보의 시가 있다. 이시에서는 전쟁이 사람들을 얼마나 비참하게 만드는가, 또 자연은 이처럼 아름다운데 사람들의 현실은 왜 이렇게 어지러운가 하는 한탄이 숨어있다. 두보의 한탄은 그 개인의 한탄이 아니라 온 인류의 한탄인 것이다.
4. 이백 두보와 자연
이백은 술과 함께 달을 좋아하였다. <술잔을 들고 달에게 묻는다>는 이백의 시에서처럼 이백은 맑고 아름다운 달을 사랑했지만, 또한 달을 보면서도 언제나 시간의 흐름 속에 늙어 죽는 인생의 숙명을 느꼈다. 그는 모순되고 어지러운 사람들 세상에 대한 분만을 술로 씻어 버리고, 자연 속에 자기를 잊고 융화하려는 몸부림에서, 달을 변함없는 자기 이상의 상징으로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달빛 아래 홀로 술마시다>라는 시에서 노래한 것처럼 자기 그림자와 달을 벗 삼아 술에 취하였지만 달은 언제나 이백에게 흐르는 시간을 느끼게 하고 아울러 숙명적인 시름을 일깨워 준다. 이외의 이백의 시에서 무수히 나오는 달은, 모두 슬픔이 깃들인 달이라고 보아도 좋다. 두보의 우수가 사회나 사람들에 대한 성실한 배려에서 우러나온데 비해, 이백의 슬픔은 사람의 숙명에 대한 개인적인 각성에서 생겨난 것이다.
달은 이백에게 있어서는 자연을 상징하는 것이라 보아도 좋다. 자연의 영원함과 아름다움을 달을 통해서 집약적으로 그는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달은 그에게 시름을 안겨 주기도 하지만 한편 영원한 벗도 되고 귀의처도 되는 것이다. <경정산에 홀로 앉아서>라는 시도 자연 속에 자신을 융화시키려는 그의 이상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에 비하여 두보는 착실하게 자연을 관찰한다. 세상의 불합리와 불공평에 대한 가슴 속에 서린 분만이, 자연에 대하여도 성실하고 자세하게 관찰하도록 만들었을 것이다. 그의 시는 바로 자연과 장엄한 아름다움을 다투는 듯이 보이기도 한다. <태산을 바라봄>이란 그의 시에서 시의 표현이 마치 태산의 장중하고 높고 큰 모습과 그 위세를 다투는 듯이 느껴진다. 두보는 성실한 자기의 인격을 통하여 자연을 보고 그것을 시로 읊었으므로 문구에도 땀 흘려 다듬고 깎은 흔적이 느껴진다. 따라서 어떤 때는 자연보다도 오히려 색채가 곱고 여운이 아름다운 작품도 짓게 된다. <절구(絶句)>라는 시의 첫 구에선 파란 빛(강)과 흰 빛(새)의 아름다운 한 폭의 수채화를 그리고 있다. 이 색깔의 대조는 상상 속의 아름다운 자연을 극점에 이르도록 이끌어 준다. 둘째 구에서도 푸른 산 속에 붉게 피어 있는 꽃이 색깔의 대조를 이룬다.
두보는 자연을 성실한 태도로 대하고 노래했지만 자기를 잊으려는 노력은 별로 하지 않았다. 오히려 완전한 자연 속에서 불완전한 자기의 존재를 의식하고, 언제나 여러 사람들 모두를 걱정하였다.
5. 중국 시와 독음
중국에서 글귀를 깎고 다듬는다는 것은 뜻에 있어서 멋진 표현을 추구하는 한편 그 글귀의 독음이 글귀의 뜻과 잘 들어맞는 것을 찾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따라서 알맞은 글귀를 찾아 성실하게 시를 써 온 두보의 시를 보면 <독음>이 시에서 차지하는 묘미를 잘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두보의 <절구> 시 첫 두 귀의 독음을 중고대(中古代)의 음으로 환원시켜본다.
강(江) 벽(碧) 조(鳥) 유(逾) 백(白) / 산(山) 청(靑) 화(花) 욕(欲) 연(然)
이러한 오언시는 한 구절이 다시 두 자와 석자, 곧 “강벽”과 “조유백”, “산청”과 “화욕연”으로 갈라진다. 이 두귀의 시를 소리 내어 읽어보면 한 자 한 자의 음성에서 매우 강한 인상을 느끼게 된다. 첫 귀는 <강>이란 여운이 있는 첫째 소리에 <벽>이란 짧게 끊어지는 소리가 붙어 강렬한 조화를 이룬다. 그 뒤 석 자도 <조유>라는 평탄한 소리에 다시 <백>이라는 짧고 격한 소리가 붙어서 같은 효과를 낸다. 그리고 뜻에 있어서는 “강의 파랗고” “새는 희다”는 색깔의 대조와 소리에 있어서도 “강벽”과 “조유백”은 소리의 강렬한 대조를 이룬다. 이 시는 벌써 독음 자체가 음악적인 구성으로써 시의 뜻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둘째 귀를 보면 “산청”이란 부드럽고 여운 있는 소리 뒤에 <화>란 평탄한 소리가 붙고 다시 <욕>이란 격한 소리에 이어 <연>이란 여운있는 소리가 뒤따른다. “산청”이란 음은 산의 푸르고 평화로운 색깔과 어울리고 “화욕연”이란 여러 가지 성격의 소리의 결합은 붉은 색깔과 어울린다. 유명한 두보의 <춘망(春望)> 시를 보자.
국파산하재, 성춘초목심. / 감시화천루, 한별조경심.
“국파”란 격렬한 음이 혼란에 빠진 조국과 어지러운 백성들을 생각하는 두보의 격렬한 감정을 잘 나타내 준다. “산재”란 음에서 <재>는 짧게 끊어지게 발음되는 소리이며, 부드러운 “산하”란 소리 뒤에 붙는다. “성춘초목심”도 전체적으로 의연한 아름다운 자연과 자연에 대한 반사로서 느껴지는 슬픔이 배어 있는 소리이다. “감시”는 음자체가 “시국을 느끼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하며, “화천루”란 변화 많은 소리는 애수의 파동을 느끼게 한다. “한별”의 <별>은 본시 <볏>으로 짧게 끊어지는 소리여서 “이별이 한이 된다”는 감정과 똑같은 기분을 느끼게 하고 “조경심”은 <한>뒤에 오는 착잡한 감정을 나타내는 듯하다.
이로써 중국시에 있어서 한 자 한 자의 음이 시에서 차지하고 있는 지위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는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중국시는 소리 내어 읽어 보아야 진실한 시의 맛을 이해 할 수 있다. 최소한 우리나라 음으로라도 중국시를 읽어야 이백처럼 거침없는 시원한 멋이나 두보처럼 존엄하고 위대한 맛을 제대로 감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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