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I. 서론
II. 본론
1. 박정희 정권이 수립되기까지.
2. 박정희 정권의 경제 정책.
3. 박정희 경제개발의 허 와 실.
4. 박정희 경제개발의 폐해.
III. 결론
IV, 참고문헌
II. 본론
1. 박정희 정권이 수립되기까지.
2. 박정희 정권의 경제 정책.
3. 박정희 경제개발의 허 와 실.
4. 박정희 경제개발의 폐해.
III. 결론
IV, 참고문헌
본문내용
품값 갚고 기계값 이나 기술료 주고 나면 남는 게 별로 없는 것이 현실이었다. 진짜 이익인 부가가치는 뺏기고 조금씩 던져주는 먹이나 얻어먹고 사는 가마우지 경재가 된 것이다. 자생적 경쟁력의 기반이 처음부터 형성되지 못 한 것이다.
④ 지역격차.
대개 동쪽에서 집권세력이 나오다 보니 영남 지역을 중심으로 산업이 발전했다. 그 결과 동서 간 경제력 격차가 커지고 그것이 지역감정을 일으키는 요인이 됐다. 지배계층은 그것을 또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경제의 동서분단선을 만든 것이다. 그에 따른 사회갈등이 선거 때마다 극단의 형태로 표출되면서 극복하기 어려울 정도로 그 골이 깊어진 것이다.
2) 지역감정의 뿌리
① 도시 농촌 간 격차.
재벌들에게는 한국은행을 독촉해 돈을 지원해주면서 농촌의 어려움을 덜어주는 지원엔 인색했다. 산업화과정에는 농촌경제가 어려워지기 마련인데 인위적으로 육성하고 발전시키지는 못할지언정 거꾸로 황폐화를 가속시켰다. 농촌 사람들이 안 되겠다 싶어 다 도시권으로 옮겨가면서 수도권을 비롯한 도시는 비대해지고 농촌은 황폐해지는, 기형적이고 비효율적인 국토발전이 이뤄졌다.
② 천민자본주의의 만연.
고속성장을 독재정치의 수단으로 이용하면서 물질만능주의가 팽배해졌다. 성장제일주의가 사람들에게 사치와 허영을 부추긴 것이다. 부동산 투기로 돈 벌어 흥청망청 쓰고 해외에 나가 낭비하고 사치품을 사들이는 것들이 소비미덕으로 여겨지고, 사람들이 그걸 부러워하는 사회가 되어버렸다. 그 과정에 가난한 이웃과 나누며 살던 전통적 가치관과 따뜻한 가족관, 공동운명체 의식이 사라졌다.
③ 관료주의 확대.
독재 권력을 장기간 유지하려다 보니 입법부 기능을 축소하고 사법부를 마비시켜야 했다. 반면 행정부는 굉장히 비대해졌다. 사회를 지배하고 경제를 통제하고 기업들을 길들이기 위해 엄청난 규제가 양산됐다. 관료주의가 엄청난 힘을 갖고 경제를 지배하다 보니 정부와 유착하지 못한 기업은 아예 발전 대열에 진입도 못하게 되었다. 말만 시장경제지, 사실은 관치경제였다.
④ 부패공화국.
경제가 부패공화국의 희생물이 되었다. 정경유착에 따라 재벌과 권력층이 경제를 독식하는 바람에 일반 국민경제가 희생되었다. 관료주의가 확대되고 규제가 양산되다 보니 뇌물이 판치는 비리구조가 위에서부터 형성됐고 그 영향이 민간부문에도 미쳤다.
결 론
박정희 전 대통령은 우리나라의 급속한 경제성장을 가져다 준 인물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현 시점에서 그를 평가할 때 아니, 그의 경제정책을 평가할 때, 아쉬운 점이 많은 것은 틀림없다. 그것은 독재정치에 대한 민주주의의 억압과도 관련되지만 경제정책과정에서 발생되는 폐해가 지금, 그리고 앞으로 계속되는 우리의 숙제가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급속한 경제성장 뒤에 남은 진통. 그 진통을 계속 겪고 있는 지금. 우리가 나아가야 하는 방향은 무엇인가?
<참고 문헌>
신동아, 이필상 고려대학교 교수 인터뷰
박정희 개발의 허와 실, 김지형, 한국역사연구회 회원
다시 찾는 우리역사, 한영우, 경세원
개발독재와 박정희시대, 이병천, 창비
④ 지역격차.
대개 동쪽에서 집권세력이 나오다 보니 영남 지역을 중심으로 산업이 발전했다. 그 결과 동서 간 경제력 격차가 커지고 그것이 지역감정을 일으키는 요인이 됐다. 지배계층은 그것을 또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경제의 동서분단선을 만든 것이다. 그에 따른 사회갈등이 선거 때마다 극단의 형태로 표출되면서 극복하기 어려울 정도로 그 골이 깊어진 것이다.
2) 지역감정의 뿌리
① 도시 농촌 간 격차.
재벌들에게는 한국은행을 독촉해 돈을 지원해주면서 농촌의 어려움을 덜어주는 지원엔 인색했다. 산업화과정에는 농촌경제가 어려워지기 마련인데 인위적으로 육성하고 발전시키지는 못할지언정 거꾸로 황폐화를 가속시켰다. 농촌 사람들이 안 되겠다 싶어 다 도시권으로 옮겨가면서 수도권을 비롯한 도시는 비대해지고 농촌은 황폐해지는, 기형적이고 비효율적인 국토발전이 이뤄졌다.
② 천민자본주의의 만연.
고속성장을 독재정치의 수단으로 이용하면서 물질만능주의가 팽배해졌다. 성장제일주의가 사람들에게 사치와 허영을 부추긴 것이다. 부동산 투기로 돈 벌어 흥청망청 쓰고 해외에 나가 낭비하고 사치품을 사들이는 것들이 소비미덕으로 여겨지고, 사람들이 그걸 부러워하는 사회가 되어버렸다. 그 과정에 가난한 이웃과 나누며 살던 전통적 가치관과 따뜻한 가족관, 공동운명체 의식이 사라졌다.
③ 관료주의 확대.
독재 권력을 장기간 유지하려다 보니 입법부 기능을 축소하고 사법부를 마비시켜야 했다. 반면 행정부는 굉장히 비대해졌다. 사회를 지배하고 경제를 통제하고 기업들을 길들이기 위해 엄청난 규제가 양산됐다. 관료주의가 엄청난 힘을 갖고 경제를 지배하다 보니 정부와 유착하지 못한 기업은 아예 발전 대열에 진입도 못하게 되었다. 말만 시장경제지, 사실은 관치경제였다.
④ 부패공화국.
경제가 부패공화국의 희생물이 되었다. 정경유착에 따라 재벌과 권력층이 경제를 독식하는 바람에 일반 국민경제가 희생되었다. 관료주의가 확대되고 규제가 양산되다 보니 뇌물이 판치는 비리구조가 위에서부터 형성됐고 그 영향이 민간부문에도 미쳤다.
결 론
박정희 전 대통령은 우리나라의 급속한 경제성장을 가져다 준 인물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현 시점에서 그를 평가할 때 아니, 그의 경제정책을 평가할 때, 아쉬운 점이 많은 것은 틀림없다. 그것은 독재정치에 대한 민주주의의 억압과도 관련되지만 경제정책과정에서 발생되는 폐해가 지금, 그리고 앞으로 계속되는 우리의 숙제가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급속한 경제성장 뒤에 남은 진통. 그 진통을 계속 겪고 있는 지금. 우리가 나아가야 하는 방향은 무엇인가?
<참고 문헌>
신동아, 이필상 고려대학교 교수 인터뷰
박정희 개발의 허와 실, 김지형, 한국역사연구회 회원
다시 찾는 우리역사, 한영우, 경세원
개발독재와 박정희시대, 이병천,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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