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서론
1 .카르타고
2.카르타고의정부
3. 카르타고의 군대
4. 카르타고의 농업
5. 카르타고의 부와농업
Ⅱ. 한니발과 그와 관련된 사람들
1. 한니발
2. 하밀카르 바르카스
3. 스키피오
4. 마르켈루스
Ⅲ. 2차포에니전쟁과 그 속의 전투
1. 사군토 전투
2. 트레비아 전투
3. 칸나이 전투
4. 자마 전투
Ⅳ. 포에니전쟁이후의 변화
1 .카르타고
2.카르타고의정부
3. 카르타고의 군대
4. 카르타고의 농업
5. 카르타고의 부와농업
Ⅱ. 한니발과 그와 관련된 사람들
1. 한니발
2. 하밀카르 바르카스
3. 스키피오
4. 마르켈루스
Ⅲ. 2차포에니전쟁과 그 속의 전투
1. 사군토 전투
2. 트레비아 전투
3. 칸나이 전투
4. 자마 전투
Ⅳ. 포에니전쟁이후의 변화
본문내용
고 있다. 이 전투가 끝난 뒤 카르타고는 로마에게 항복을 하였고 2차 포에니전쟁은 끝나게 되었다.
이후 3차포에니 전쟁도 포에니 즉 카르타고의 패배로 인해 카르타고는 완전히 그 존재가 지워지게 된다.
4. 포에니전쟁이후의 변화
포에니 전쟁은 로마의 지중해 진출의 길을 열었다. 전쟁이 발발한 지 50년이 채 안돼 로마의 속주제도는 스페인에서 아시아까지 확대되었고, 세계제국 로마로 발돋움하는 기틀이 마련되었다. 또한 헬레니즘 세계와 직접 접촉하게 됨으로써 헬레니즘 적 사고와 문화 풍조에 노출되었는데, 이러한 접촉은 로마의 전통적 미덕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기도 하였다. 그러나 무엇보다 포에니 전쟁은 안으로 로마의 정치, 경제, 사회 등 전 분야에서 변화를 초래하였다. 특히 희대의 명장 한니발로 상징되는 제 2차 포에니전쟁은 막대한 인명과 재산의 손실을 로마에 끼쳤는데, 농지는 황폐화하고 중소농민은 몰락하였다. 특히 남 이탈리아의 황폐화는 끔직한 것이었다. 어떤 이들은 오늘날까지 그 영향이 이어지고 있다고 할 정도이다. 이와 병행하여 자본 농업이 발전하게 되었는데, 대농장제도인 라티푼디움이 나타났다. Plinius가 그의 {박물지}에서 '대토지 라티푼디아가 오래 전에 이탈리아를 파멸시켰다'고 말하고 있듯이, 노예노동에 의존하여, 포도나 올리브 등의 상품 작물을 재배하는 새로운 라티푼디움은 경제적으로는, 독립적 소농들의 숫자를 감소시키고, 이들을 소작인과 노예들로 전락시키는 결과를 가져왔고, 정치 사회적으로는 보호자 예속제도를 파괴시키게 되었다. 이리하여 사회의 핵심을 이루었던 자유 신분의 중소농은 사라지고 토지 없는 빈민층이 생기고 부채에 허덕이는 사람들이 많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소유 재산이 없는 사람들의 도시 집중으로 로마는 파산에 이를 지경이 되었고, 이들은 프롤레타리아트(즉, 프롤레스, 자식밖에 없는 사람들이라는 뜻으로 무산자를 의미)라고 불리는 도시 일당 노동자 계급으로 정착되었다. 이들의 숙박은 비참하였고, 하루 동안에도 굶어 죽거나, 폭동을 일으키거나, 급기야는 군인 정치가들의 사병으로 고용되었다. 티베리우스 그락쿠스의 유명한 연설이 그들의 상황을 대변해 준다. "이탈리아를 떠도는 야수들도 ...자기의 굴을 가지고 있으며, 각자 쉬고 몸을 의지할 곳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탈리아를 위해서 싸우고 죽은 사람 등이 가진 것이란 공기와 햇빛밖에 없고, 집도 가정도 없이 처자들과 헤맨다. 그들의 사령관들은 전장에서 병사들에게 분묘와 신전을 적으로부터 수호하도록 감언이설로 꾀고 있다....그러나 이들은 남들의 재부와 사치를 수호하기 위해서 싸우다 죽으며... 자기 것이라고 부를 수 있는 한 뼘의 땅도 갖고 있지 않는 것이다."
이렇게 몰락하던 중소 자영농과는 달리, 이 전쟁으로 재미를 보았던 사람들도 있었는데, 경제적으로는 부유한 실업가 계층이 바로 그들이며, 정치적으로는 원로원 계층이었다. 실업가요 화폐자본가 계층은 "기사(eques, 복수형 equites)"라고 불리워졌는데, 이들은 로마군의 기병대와 같은 등급이 매겨질 만한, 혹은 이들 기병들을 보조할 만한 충분한 재산인 40만 세스테리우스에 달하는 재산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이러한 이름이 붙여졌다. 이들은 은행업, 징세 청부업, 고리대금업, 군함과 수송선의 건조 등에 종사하여 막대한 이윤을 남기고 있었으며, 대규모 전쟁, 식민지의 확장, 대규모 건축 계획 등은 모두 이들의 등장을 부추키는 요인들이었다. 그리하여 이들은 신흥 귀족(Nobiles)계층을 이루게 되었다. 그리하여 기원전 2-1세기에는 이전의 자영농민을 핵심으로 한 공화정이 붕괴하고, 두 특권 계층인 원로원 의원과 기사계층에 의한 지배의 새로운 귀족정체가 형성되는 전환의 시기를 맞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나타난 이가 바로 그락쿠스 형제이다. 그들의 어머니는 그녀는 바로 한니발을 물리친 시피오 아프리카누스의 딸로, 지성과 미모와 귀한 태생까지 겸하여, 로마 최고의 여성으로 이름이 높았던 코르넬리아였다. 코르넬리아가 로마 귀부인들이 각기 보석을 자랑하던 자리에서, 자신이 가진 가장 아름다운 보석은 바로 자신의 두 아들인 그락쿠스 형제이다라고 했다는 일화는 너무나 유명하다. 이러한 어머니를 둔 그락쿠스 형제는 귀족 가문 출신이었지만, 노빌레스의 희생을 무릅쓰고 몰락 자영농민들을 육성하는 정책을 추진하였지만 그락쿠스 형제의 개혁이 실패로 돌아간 후 평민파와 벌족파의 갈등은 심화되었고 결국 로마는 공화정의 몰락과 독재정치의 길로 접어들게 되었다.
이후 3차포에니 전쟁도 포에니 즉 카르타고의 패배로 인해 카르타고는 완전히 그 존재가 지워지게 된다.
4. 포에니전쟁이후의 변화
포에니 전쟁은 로마의 지중해 진출의 길을 열었다. 전쟁이 발발한 지 50년이 채 안돼 로마의 속주제도는 스페인에서 아시아까지 확대되었고, 세계제국 로마로 발돋움하는 기틀이 마련되었다. 또한 헬레니즘 세계와 직접 접촉하게 됨으로써 헬레니즘 적 사고와 문화 풍조에 노출되었는데, 이러한 접촉은 로마의 전통적 미덕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기도 하였다. 그러나 무엇보다 포에니 전쟁은 안으로 로마의 정치, 경제, 사회 등 전 분야에서 변화를 초래하였다. 특히 희대의 명장 한니발로 상징되는 제 2차 포에니전쟁은 막대한 인명과 재산의 손실을 로마에 끼쳤는데, 농지는 황폐화하고 중소농민은 몰락하였다. 특히 남 이탈리아의 황폐화는 끔직한 것이었다. 어떤 이들은 오늘날까지 그 영향이 이어지고 있다고 할 정도이다. 이와 병행하여 자본 농업이 발전하게 되었는데, 대농장제도인 라티푼디움이 나타났다. Plinius가 그의 {박물지}에서 '대토지 라티푼디아가 오래 전에 이탈리아를 파멸시켰다'고 말하고 있듯이, 노예노동에 의존하여, 포도나 올리브 등의 상품 작물을 재배하는 새로운 라티푼디움은 경제적으로는, 독립적 소농들의 숫자를 감소시키고, 이들을 소작인과 노예들로 전락시키는 결과를 가져왔고, 정치 사회적으로는 보호자 예속제도를 파괴시키게 되었다. 이리하여 사회의 핵심을 이루었던 자유 신분의 중소농은 사라지고 토지 없는 빈민층이 생기고 부채에 허덕이는 사람들이 많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소유 재산이 없는 사람들의 도시 집중으로 로마는 파산에 이를 지경이 되었고, 이들은 프롤레타리아트(즉, 프롤레스, 자식밖에 없는 사람들이라는 뜻으로 무산자를 의미)라고 불리는 도시 일당 노동자 계급으로 정착되었다. 이들의 숙박은 비참하였고, 하루 동안에도 굶어 죽거나, 폭동을 일으키거나, 급기야는 군인 정치가들의 사병으로 고용되었다. 티베리우스 그락쿠스의 유명한 연설이 그들의 상황을 대변해 준다. "이탈리아를 떠도는 야수들도 ...자기의 굴을 가지고 있으며, 각자 쉬고 몸을 의지할 곳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탈리아를 위해서 싸우고 죽은 사람 등이 가진 것이란 공기와 햇빛밖에 없고, 집도 가정도 없이 처자들과 헤맨다. 그들의 사령관들은 전장에서 병사들에게 분묘와 신전을 적으로부터 수호하도록 감언이설로 꾀고 있다....그러나 이들은 남들의 재부와 사치를 수호하기 위해서 싸우다 죽으며... 자기 것이라고 부를 수 있는 한 뼘의 땅도 갖고 있지 않는 것이다."
이렇게 몰락하던 중소 자영농과는 달리, 이 전쟁으로 재미를 보았던 사람들도 있었는데, 경제적으로는 부유한 실업가 계층이 바로 그들이며, 정치적으로는 원로원 계층이었다. 실업가요 화폐자본가 계층은 "기사(eques, 복수형 equites)"라고 불리워졌는데, 이들은 로마군의 기병대와 같은 등급이 매겨질 만한, 혹은 이들 기병들을 보조할 만한 충분한 재산인 40만 세스테리우스에 달하는 재산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이러한 이름이 붙여졌다. 이들은 은행업, 징세 청부업, 고리대금업, 군함과 수송선의 건조 등에 종사하여 막대한 이윤을 남기고 있었으며, 대규모 전쟁, 식민지의 확장, 대규모 건축 계획 등은 모두 이들의 등장을 부추키는 요인들이었다. 그리하여 이들은 신흥 귀족(Nobiles)계층을 이루게 되었다. 그리하여 기원전 2-1세기에는 이전의 자영농민을 핵심으로 한 공화정이 붕괴하고, 두 특권 계층인 원로원 의원과 기사계층에 의한 지배의 새로운 귀족정체가 형성되는 전환의 시기를 맞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나타난 이가 바로 그락쿠스 형제이다. 그들의 어머니는 그녀는 바로 한니발을 물리친 시피오 아프리카누스의 딸로, 지성과 미모와 귀한 태생까지 겸하여, 로마 최고의 여성으로 이름이 높았던 코르넬리아였다. 코르넬리아가 로마 귀부인들이 각기 보석을 자랑하던 자리에서, 자신이 가진 가장 아름다운 보석은 바로 자신의 두 아들인 그락쿠스 형제이다라고 했다는 일화는 너무나 유명하다. 이러한 어머니를 둔 그락쿠스 형제는 귀족 가문 출신이었지만, 노빌레스의 희생을 무릅쓰고 몰락 자영농민들을 육성하는 정책을 추진하였지만 그락쿠스 형제의 개혁이 실패로 돌아간 후 평민파와 벌족파의 갈등은 심화되었고 결국 로마는 공화정의 몰락과 독재정치의 길로 접어들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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