펠로폰네소스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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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머리말

Ⅱ. 펠로폰네소스전쟁과 민주정
1. 전쟁의 원인
2. 아르키다모스전쟁과 데마고고스의 출현
3. 과두주의 정변

Ⅲ. 그리스의 몰락
1. 아테네의 쇠퇴
2. 도시국가의 최후의 전쟁

Ⅳ. 맺음말

본문내용

들에게 동등한 권리를 인정해 주도록 강요당하였다. 그러나 스파르타가 테베를 보이오티아 동맹의 주도권자로서 인정하는 것을 거절함으로써 전쟁이 재게되었으며, 여기서 스파르타는 테베의 위대한 장군이자 정치가인 에파미논다스(Epaminondas)에게 결정적으로 패배하게 되었다. 무적의 스파르타의 군대는 더 이상 존재할 수 없었고, 편협하고 이기적이고 독재적인 스파르타의 지배도 막을 내리게 되었다.
잠시 동안 그리스에서는 또 다른 제 3의 강력한 세력이 나타날 듯 하였다. 북부 그리스에서 테베가 동맹을 결성하여 테살리를 함락시키고 멀리 마케도니아까지 쳐들어갔다. 펠로폰네소스를 지배하여 스파르타를 굴복시키려는 시도는 테베의 몰락을 초래하였다. 362년 스파르타와의 전투에서는 테베의 에파미논다스가 전사하였다. 결국 전 그리스를 지배하고자 하는 테베의 꿈은 비록 사라지게 되었고, 쇠약해진 아테네는 몰락을 딛고 에게해 제국의 재건을 시도하였으나, 수세기 동안의 무모한 전쟁은 희생만을 초래하였으며, 아테네가 재건하기도 전에 그리스 북부로부터 마케도니아가 유성과 같이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Ⅳ. 맺음말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투키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에서 보이는 상황을 중심으로, 아테네의 국제의 변화와 폴리스의 몰락에 대한 과정을 다루어 보았다.
보고서를 마치며 한가지 안타까웠던 점은, 동맹의 결성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던 몇몇 도시국가들은 서로 파괴적인 전쟁으로 힘과 자원을 낭비하였을 뿐, 전 그리스를 지배하는 통일국가가 나오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후대 그리스인의 개인주의와 자결주의 정신이 그리스 민족국가의 형성에 걸림돌이 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는 평가를 받게 한다. 하지만 그리스에 대한 이러한 비판은 작은 소리에 불과하다. 고대인이 가지고 있었던 그 정신은 개인주의 자결주의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특히 아테네의 민주정은 고대 세계에서 진실로 독특한 산물이었다. 물론 권리와 특권들도 시민권을 가진 자들에게만 한정되어 있었고, 시민권을 소유한 사람들은 일부에 불과하였다는 것뿐만 아니라, 아테네의 민주주의의 완성이 데마고고스나 귀족들의 과두정에 의해 잠식되었다는 부정적인 평가가 가미된다 하더라도, 그것은 아테네 시민 계층 내에서 평등과 협조가 비교적 잘 이루어진 또 다른 민주정의 한 부분이었다.
♠ 참 고 문 헌 ♠
● 김진경 외, 『서양고대사강의』, 한울아카데미, 1996.
● 김봉철, 「<데마고고스> 클레온」, 『역사학보』113 (1987).
● 최자영, 『고대 아테네 정치제도사』, 신서원, 1995.
● 조인형 편(編), 『서양 고대사』, 강원대학교 출판부, 1996.
● Thukydides, 박광순 역(譯),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범우사, 1994.
● 김정수, 「데마고고이와 아데나이의 패망」, 『연세대 인문과학』52 (1984).
● Harry Elmer Barnes, 『A History of Historical Writing(AHHW)』, Dover Publications Inc., New York, 19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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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6.12.19
  • 저작시기200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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