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진기행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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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수 있다. 따라서 주인공의 부끄러움은 양심의 가책이다. 결말에서 그가 느끼는 '심한 부끄러움'은 일련의 통과 제의적 소설들에서 보여 지는 성장의 의미가 아니며, 그것을 작가는 의도하지도 않는다. 그는 다시 서울로 돌아갈 것이고 잘은 모르지만 아마 모종의 부정적인 절차를 통해 한 제약회사의 전무가 되어 있을 것이다. 이 점에서 타락(墮落)-정화(淨化)-성장(成長)의 공식을 지닌 통과 제의적 소설들을 '무진기행'은 정면으로 배반하고 있으며 <무진>은 주인공의 의식에 있어서의 필터 기능을 전혀 수행하지 못한다. 그것은 어느 곳도 우리가 순수해질 수 있는 곳은 없으며 현대를 살아간다는 것은 끝없이 자신을 기만하고 사회와 타협하는 것일 수밖에 없다는 작가의 섬뜩하리만치 비관적인 세계 인식을 드러내는 것이다. 무진으로의 여행. 그것은 그를 돌아보는 여행이었다. 그렇지만 희미한 안개 속에 나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고 찾아내려 하지만 결국은 현재의 나로, 돈과 권력이 있는 나로 돌아 간다. 주인공의 선택이 어떤 의미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렇지만 무진기행, 진정한 나를 찾으려고 하지만 결국은 일상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현대인들의 비애를 보여주려고 했던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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