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인간본성][종교][과학][생각][철학의 방법][일상생활][인간본성]철학에 관한 심층 고찰(철학이란, 철학의 대상, 철학의 방법, 철학의 발달, 철학과 일상생활, 철학과 인간본성, 철학과 종교, 철학과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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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철학][인간본성][종교][과학][생각][철학의 방법][일상생활][인간본성]철학에 관한 심층 고찰(철학이란, 철학의 대상, 철학의 방법, 철학의 발달, 철학과 일상생활, 철학과 인간본성, 철학과 종교, 철학과 과학)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들어가며

Ⅱ. 철학이란

Ⅲ. 철학의 대상

Ⅳ. 철학의 방법
1. 철학의 방법이란
2. 합리적 방법․실증적 방법
3. 철학적 방법의 이해

Ⅴ. 철학의 발달

Ⅵ. 철학과 일상생활

Ⅶ. 철학과 인간본성
1. 논의의 출발점
2. 입장 1 : 합리적 사회적 본성
3. 입장 2 : 탐욕적 이기적 본성
4. 입장 3 : 백지 또는 자유로서의 본성

Ⅷ. 철학과 종교

Ⅸ. 철학과 과학

Ⅹ. 결론

본문내용

언어가 저지른 過誤요 誤解라는 것이 밝혀짐으로써 사라질 것이며, 다른 것들은 變裝한 보통의 과학문제임이 밝혀질 것이다. 이러한 소견은 철학의 全장래를 조우하리라고 나는 생각한다.
몇몇 위대한 철학자들은, 비록 精巧(정교)하게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철학적 사유의 본질을 비교적 명확하게 認知하였다. 예컨대, 칸트는 講義時間에 철학은 가르 칠 수 없다고 말하곤 헹다. 그렇지만, 만일 철학이 지질학이나 천문학 같은 과학이라면, 어째서 가르칠 수 없겠는가?
그렇다면 사실 철학을 가르치는 일이 확실히 가능할 것이다. 그러므로 칸트는 “내가 가르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철학하는 것이다”라고 말했을 때, 철학은 과학이 아니라는 것을 어느 정도 낌새챘던 것이다. 이 文脈(문맥)에 動詞(동사,philosphieren)를 사용하고 名詞(명사,philosophie)를 퇴짜 놓음으로써 칸트는, 거의 무의식적으로 이긴 하지만, 활동으로서의 철학의 특수한 성격을 명확하게 지적했던 것이다.……
동일한 동찰의 예는 라이프니츠에서도 볼 수 있다. 그 베를린 한림원을 창설하고 그 조직을 위한 槪略的(개략적)인 계획을 세웠을 때, 그는 그 조직안에 모든 과학의 위치는 정해 주었어나 철학은 거기 끼지 못했다. 라이프니츠가 과학의 체계안에 철학의 자리를 두지 않았던 것은, 철학은 특수한 진리의 추구가 아니라 모든 진리탐구에 스며들 하나의 활동임을 명백히 간파하였기 때문이다. 내가 옹호하고 있는 견해를 현대에 가장 분명하게 표현한 사람은 루트비히 비트갠슈타인이다. 그는 자기의 요지를 다음과 같이 서술하였다: “철학의 목표는 사상을 이론적으로 명료하게 함에 있다. 철학은 이론이 아니라 활동이다. 철학의 성과는 ‘철학적 명제’가 아니라 명제의 명료화이다.” 이것은 내가 여기서 설명하려 애써 온 바로 그 견해이다.
이제 우리는 어째서 철학은 보편과학으로 간주될 수 없는가를 역사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철학이 이렇게 오해된 것은, 명제의 의미가 어느 면에서는 모든 論議의 기초가 되는 까닭에 그것이 무슨 ‘보편적’인 것인양 보였기 때문이다. 우리는 또 어째서 고대에는 철학이 과학과 동일시되었는가를 역사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것은 그당시에는 세계를 서술하는데 사용된 개념들이 모두 매우 애매하였기 때문이다. 과학에게 임무가 부과된 것은 명료한 개념이 없었기 때문이다. 과학이 서서히 발전됨에 따라 개념들은 명료하게 되게 마련이니 과학적 탐구의 노력은
주로 이 명료화에 향했던 것이다. 다시 말하면 과학적 탐구는 철학적이 될 수밖에 없었으니, 과학과 철학은 구별될 수 없었던 것이다. 이와 같은 우리의 생각이 옳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실은 오늘날에도 찾아볼 수 있다. 오늘날 논리학이나 미학 같은 특수한 연구분야는 ‘철학적’이라고 불리워지고 있으며, 철학의 한 부분을 이루고 있다고 생각되고 있다. 그러나 철학은 활동이기 때문에 부분이나 독립적인 여러 분야로 나누어 질 수는 없는 하나의 통일체이다. 그렇다면 어째서 이러한 탐구들이 철학이라고 불리워지고 있는가? 그것은 그런 탐구들이 과학적 段階의 초기에 처해 있음에 불과하기 때문이며, 내 생각에는 어느 정도 심리학도 그런 것 같다. 논리학과 미학은 확실히 아직도 충분히 명료한 개념을 갖고 있지 않으며, 그 연구의 대부분은 아직도 그 개념들을 명료화 하는 데 바쳐지고 있다. 따라서 그것을 철학적이라고 부름은 당연하겠다. 그러나 장차 그것들은 당연히 과학의 위대한 체계의 한 부분이 될 것이다. 미래의 철학자들은 과학자들의 방법은 겉으로나마 취할 수 없다는 것을 그들이 깨닫기 바란다.
나는 철학의 본성에 관한우리의 견해가 미래에는 일반적으로 채택되리라고 확신한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하나의 체계로서의 철학을 가르치려고 기도하지는 않게될 것이다. 우리는 명료함을 추구하는 진정한 철학적 정신으로 특수과학과 그 역사를 가르칠 것이며, 이렇게 함으로써 후세의 철학적 정신을 啓發시킬 것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이것이 전부이지만 그것은 인류의 정신적 진보의 큰걸음이 될 것이다.
Ⅹ. 결론
생각한다는 것은 여유가 있다는 뜻이다. 시간이 있고, 조용하거나 사람의 감각을 일깨우는 공간과 자극이 있다는 뜻이다.
일상성, 아침에 일어나서 세수하고 밥먹고, 나가서 일하거나 놀고 들어와서 씻고 신문이나 텔레비젼만이 의식앞에 어른거리고 욕구를 흡수한다. 예민한 비평가는 혼자서 경악하고, 종교인들은 밤만 종만을 두드린다. 그래서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에게 있어서 생각한다는 것은 그 만큼 어렵다. 여유가 없기도 하고, 여유가 생기면 그것을 어디에 쓸지 두렵기도 하다. 哲學이란 말이 십이촌 친척처럼 생소해진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운전사는 밤길 고속도로를 140Km 이상으로 달려도 두렵지가 않다.해녀는 시퍼런 바다 속에서도 전복이며 해삼을 따믄 데 전혀 공포심을 갖지 않는다. 그 분야에서는 전문가이기 때문이다. 운전사나 해녀가 哲學이란 타이틀을 달고 이야기를 하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을까 ? 그들의 入場은 정중히 거절된다. 전문가만 오시오. 哲學 역시 매우 전문적인 직업이 된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나 플라톤은 철학자였으면서 정치가였으며 문학가이고 물리학자였고 윤리학자, 미학의 대가였다. 철학이란 과목은 모든 과목을 포함한 원초였던 것이다. 오늘의 철학은 제한된 주제, 제한된 전문가만이 토론하고 이야기 할 수 있다. 생활인은 생명과 오락이외에 주어진 의무와 권리는 없어보인다. 그들이 당면한 문제의 심각성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것은 철학자신의 탓은 아닌 것 같다. 사회 경제적 변화와 진보, 그에 따르는 학문적 분화, 그리고 철학자신의 자기영역확보와 그 유지를 위한 과정이 오늘날의 특히 언어철학, 논리실증주의의 무미건조한 체계를 만든 것이다.
사람은 다시 돌아가려고 하고 있다. 갈갈이 찢긴 분열된 자아를 주엄주엄 꿰메려 하고 있다. 문명에 대한 위기의식이 각성제가 되기도 한다. 철학에게, 철학자들에게 요구한다. 나의 원형질을 찾게 도와주시오. 자신은 철학의 전문가가 될 수 없지만 철학이 제 알아서 사람들의 처지를 딱하게 여겨주기를 바라고 있다. 그것은 지금을 사는 철학자 자신의 처지이기도 하니까.

키워드

철학,   인간본성,   종교,   과학,   생각
  • 가격7,500
  • 페이지수25페이지
  • 등록일2007.01.16
  • 저작시기2021.2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388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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